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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그렇게 안해

저울 위의 평등

by 에반스토니언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일요일에 아내랑 같이 집 근처 성공회 교회를 찾은 적이 있다. 그 교회는 새신자 행사에서 맛 좋은 화이트 와인을 한 잔씩 서빙했다. 잔을 들고 홀짝 거리면서 우리를 환영한다고 다가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들이 이 근처 CDC(미국 질병예방통제국)에서 일한다고 소개한 한 노부부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우리 교회를 찾아줘서 반가워요. 어디에서 왔나요? 미국에는 왜 왔나요?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희는 한국에서 왔구요, 저는 이 근처 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공부는...


아 그래요. 그럼 옆에 아내분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아내분은 무엇을 하시죠? 아 살림을 한다고요. 그것말고 시간 날 때는 어떤 일을 하나요? 무슨 생각을 하나요?


내가 다닌 학교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학교였기 때문에 나는 거침없이 그 학교에 다닌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교회니 내가 신학 공부하는 데에 관심을 가질거야,라고 생각하며 내 소개를 더 하려던 찰나에 노부인은 내 말을 자르다시피 막고 바로 아내에게 질문했다. 그냥 집에서 살림한다는 말에도 그분은 housewife(가정주부)라는 아내의 말에 아, home maker(살림하는 사람)군요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예배 시간이 되었을 때, 복음서를 봉독하는 순서가 있었다. 복사가 펼쳐든 번쩍이는 복음서를 앞에 두고 여성 관할 사제가 두 팔을 펼쳐들고 책을 읽었다. 노사제는 장백의(긴 흰옷)를 입고 영대(stole, 사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 있는 목도리)를 차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흔들거리는 귀걸이를 하고, 핫핑크색으로 손톱을 칠했으며, 발에는 끈샌들을 신고 있었다. 발톱도 역시 핫핑크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너무나 미국성공회(The Episcopal Church)다웠다. 미국개신교에서 대표적 진보교단인 성공회는 2006년에 여성인 캐서린 제퍼츠 쇼리 사제를 세계성공회 최초로 교단장인 의장주교(Presiding Bishop)로 선출한 역사가 있는 교단이다. 그런 영향은 이런 동네의 작은 교회에까지 두루 미친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박사과정생 조교교육 강의 시간이었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는 무렵이었다. 학생들을 오래 가르친 노교수는 이런 상황을 묘사했다.


만약 수업 끝나고 한 여학생이 조교인 자네들에게 다가와 수업 지도교수님이 자신에게 성희롱 혹은 성폭력을 행했는데 어떡해야 하냐고 물으면, 자네들은 어떻게 하겠나?


한 남학우가 '양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여학우들은 달랐다.


무조건 여성의 이야기부터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엥? 왜 그래야 해? 오해나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나?


여학우들은 지도교수와 학생의 권력관계에서 이런 문제제기는 보통은 학생이 훨씬 불리하다면서, 학생으로서의 자격과 명성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일 거라고 말했다.


남자 노교수는 심지어 지도교수에게 보고하지 말고 일단 피해학생을 도와서 그가 공적인 기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말하며 수업을 끝맺었다.


우리는 양편의 이야기를 모두 공평하게 듣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원칙이 간과하는 것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 관계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교수가 파면되는 경우보다 문제제기가 무위화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피해학생은 2차 가해를 당하지만 교수는 오히려 학교의 지원과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정의란 기계적 공평이 아니라, 때론 저울을 약자에게 기울여야 간신히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경우를 위한 것이다.




어떤 정치인은 한국에는 여혐이 없다,고 단언한 적도 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여혐이 없어서 핸드폰 카메라를 찍을 때 찰칵 소리가 나는 나라죠. 미국에 가니 그런 소리는 나지 않더군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진 그 찰칵~소리. 왜 생겼는가? 하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범죄가 횡행하자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모든 핸드폰 카메라에서 무음 촬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대단히 부끄럽고 추한 일이다. 우리가 그 찰칵~ 소리를 들으며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을 때마다, 사실 우리는 수치를 당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2030여성은 이번 탄핵찬성 시위에만 많았던 게 아니다. 그들은 늘 있었다. 광주에서는 시민군을 위해 주먹밥을 싸고, 노동쟁의 중에 벌거벗고 서서 똥물을 맞았고, 끌려가서는 성고문을 당했으며, 같은 운동권 안에서는 선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가 몰라봤을 뿐.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해지는 날은 언제 올까?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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