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보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트리? 그들은 서로 무슨 상관일까? 브리태니카 사전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고대 이집트, 중국, 히브리 전통에서는 상록수나 화환, 갈랜드가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다. 나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 이교도 전통에서 유래했는데 스칸디나비아 그리스도교 전통으로 흡수되었다.
이 전통은 후에 독일으로 흘러들어갔다. 독일 서부지역에서는 ‘에덴 동산의 나무’와 아담과 이브가 나오는 중세연극이 유행했었다. 당시에는 24일이 아담과 이브 축일이어서 그때 생명 나무를 세우고 나무에 동그란 면병(성찬례에서 쓰이는 동전처럼 생긴 흰 웨이퍼)과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초를 달아 장식했다. 이런 전통이 16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독일 루터교(종교개혁으로 독일에는 루터교, 프랑스에는 장로교, 영국에는 성공회로 갈라졌다)인들이 주로 이런 전통을 보존해왔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독일 귀족 출신인 알버트 공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하면서 영국 왕실에 트리 전통이 전해졌다. 이 빅토리아 시대의 트리에는 장난감들, 작은 선물들, 양초, 캔디, 예쁜 케이크 등을 줄과 종이 체인을 달게 되었다.
미국에는 독일 개척이민자들에 의해 17세기부터 트리 전통이 있었고 19세기가 되자 대중적인 전통이 되었다. 중국과 일본에는 19세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에 의해 트리 전통이 전해졌다.
유리볼을 불어 만드는 오나먼트는 1870년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이 되어 다른 장식품들과 함께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미국과 유럽에서 많이 쓰이는 트리 나무로는 소나무(pine), 전나무(fir), 가문비 나무(spruce)를 들 수 있다. 유홍준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에 의하면 한라산에서만 나는 전나무인 구상나무(Korean Fir)는 선교사에 의해 발견되어 세계학계에 ‘한국구상나무’로 보고되었다고 한다.
동그란 리스(wreath)는 생명을 상징하는 푸른색 이파리가 영원을 상징하는 원으로 만들어져 유행한 것이다. 화환에 초 네 개를 꽂아 성탄절 전 4주간의 대림절(Advent)을 기념하는 대림화환으로 쓰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의 유래는 크리스마스 미사(mass)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더 오래된 이름은 독일어의 ‘jol’에서 유래한 ‘yule’이다. 그래서 캐롤에 율타이드yuletide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크리스마스시즌이라는 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일년 중 밤이 가장 깊은 동지에 축제를 벌였다. Winter Solstice는 ‘정복되지 않는 태양Sol Invictus’의 축일을 의미한다. 서방력으로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언급한 자료는 초대 교회 교부들, 곧, 요한 크리소스토모,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예로니모의 기록들이다. 서기 4세기 이후로는 서방교회의 공식 예수 탄생 축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반면에 동방 그리스도교(정교회Orthodox)에서는 1월 6일을 공현대축일(Epiphany)로 지키다가 예수 탄생 기념이 더해져서 동방교회의 성탄절이 되었다.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 러시아 등에서는 1월 6일이 예수 성탄 대축일이다.
서방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로 지키고, 24일의 저녁기도로부터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어 열두밤째(Twelfth Night)인 1월 5일 저녁기도 전까지를 성탄시기(Christmastide)로 지켰다. 그리고 동방교회의 성탄절이자 서방교회의 공현대축일이 5일 저녁기도 이후부터 시작되어 공현시기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트리는 대림절의 첫 일요일 전에 설치해서 공현대축일인 1월 6일까지 세워두었다가 철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방 그리스도교의 전통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세속적인 전통이 되어서, 누구든 트리를 세우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축하하는 세계의 절기가 되었다.
한국에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한 것은 개신교인 이승만 박사에 의해서였다. 아시아에서 가톨릭 주류 국가인 필리핀과 영국령이었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인도를 제외하고 성탄절이 공휴일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한국은 서구기독교국가가 아닌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박사에 의한 공휴일 지정은 종교편향이란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지나 가을 축제인 할로윈 축제(10월 31일)를 지나고 나면, 마트에서는 관련 장식이 거둬진다. 그리고 성탄 장식을 하고 트리와 장식품을 팔기 시작한다. 나도 예전에는 서방교회 전통에 따라 트리를 세우고 거뒀는데, 이제는 겨울축제이자 신년까지 이어지는 축제라고 생각해서, 모든 성인과 영혼 대축일인 할로윈이 지나면 트리를 꺼내서 세우고, 신년의 느낌이 이어지는 1월 내내 두었다가 철거를 한다. 즉, 11월부터 1월까지 석 달을 우리집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시즌으로 지내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겨울 축제’로 지낸다. 언제 철거할지는 결국 계절과 축제의 감각을 반영해 정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성탄 장식을 한 번 하면 일년 내내 그대로 붙이는 것을 종종 본다. 그것보다는, 시즌이 지나면 싹 치우고 또 다음 시즌을 기념하고 즐기는 것이 일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축제의 기술’이다.
우리집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넌 크리스마스가 왜 제일 좋아?
응 반짝반짝 예쁜 트리가 있어서 좋아.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에, 정복되지 않는 태양을 기념했던 고대 로마인들의 지혜를 기억해 본다. 싱싱한 초록나무를 보며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는 트리 전통은 역시, 겨울이 길고 암울한 북유럽과 독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박사과정에서 의례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있는 전통은 사랑받는 전통이 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속적 기원을 가진 이 오래된 겨울 축제를 한국에서도 기념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도 추운 겨울을 따숩게 느끼고픈 연말의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이걸 굳이 예수를 기억해야한다며 트리 위에 붉은 십자가를 세울 필요도 없고, 꼭 지켜야할 필요도 없고, 꼭 배척해야할 이유도 없다. 다만 트리를 세운다면 아이들이 즐겁고 신나는, 안부와 선물을 나누는, 겨울과 연말연시의 축제로 여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축제 매니아인 나는, 지난 21일에는 붉은 팥죽을 사와 맛난 새알심과 함께 온가족이 노나 먹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김장김치 나눔문화’의 덕택도 톡톡히 봤다. 이런 축제의 마음이, 반짝이는 트리 옆에서 캐롤을 들으며 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홀리데이, 해피뉴이어’로 전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