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천상에서 허락된 시간
연화는 품에 감싼 갓난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원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우물 속 작은 구멍 너머로 펼쳐진 세계는 눈물이 나올 만큼 눈이 부시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머니. 눈이 부셔요.”
다섯 살 원이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연화는 원이를 자신의 치맛자락 안으로 끌어당기고, 아이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겨울에는 절대 맡을 수 없는 봄 향기.
연화와 원이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꽃 향기에 점점 취해 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 여기 꽃 냄새나요.”
원이의 목소리가 소곤거렸다.
“그래.. 향기로운 꽃 냄새가 나는구나.”
꽃밭은 끝이 없었다. 꽃이 피어 있는 게 아니라, 꽃밭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바람이 없는데도 꽃잎이 흔들렸고, 흔들리는 방향이 제멋대로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걸어갈 길을 미리 만들어 주는 것처럼 한쪽으로 비켜났다. 눈부심이 조금 사라지자 연화는 원이의 눈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그때 원이가 연화의 치맛자락을 힘주어 잡아당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기 보셔요!”
“원아 왜 그러느냐.”
“나.. 나비가 너무 커요..”
연화가 보니 정말로, 나비들이 너무 컸다.
나비의 날개엔 무늬가 아니라, 글씨 같은 무언가가 비쳤다. 빛이 꺾일 때마다 글씨는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때였다.
꽃밭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발을 딛는 소리가 없는데도, 존재감만큼은 또렷했다. 그 순간! 연화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 어머니?”
입술이 먼저 그 이름을 불렀다.
“연화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연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입에서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연화를 끌어안았다. 그 품은 따뜻했고, 사람의 체온이라기보다, 햇살이 살갗을 감싸는 따뜻함이었다.
“그래,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구나.”
연화는 어머니의 옷깃을 붙잡고 울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어머니.. 저와 제 아이들이 죽은 건가요?”
어머니는 연화를 조금 떼어놓고 눈을 맞췄다.
“아니. 아니다 연화야.”
연화가 숨을 삼켰다.
“너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럼.. 여긴...”
연화는 꽃밭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긴 죽은 자들과 신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원이도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조심히 말했다.
“할머니.. 여기는 그럼 천당이에요??
어머니가 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선녀들이 있는 천당이요!”
원이의 말에 어머니가 웃었다.
“그래, 원아. 여긴 선녀도 있고 산신령도 있고,
죽은 사람들도 있단다.”
“죽은 사람?? 죽은 사람들은 여기서 뭐해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원이가 알아들을 말로 천천히 말했다.
“쉬는게지 .
쉬면서, 다시 길을 고르는 거야.”
원이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길? 무슨 길이요?”
“응. 집에 돌아갈 길인지,
아니면, 아주 멀리 가는 길인지.”
원이의 눈이 커졌다.
“나 집에 갈래요.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랑 저 꼭 데리러 오신다 했어요.”
연화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남겨진 아버지와 윤이가 생각났던 것이었다.
“그래, 원아. 우리 집에 가야지.”
연화의 어머니 설화는 연화 품에 있는 갓난아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연화를 닮은 예쁜 딸을 낳았구나.”
연화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우물에서...”
“여자아이예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아이는 이곳의 숨결을 잠시 빌려 태어났단다.”
연화는 그 말이 무서웠다.
“잠시 빌려요?”
어머니가 연화의 손을 꼭 잡았다.
“겁내지 마라.”
“이 아이도 너희도,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연화는 숨을 골랐다.
“어머니, 그러면.. 왜 제가 여기로…”
어머니가 원이를 바라보았다.
“원이가 열쇠다.”
연화는 눈이 커졌다.
“열쇠요?”
원이도 바로 반응했다.
“열쇠? 문 여는 거?”
어머니는 원이의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응. 문 여는 거.”
“근데 너는 그냥 열쇠가 아니고.”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말은 한 번에 넣지 않는 듯했다.
“너는 문을 ‘보는’ 열쇠야.”
원이의 눈이 더 커졌다.
“문이 보여요?”
“그렇단다.”
원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나.. 문 안 보이는데...”
“지금은 원아. 아직 네가 몰라서 그렇단다.”
“너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느끼는 아이거든.”
“어머니 사실 저는 원이가 특별한 아이란 걸 알고 있어요.”
“원이는 너를 꼭 빼닮았다.
원이는 네가 못 보는 것을 보고,
너는 반대로 듣지 못하는 걸 듣고 있지.”
그 순간, 연화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말도 아니고, 바람소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소리였다.
(따뜻하게 감싸.)
(아기가 추워해.)
(아가야 울지 마.)
연화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어머니.. 지금...”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리느냐.”
연화의 입술이 떨렸다.
“꽃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요.
저는 원래 동물 소리들만 듣곤 했는데.
꽃들의 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여요.”
그때, 꽃밭 가장자리에서 토끼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토끼는 연화 앞에서 멈추더니 고개를 까딱했다. 연화는 그 순간 또 들었다.
(연화아씨 안녕하세요.)
연화는 숨을 멈췄다.
“저 토끼는.. 내가 어릴 적 봤던 그 토끼 같은데..”
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꽃밭 한가운데, 더 밝은 곳이 있었다. 빛이 기둥처럼 내려오는 자리. 그곳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옷자락이 바람도 없이 흘렀고, 얼굴은 분명 있는데도,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 눈이 시렸다. 빛이 너무 맑아, 인간의 눈이 오래 붙잡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원이가 연화의 치마를 꼭 잡으며 소곤거렸다.
“어머니 사람들이 별처럼 반짝반짝해요.”
“그래. 그렇구나..”
“근데.. 나는 저 사람들이 무서워요.”
연화는 원이를 끌어안고 달랬다.
“아가. 무서우면 고개 돌려라.”
그때, 빛기둥 근처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긴 꼬리. 돌섬에서 원이가 “긴 꼬리 누나”라 부르던 그 존재였다.
“원이야!”
소녀가 달려왔다. 그리고 원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원이의 눈이 커졌다.
“누나!!”
“응. 나 기억하지? 원아?”
원이는 갑자기 울상이 됐다.
“누... 나.. 누나 보고 싶었어...”
소녀는 원이를 꼭 안아줬다.
“나도..”
그 소녀는 원이가 돌섬에 서봤던 예쁜 여우누나였다.
원이의 작은 손이 소녀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근데 누나.. 여긴 어디야...”
소녀는 꽃밭을 둘러봤다.
“여긴 우리가 잠깐 쉬는 곳.”
“쉬는 곳?”
“응.”
원이는 순진하게 물었다.
“그럼 나 여기서 누나랑 계속 쉬면 돼?”
소녀의 표정이 잠깐 슬퍼졌다.
“계속 쉬는 사람도 있고..”
“다시 가는 사람도 있어.”
원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 가?”
“응. 이승으로.”
연화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이승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여우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무나 가는 건 아니야.”
꽃밭에 모여 있던 존재들이 조용히 길을 열었다. 연화는 그 틈으로 보았다. 인간의 모습이었다. 옷도 인간의 옷이었고, 머리도 인간의 머리였다. 그런데 그의 발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양옆엔 신들로 보이는 존대들이 양쪽에 서 있었다.
“저게 심판이야.”
여우 누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판?? 그럼 저 아저씨 혼나는 거야 누나?”
원이가 물었다.
“아니. 저 아저씨가 지금껏 이승에서
자기가 한 일들을 봐.”
“착한 일과, 나쁜 일 그런 걸 직접 본 뒤에 신들의 심판속에 다시 환생할수도 있고, 이승에서 사람들을 도우는 신이 될수도 있어.”
빛에 무언가 쌓였던 희미한 정체가 보인다. 바로 연화가 매일 기도드렸던 우물이었다. 그 우물 앞에 심판을 받는 자는 우물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며 저질렀던 순간들, 행복, 슬픔, 모든 과정들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아 행복에 흘리는 눈물의 장면, 굶주린 사람에게 밥 한 술을 나눠주던 장면, 아픈자들을 치료해주는 장면, 동물들의 생명을 여럿 구해주는 장면 등등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장면들이 빠르게 보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이곳의 심판은 ‘벌’이 아니다.”
“자신이 살았던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용기.”
“그게 심판의 시작이다.”
연화는 눈물이 났다.
그때 신들 중 하나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말로 묻지 않았다. ‘물음’이 그대로 마음에 꽂혔다.
“너는 선택할 수 있느리라.”
“다시 이승으로 내려가 신이되어 사람들을 돕겠느냐. ”
“아님 다시 새로운 삶으로 환생하겠느냐. ”
“아님, 고통 없는 이곳에 머무르겠느냐.”
그 자는 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저는... 사람들을 돕는 신이 되고 싶습니다.”
“그땐 가진 게 없어 많이 도우지 못했지만,
제게 기회가 주어 진다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 순간 빛이 달라졌다. 빛기둥이 더 맑아지며, 그 사람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그 사람의 그림자가 생겼다. 원이가 숨을 들이켰다.
“어머니 저 아저씨에게 그림자 생겼어요!”
연화도 보았다.
죽은 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지금, 그림자가 생겼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 사람은 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원이의 입이 벌어졌다.
“신이요?”
“응.”
“신이 되면 뭐해요?”
어머니는 원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승에 내려가 사람을 돕는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주고,
외로운 아이 옆에 바람 한 줄기를 놓아주고,
슬픈 사람들의 등을 한번 토닥여주기도 하지.”
원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신은 착한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했다.
“착한 사람이기도 하고...”
“많이 아픈 사람이기도 해.”
원이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왜요?”
“아파 본 사람만 남의 아픔을 알아채거든.”
연화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물 속에서의 고통이 떠올랐다. 몸이 찢어질 듯한 산통, 아이가 겁먹을까 신음을 삼키던 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더 강해지던 마음.
연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혹시 그러면 저도
신이 될 수 있나요? ”
어머니는 연화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아직 이승의 사람이야.”
“너는 돌아가야 한다.”
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돌아가면... 또 위험할 텐데요.”
어머니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래서 이곳이 유혹이 되는 거다.”
“여긴 따뜻하지.”
“배고픔도 없고, 추위도 없고, 칼도 없고,
사람의 악의도 닿지 않으니까.”
연화는 품의 아기를 내려다봤다. 아기는 아주 조용히 자고 있었다.
“이 아이도.”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는 이곳에서 태어났으나,
이곳의 아이가 되면 안 된다.”
연화의 숨이 멎었다.
“이곳의 아이가 되면….”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긴 꼬리 소녀가 대신 속삭였다.
“여기서 오래 있으면 인간이 아니게 돼.”
원이의 얼굴이 하얘졌다.
“나는 인간이여요!!”
연화는 원이를 꼭 껴안았다.
“그래, 너는 인간이다.”
“어머니..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원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연화는 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집에 가자.”
그때, 꽃밭 끝에서 낯익은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수리부엉이는 연화의 어깨 가까이에 내려앉았지만, 예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달랐다.
깃털의 끝은 빛으로 번져 있었고, 눈동자 안에는 이 세계의 하늘이 고요히 비치고 있었다.
(연화 아씨.)
연화는 깜짝 놀랐다.
‘말’이 아니라 ‘생각’이 들려왔다.
(윤이 도령님이 살아 계십니다.)
연화는 숨을 들이켰다.
(달수 어르신도 살아 계십니다.)
그 말에 연화의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정말이냐!”
수리부엉이가 덧 붙였다.
(하지만 이승은 아직 위험합니다.)
(연화 아씨가 돌아갈 길은 원이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머니가 연화의 등을 쓰다듬었다.
“연화야.”
“이곳에서 며칠만 더 쉬어도 된다.”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요...”
어머니는 미소 지었다.
“이곳의 하루는 이승의 하루와 다르다.”
“너는 여기서 숨을 고르고,
아이들을 안고, 다시 마음을 매만져야 한다.”
연화는 흔들렸다.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의 따뜻함이 너무 컸다.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원이는 문이 열려 있다.”
“그래서 신들도, 죽은 자들도
원이에게 먼저 반응한다.”
긴 꼬리 소녀가 원이의 귀에 속삭였다.
“그래서 너는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
그때 꽃밭의 꽃들이 살짝 더 크게 흔들렸다.
(여긴 안전해.)
(괜찮아.)
(우리가 지켜줄게.)
연화는 꽃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서서히 풀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마음 한쪽은 여전히 불안했다. 이승에 계실 아버지와 남편이 너무 걱정이 되었다. 천상에서 흐르는 시간은 이승의 시간과 다르다 하였기에 이곳에서의 짧은 머묾이, 자신이 돌아갔을 땐, 어쩌면 긴 세월이 흘러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던 것이었다.
연화의 걱정을 눈치챈 어머니가 연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연화야.”
“아무 걱정 말거라.
아버지와 김서방은 안전할 것이다.”
“지금은 일단 너도 아이들도 몸을 추스르는 게 우선이다. 이대로 이승으로 다시 돌아갔다간, 이승에서도 천상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단다.”
“그러니 이 어미를 믿거라.”
연화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원이의 작은 손을 다시 꼭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지금은 두려움보다 살아남는 것을 선택하겠노라고.
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천상이 허락한 이 시간 속에서 버텨내겠다고. 그렇게 연화와 원이 그리고 갓 태어난 연화의 딸은 천상에서 잠시 머물게 된다.
이 장면에서 연화가 선택한 것은 도망도, 포기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시간을 견디는 일이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특별한 용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을 때,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숭고한 선택들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