아이를 진지하게 대하고 사랑하는 문화와 맞닥뜨렸다
요즘 온통 저출산, 저출산, 저출산 이야기다. 그러면서 정부는 연일 각종 대책을 내놓는데, 상당 부분이 이러저러한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글쎄, 돈 많이 주면 애 낳을까? 여성차별은 부정하면서 여자를 애 낳는 기계 취급을 하고, 애 낳으라면서 스쿨존에서 사망사고가 나고, 누구말마따나 ‘놀러가다’ 배 안에서 죽은 아이들도 여럿이다. 연공서열의 한국 사회가 거꾸로 뒤집히지 않는 한은,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깔려 신음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사는 처지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사회의 진지한 태도와 변화다.
미국에서 어린이날 즈음에 친구들과 어딜 놀러가려고 계획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아이들 선물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누가 웃으면서, ‘미국은 1년 365일이 전부 어린이날 아냐?’하길래 모두 맞다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그러고보니 아버지의 날, 어머니의 날에는 무슨 행사도 많고 시끌벅적했는데, ‘어린이의 날’이라고 딱히 어머니의 날처럼 선물을 준비해서 주고, 그런 일은 없었던 거 같다. 그렇다, 미국은 1년 내내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는 어딜 가든 환대받는다. 어린이가 타는 유아차를 밀면 못 갈 곳이 없다. 미국의 보도라는 것은 한국처럼 예쁜 블록을 깔아서 매년말에 뒤집어 엎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시멘트를 한 장, 한 장 연이어 붙인 매우 단순한 구조다. 그래서 모든 바퀴 달린 것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모든 건물 출입문에는 낮게 장애인 휠체어 버튼이 있고, 그걸 누르면 양문이 자동으로 활짝 열려 조금 있다 닫힌다. 장애인 이동권이 일찍부터 중요한 나라였다. 한 약자를 챙기니 그 뒤로 노인들 이동의자도 가고, 지팡이 짚은 노인도 따르고, 목발 짚은 사람도 따르고, 유아차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다. 유아차를 밀고 어딜 갈 때는 어디든 문들이 활짝활짝 열리리라는 ‘신뢰’를 갖고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에도 엘리베이터가 있곤 하지만, 그걸 타려면 두 번, 심하면 세 번이나 갈아타며 입구에서 승강장까지 힘든 여정을 거쳐야 한다. 유아차가 들어서는데, 앞에 가는 사람이 무거운 유리문을 바로 놔버려서 결국 부모가 힘들게 한 손으로 문 열고 유아차를 쑤셔 넣어야 들어가진다. 항상 내 뒤에 누가 오는지 한번씩 확인하는 ‘여유’가 있어야 선진국이랄 수 있지 않을까?
유아차는 비행기 탈때도 우선권(priority)을 갖는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귀찮아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비행기 타기다.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퍽 다르다. 미국은 시카고 오헤어, 애틀랜타 등 대형공항엘 가도, 국내선 게이트가 국제선보다 훨씬 많다. 비행기를 타고 매일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미국 비행기들은 다양한 기후 여건 때문인지 연착이 잦다. 아침에 나간 사람이 밀리고 밀려서 밤에 비행기를 타는 일도 심심찮다. 그러니 공항에 가면 설렘보다는 긴장과 피로의 느낌이 더 짙다. 그러니 탑승순서를 알리는 ‘보딩콜’이 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줄을 만들어 서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제일 먼저, 그 다음이 군인, 그 다음이 일등석이다. 유아차를 밀고 당당하게 탑승하면 된다. 비행 중에도 아이가 운다고 눈을 흘기거나 심지어 뭐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냥 애는 애니까 울지, 그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긴다.
얼마 전 제주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짧은 시간에 아이가 운다고 아이 부모에게 주먹질을 하고 난동을 부리다 잡힌 사람 뉴스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의 폭력이다. 대학원때 배우기로, 미국사회는 과거와 전통, 선례를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미래지향적인 사회다. 그래서 더욱 청소년, 아이들, 아기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다룬다. 아이의 안전문제는 대단히 중대하게 다뤄진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한번쯤은 보는 장면들이 있다. 집에서 아기 우는데 내버려둬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며 경찰이 방문한다거나, 아이를 제대로 돌볼 생각도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를 사회복지사가 양육권을 박탈하는 장면 등이다.
내가 즐겁게 보았던 미국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에서는 그런 싱글맘이 나온다. 성매매일을 하며 모텔에서 사는 엄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모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여럿 어울려 논다. 지루한 일에 쪄들대로 쪄든 관리인은 아이들이 장난치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저 멀리서 어떤 나이든 남자가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그 관리인은 ‘당장 꺼져 이 자식아! 너 한 번만 더 애들한테 접근했다가는 내 샷건에 맞아 죽을 줄 알아!’ 고함을 고래고래 지른다. 그렇다. 페도파일(pedophile), 즉 아동성도착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렇게 어렵고 짜증나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도,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해도, 한 눈으로는 아이들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동학대, 방임이라니. 학교 안 나온지가 언젠데 이제야 찾아본다니. 수십명, 백수십명 아이들이 몰사한 수련원 참사, 세월호 참사라니.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느 유튜브에 보니, 한국인 이민자가 아이랑 같이 어딜 가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차를 곁길에 대게 되었다. 보통 이렇게 단속을 당하게 되면, 매우 긴장하게 된다. 보험증꺼낸다고 경찰 앞에서 뭘 뒤적거리다간 잘못하면 총 꺼내는 걸로 오인받아 즉살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얼마나 긴장되랴. 경찰복이 터질 것 같이 건장하고 선글라스를 쓴 경찰은 볼 일을 다 보고 나서는, 뒷좌석의 아이를 보며 싱긋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떠난다. 아이가 얼마나 놀라고 긴장했을까, 경찰은 그게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365일 모두 어린이날이다. 장본다고 마트에 가면 계산대 직원이 아이에게 조그만 스티커라도 주고, 아이를 데리고 대형할인매장에 가니 마지막에 영수증 체크를 하면서 빙긋 웃으면서 뒷면에는 스마일 표시를 그려서 준다. 레스토랑에 가면 바로 아이에게 어린이 수저에 캐릭터 컵도 주고, 크레파스 세트와 따라그리기하는 종이도 준다. 우리처럼 ‘저기요.. 여기 아이 포크 어딨나요..’ 안 물어도 된다. 유아차 밀고 공원 산책이라도 할라면, 내향인인 나는 부끄러워 죽는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특히 노인들은 아예 멈춰서서 아이를 보면서 ‘너무 귀엽네요!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말을 막 건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아이에게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항상 웃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지막 에피소드. 내 석사졸업식날 친구네 가정이 유아차를 끌고 졸업식에 와주었다. 졸업식이 좀 큰 행사인가. 온 캠퍼스가 찾아온 가족과 친구들로 떠들썩하다. 졸업식이 끝나자 셔틀버스가 줄선 사람들을 한가득씩 실어나르고 있었다. 유아차를 밀고 탈게 나는 벌써부터 걱정되어 몸둘바를 모르고 있었다. 버스가 오자, 치이익- 하며 입구가 낮게 내려온다. 저상으로 맞춰주는 닐링버스(kneeling bus)다. 버스 안은 이미 사람들이 꽤 들어차 있다. 그런데 우리가 타니 기꺼이 자리도 비켜주고 유아차가 있을 공간도 내어준다. 기사는 이렇게 외친다. ‘여보쇼! 그 유아차 안 움직이게 잘 고정 안되면 난 절대 출발 안해!’ 아유 땡큐땡큐 정말 땡큐베리머치. 정말 고마웠다. 그게 바로 문화차이에서 온다는 ‘문화충격’(culture shock)이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