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도 모성은 강했다

제13화: 아이의 목소리가 붙잡은 숨

by 최해주

우물속에 몸을 던진 연화와 원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럼 이야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보자.


“어머니.. 어머니.. 일어나 보셔요”

원이의 떨림이 물결을 타고 연화의 귀와 살갗에 스치기 시작했다.


“어머니.. 어머니.. 원이 여기 있어요..”

애처러운 원이의 목소리에 연화는 잠시 멈췄던 숨을 몰아 내 쉬며 순간 정신을 차렸다.


“아가. 내 아가.”


“원아! 괜찮느냐.”


“어머니 저 여기 있사옵니다. 어머니..”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여기가 어디느냐.”


“어머니 여기 우물속이여요.”


“아버지가 꼭 오신다고 하셨는데,

아직 오시지 않으셨어요.”


그제서야 정신 이 들었는지 폭등같은 그날이 스쳐지나갔다.


(아.. 우물속이지..._)


(그런데 우물이 왜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하지.)


(물이 하나도 차갑지 않잖아..)


(참.. 요상스럽네..

어떻게 우물 물이 이리 따뜻할수도 있지..)


순간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것을 깨닫고 연화는 서둘러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순간 뱃속에 있던 아이도 태동과 함께 안부를 전했고 그제서야 연화는 자신과 아이 모두가 살아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 물이 따뜻해요.”


“그래 원아 참 신기하구나..”


“우리 원이 배고프지 않느냐..”


“어머니 옆에 보세요 우물에 열매들이 둥둥 떠 있어요.”


“근처에 열매나무도 없을텐데..

거참 신기하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물안에 열매들이 하나둘 빛방울처럼 떨어지기 시작한다.


똑 똑 또

또 똑 또 똑


“어머니 하늘에서 열매 눈이 내려요.”


“어? 정말 그렇구나. 그거 참 신기하구나.”


“어머니 이거 돌섬에서 먹던 산수유와 오미자 맞죠?”


“참 희안하구나.. 돌섬 열매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설마…”

하고 위를 올려다 보니 연화의 돌섬 산새들과 까치가 우물안에 열매를 나르고 있는게 아닌가.


까치가 이어 준 생명


“까치야..까치야..너 였구나.”


(연화 아씨 깨어나셨군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몸은 괜찮으시죠? 지금 돌섬 산새들이 연화아씨 소식을 듣고 저마다 열심히 열매를 나르고 있어요)


(어서 열매 좀 드셔 보세요!)


“까치야... 정말 고맙구나..”


“너희가 우리 모자를 지켜주었구나. “


“혹시 바깥 상황은 어떻니..

혹시 우리 서방님은 살아계신거니?”


(연화 아씨 걱정 마셔요! 우리 돌섬 동물친구들이 윤이도령님 행방을 찾고 있어요)


(아마 윤이 도령님은 무사하실테니,

걱정 마셔요)


“아버님과 어머님 설희 아씨는 다들 무사 하시지?"


(아버님과 어머님 설희아씨는....)

잠시 까치는 말을 잇지 못 하였다.


“혹시 우리 아버지는..."


그러자 까치가 대답했다
(연화아씨 달수어르신 걱정은 하지 마셔요. 아버님도 무사하셔요.)


“그렇구나.. 그런데 우물물이 깊지도 차지도 않구나..”


(아마 우물 안에 있으시면 안전하실 꺼예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저희가 윤이 도령님을 찾고 있으니 찾는데로 모셔올께요.)


우물은 신기하게도 물이 빠졌다가 잠깐 차다가를 반복했다. 참 신기했다. 마침 우물에 있는 물이 다 빠지고 난 후 원이가 급히 연화를 부른다.


“어머니 여기 보셔요 여기에 큰 구멍이 있어요”


“어?? 그렇네 원아 이게 뭐지??”


“물이 찾을때는 몰랏는데 희안하구나 거참 우물에 구멍이라니..”


“어머니 여기 들어가봐도 되요?”


“안 된다! 어미가 먼저 한번 볼테니 기다리거라.”


우물아랫쪽 뚤린 구멍으로 연화가 들어가려 하자 만삭인 배가 걸려 들어가질 못하는데 고개만 빼꼼 내놔도 도통 구멍속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거 아 되겠구나 원아."


“어머니! 제가 한번 들어가 볼께요.”


“위험할수도 있어서 그건 안 된다.”


“아!! 어머니 아버지가 주셨던 박에 줄(새끼동아줄)이 있잖아요”

연화의 걱정에도 원이는 구멍안이 궁금한지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럼 원아 알았다. 이리와 보거라.

혹시 저기가 밖을 통하는 길이 있을수도 있겠구나.
원이 허리춤에 밧줄을 꼭 묵고 연화는 밧줄을 꼭 잡았다.


원아 이 어미가 줄을 꼭 잡고 있을테니,

어미가 줄을 세번 잡아 당기면 퍼뜩 나와야 하느리라!”


“그리고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원이도 줄을 세번 잡아 댕기려무나”


할수있겠느냐.”


“네 어머니 걱정 마셔요!!!”

그렇게 원이는 밧줄에 의지한채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 들어갔을까 원이가 말한다


경계 너머에 펼쳐진 세상


“어머니 여기 빛이 보여요!!”


“우물밖에 다른 마을이 있어요!”


“가서 사람들을 불러올께요!”


“안 된다! 원아 일단 다시 돌아오거라!!


연화는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원이를 다시 불렀다. 원이가 연화의 부름에 다시 우물안으로 들어왔다


괜찮느냐? 원아!”


원이는 잔뜩 흥분한듯 연화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 밖에 마을이 있어요!!”


“밖에 꽃들이 잔뜩 피어있고.

나비들도 훨훨 날아다녀요”


“꽃밭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연화는 생각했다.
(옆 마을인가?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지금은 겨울인데..)


(그렇다면 꽃이 있을수가 없는데..)


그때 마침! 연화의 배에 진통이 오기 시작한다.

통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잠깐 멎었다가, 다시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치 우물의 물이 차고 빠지기를 반복하듯, 산통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만 같았다.


“원아..”


연화는 배를 부여잡고 무릎을 굽혔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눈동자에선 ‘무슨 일이냐’는 두려움이 그대로 비쳤다.


어머니 어디 아파요?”


연화는 애써 웃어 보이려 하였으나,

웃음 대신 거센 숨만 새어 나왔다.


“원아 아무 걱정허지 말거라.

동생이 우리 원이가 보고싶은가 보구나."

연화가 말을 잇는 사이에도 통증은 다시 몰려왔다.


그 순간, 우물 안의 따뜻한 물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엔 발목에 닿는 정도였다. 그러나 통증이 세차게 몰려올 때마다 물은 마치 연화의 몸을 감싸 안으려는 듯 조금 더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물이 차오르면 통증이 잠시 누그러졌다. 그러다 다시 물이 빠지면, 통증은 더 또렷하고 날카롭게 돌아왔다. 연화는 우물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두 겹으로 둘러 두었던 속치마를 더듬어 한 겹을 조심스레 풀어 품에 놓았다.


그순간! 통증은 다시 세차게 몰아쳤다.


“하아.!”

연화는 이를 악물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신음이 터지려 했으나, 아이가 겁먹을까 싶어 꾹 눌러 삼켰다. 몸이 찢어질 듯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연화는 확신을 느꼈다.


끊어진 숨마저 잇는 모성의


(살 것이다.)


(이 아이도 살 것이다.)


그때, 까치가 우물 안쪽으로 조심히 날아 내려왔다. 까치는 연화의 바로 앞, 물 위에 떠 있는 박 근처에 내려앉아 고개를 낮췄다. 마치 “지금이다”라고 알려 주는 듯했다. 연화는 숨을 길게 내쉬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우물 안을 가르며, 아주 작고 또렷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응애!”


원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받쳐 들었다. 까치는 망설임 없이 연화의 곁으로 와, 정확한 자리에서 탯줄을 물고 한 번에 딱 끊었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우물 속 아이의 탄생

연화는 준비해 둔 치마 한 겹을 서둘러 한손으로 펼쳤다. 연화는 아이를 그 천으로 감싸 안았다. 아이의 작은 몸이 치마 속에서 웅크렸다. 연화의 배는 어느새 홀쭉해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만삭의 무게가 사라지자, 몸이 가벼워진 듯하면서도 기운이 쑥 빠졌다.

그 순간, 우물 안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물 자체가 숨을 고르는 것처럼, 조용히, 천천히. 물은 구멍 쪽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더니 바닥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물길을 따라— 따뜻한 바람이, 우물 안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돌아온 어머니의 목소리

어둠 속, 구멍 너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화야..”

연화는 숨을 멈췄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선명했다.


“연화야, 이리 오거라.”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그리운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순간, 연화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 어머니..”

원이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연화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원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이를 품에 더 깊숙이 안았다.

“원아. 할머니가 우릴 부르시는 구나. ”


이리 따라오너라.”


연화는 구멍 앞에 섰다. 배가 홀쭉해진 연화는 아이를 안은 채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연화는 몸을 숙이고,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돌은 젖어 있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바닥은 미끄럽지 않아 발을 디디기 쉬웠다. 어둠이었으나, 저 멀리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을 따라 걸어가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연화야.. 괜찮다.”


“그 아이도..괜찮다.”

연화는 숨을 삼키며 발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멍 끝을 통과하는 순간. 눈부신 빛이 연화의 얼굴을 감쌌다. 연화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었다. 밖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연화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겨울이어야 할 하늘은 봄처럼 맑았고, 공기는 따뜻했다. 눈이 쌓여야 할 땅은 꽃밭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꽃들이 바람에 물결치고 있었고, 그 사이로 수백 수천의 나비가 춤추며 날아다녔다.

그때, 저 앞 꽃밭 너머에서—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연화야...


나비들 사이로, 길이 열리는 듯했다. 우물 밖. 또 다른 세상. 연화는 이제 알았다. 여기는, 우물은 끝이 아니라, 경계였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성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

어쩌면 연화는 그날 우물 안에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잃었고,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어둠 속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연화는 일어섰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한 마디에, 자신의 몸이 망가졌는지도 모른 채 다시 숨을 쉬고, 다시 움직이고, 그렇게 홀로 아이를 낳았다.
모든 엄마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위기가 닥치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초인적인 힘들이 내 몸 어딘가에서 깨어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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