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 선생님이어도, 괜찮아 -

by 비밀의 화원

둘째 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들과 오늘 모닝 커피타임&점심식사를 했다.

내가 그토록 멀리하고자 했던 옆집 엄마들이건만,

휴직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던 내가

둘째의 하교시간에 맞춰 귀가하지 못할 때마다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나누어주고,

홀로 아이가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기꺼이 아이의 길동무가 되어준 엄마들이다.

고마운 마음에 내가 먼저 나서 만남의 장을 만들었는데,

시작부터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다.

이어 학교에 대한 불만,

급식에 대한 불만......

"같은 선생님으로서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요?"


하...갑자기 청문회장이 되어버렸다.

이러려고 초대한 게 아닌데......

소모적인 성토장을 만드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초대된 옆집 선생님(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도 청문회에 불려나온 듯이

곤란한 질문 앞에 마음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함께 놀러온 옆집 선생님을 얼른 돌려 보내드리고,(이렇게 죄송할수가...ㅠㅠ)

나는 또 내 나름 선생님들의 방어적인 태도에도 이유가 있음을

구구절절히 설명해본다.


교사라는 직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팔, 다리가 하나 둘씩 잘려나가고

이제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 외엔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이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면

어느 한 쪽에서 반감을 가지고 불만을 성토하고,

내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내 이야기를 해석하고

부모님들도 함께 내 의도를 곡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업시간에 잔다고 깨워도 졸려서 자는데 왜 깨우냐는,

기가 찬 답변이 돌아온다.

수행평가 점수를 공개하고나면

교사의 채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도 있다.

그러다보니, 경력 15년 차인 나도

'민원차단'을 최우선 목표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권한은 하나도 없고, 의무만 가득한 우리들에게

왜 제대로 '교육'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한동안 옆집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중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을 밝히지 못했다.

오늘과 같은 일이 빈번하거나,

조용히 '왕따'가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내 젊은 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가진 '교사'라는 나의 직업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 마음 한 켠 씁쓸함이 몰려온다.


'권위'가 사라진 교사라는 직업을,

나는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추앙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음이다.

언제인가부터 나의 '일'로 인해

내 자존감에 수많은 상처를 입게 되면서

나는 언제쯤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을지를 저울질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내년 3월이면 학교로 돌아가야만 한다.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려 얼마 전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던

최명화 작가의 < 나답게 일한다는 것> 책을 다시 열어본다.


" 증명에 목숨 거는 오디션 무대에서 내려와라. 상황이 어려울수록 나의 내면, 내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아가 내 방식대로 표현해야 한다.(p.176 )"


그래,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답게 내 방식대로 표현하고

그 과정의 부산물들은 그들의 몫이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나는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권한'은 없고 '의무'만 남은 자리에서조차 나는

매일 아이들과 빗자루를 들고 교실청소를 함께했다.

나에게 너무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냐며

핀잔을 주는 동료교사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권한'도 '권위'도 없다는 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거늘.

그 또한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내가 최선을 다한 방식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 나는 후회가 없다.


나는 지식을 전달하고 아이들의 내면을 살피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나의 '일'과 나의 '자아'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