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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Sep 05. 2024

그림 한 잔하며 쉬어가세요

시카고 미술관의 그림들







직접촬영하다보니 그림도 이지러지고 천장조명 불빛 네개도 나타났다. 그래도 다른 인터넷 그림 파일보다 화질이 나아서 올림.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은 시카고 미술관의 간판 그림이라고 할 만하다. 작품 크기가 2*3미터로 엄청 크다. 이 그림은 점묘법으로 그려져 있고 구도는 원근법으로 소실점에서부터 관람객에게로 사람과 나무가 점점 더 크게 묘사되었다. 우리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있는 셈이다. 쇠라는 이 그림의 액자틀을 단순한 하얀색으로 지정했다. 액자틀과 별개로 그림 테두리도 색색깔이 섞인 점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약 40명 내외로 모두 제각각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에 유일하게 역동적으로 그려진 건 뛰어가는 소녀 하나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수영복 같은 것을 입은 반쯤 드러누운 사나이부터 머리에 터번을 한 사람도 있고 우리 바로 앞의 커플처럼 실크 탑햇에 코사지를 꽂고 프록코트를 입고 지팡이를 든 신사가 있다. 그 옆에는 양산을 들고 장갑을 끼고 원숭이를 잡고 있는 끈을 들고 엉덩이를 강조하는 고래뼈심줄이 들어간 코르셋을 입은 여자도 있다. 파리에 전형적인 중상류층의 외출복식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그림자 안에서 환한 세계인 밖을 내다보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은 초록색을 써서 밝게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림자가 차지하는 부분도 꽤 있다. 우리를 보고 있는 양산든 여자를 꼭지점으로 하면 수영복 남자와 중산층 커플을 연결하는 삼각형 구도가 되어 안정감이 돋보인다. 


이 관조의 세계는 무엇일까? 세느강의 그랑자트라는 섬의 일요일이다. 무엇도 급할 것이 없고 한가하기만한 세계다. 때로 우리는 이처럼 모두가 쉼을 누리고 있을 때의 웃음소리와 원반을 받는 흰 강아지의 점프, 따릉따릉하며 지나가는 자전거를 모두 정지화면으로 느낄 때가 있다. 행복의 찰나다. 평화의 순간이다. 우린 그걸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싶어한다. 핸드폰을 꺼낸다. 찰칵. 


이 정적인 세계의 평화와 충만감을 나는 그리워 했다. 내 마음이 어두울 때에도 이 그림은 저 밖에 나가면 밝은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모두 각자만의 활동에 열중하며 휴식을 능동적으로 즐기는 것처럼, 그림은 나에게 쉬라고 말한다. 너도 어서 거기 나무 그늘 아래 반쯤 누워보렴. 그럼 세상이 달라보일 거야. 나도 이 관조의 세계의 미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그림의 포스터는 지금 우리집 거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파리 거리'는 우리가 봐온 인상주의 화풍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카유보트는 사실주의에 기반한 인상주의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화풍의 사실성은 장 오귀스트 앵그르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지만 대상을 흩듯이 그린 르누아르처럼, 이 그림의 인물들은 무언가 동화속 인물들처럼 온화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이 독특한 점은 구도에 있다. 거의 정확히 한가운데에 초록색 가로등이 서 있고 왼쪽으로는 두 개의 소실점을 가진 파리의 대로가 보인다. 아마도 시위를 방지하려고 파리 가로를 드넓게 만든 오스만 남작의 영향일 것이다. 이러한 구도와 배경은 대단히 정적인데 반해, 인물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다. 


카유보트는 비 내리는 파리 거리를 표현하면서 그 포도 위에 흐르는 물과 반사된 건물까지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가 안개비 같았던걸까? 떨어지는 빗방울을 묘사할 법도 한데 그것은 생략했다. 


이 그림은 위의 그림처럼 한 변이 2미터가 넘는 대형화이다. 미술관 중심에 있는 그랜드스테어케이스(grand staircase)를 올라가면 이 큰 그림이 인상주의 전시실 한가운데를 채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대번에 마음에 들었다. 우선 사실주의인 것이 반가웠고, 그럼에도 우산 밑 인물들의 눈초리는 참 따스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실크 탑햇과 동그랗게 빛나는 진주 귀걸이도 보인다. 게다가 우산의 색깔이라니. 화면에서 가장 밝은 부분은 우산인데 미묘하게 연보라색과 연파랑색이 보이는 색깔이다. 나는 그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림의 전체구도를 보려고 뒤로 물러서서야, 한가운데 떡하니 있는 초록색 가로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클래식과 미술은 날씨 궂은 동네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은데, 시카고의 우중충한 날씨에 이 그림을 가서 본 적이 있다. 기분도 몸도 꿀꿀한 때였다. 그렇게 어두운 마음을 들고 가서 그림에 비춰보면, 이 그림이 주는 따뜻한 느낌과 명쾌한 구도 덕분에 답답한 마음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비는 오지만, 비가 와서 더 따숩고 오붓한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화가는 어쩌면 비오고 음산한 날의 파리를 이처럼 밝게 그렸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커플도 마치 화가가 아는 지인들처럼 피사체의 묘사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어두움도 어둡지 않게 표현하는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유산을 물려받아 인상주의의 후원가로서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허나 세상이 공평하려 그랬는지 불과 마흔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는 과연 사물을 정확하고 예쁘게만 묘사했던 것일까? 그게 다였을까? 그는 왜 귀부인을 그렇게 칙칙한 진흙같은 드레스에 단촐한 진주 귀고리로만 표현했을까? 정말 그렇게 입어서였을까? 궁금한 게 많다.


그가 누렸던 밝은 세상만큼, 칙칙할 수 있는 그림에도 말간 진주와 부드러운 눈초리처럼 빛과 희망이 서려있다. 

 






사진- 본인촬영, Art Institute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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