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미움마저 죄로 재단할 수 있는가.
하늘은 결국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법.
연화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또의 밤마다 울부짖는 비명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믿음은 더 단단해졌다. 그러나 하늘이 움직일 때는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한 번에 모든 것을 쓸어간다는 걸 연화는 아직 알지 못했다.
설화가 세상을 떠나고, 윤이 장원급제로 돌아온 지 또 몇 해가 흘렀다. 원이의 발은 어느새 집 안 마당만으론 모자라 돌섬까지도 척척 걸어갈 만큼 자라 있었다.
“어머니, 이리 오셔요.”
다섯 살이 된 원이는 늘 그랬듯 돌섬으로 가는 좁은 산길을 앞장서서 뛰어갔다. 연화는 만삭이 된 배를 부여잡고 조금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아이고, 우리 원이 도령님.
엄니 배에 동생도 있는데 같이 가야지요.”
연화의 말에 원이는 급히 가던 걸음을 멈췄다.
돌섬은 마을 사람들 눈엔 그저 ‘선과 악을 가린다’며 모두가 가길 꺼려하는 곳이었지만, 달수와 연화, 그리고 원이에게 돌섬은 그저 편한 엄마 품과도 같은 곳이었다.
처음엔 꿈 이야긴 줄 알았다.
“어머니, 저기 누나 엉덩이에 여우꼬리가 있어요.”
“어머니, 아이들이 나비처럼 하늘을 날아다녀요.”
원이 말이 트일 무렵, 원이 는 돌섬에만 가면 허공을 쳐다보며 이상한 말을 늘어놓곤 했었다. 하지만 연화는 이제 막 말이 트인 원이의 말을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원이의 말들이 하나둘 현실과 일치하기 시작하자, 연화는 원이가 자신과 같은 특별한 능력이 혹시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원이 가 네 살 무렵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 저 나무가 곧 쓰러질 것 같아요.”
원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나무는 겉으론 멀쩡해 보였다.
“저렇게 꿋꿋하게 서 있는 나무가
왜 쓰러지겠느냐, 원아. 아무 걱정 말거라.
돌섬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다 강인하단다.”
“아니여요, 어머니. 참말이어요.
저 나무가 두 개로 갈라지며 쓰러지고 있어요.”
연화는 그런 원이의 말을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그 나무는 연화가 어릴 적에도 봤던 아주 크고 튼튼한 나무였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도 멀쩡하여 한 백 년은 더 살 것 같은 우직한 나무가 쓰러져 갈라진다는 말에 연화는 원이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 뒤, 마을에 홍수 같은 비와 큰 바람이 한 번 지나가고 다시 잠잠해졌을 때쯤. 연화는 아들 원이와 함께 돌섬을 찾았다. 그러자 정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돌섬의 다른 것들은 다 그대로인데, 원이가 가리켰던 그 나무만 꼭 번개를 맞은 듯 두 개로 쩍 갈라져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그 나무는 그대로 부러져
쓰러져 버렸다. 또 다른 날, 원이가 돌섬 숲길을 지나며 말했다.
“어머니, 저기서 누가 떨어졌어요.”
“어디?? 지금?언제 그랬는데?”
“아주 옛날에요.
피가 바위에 잔뜩 묻었어요.”
연화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달수 아버지가 떨어졌던 그 절벽을 가리키는 원이 연화는 순간 아버지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 근데 어머니 이상해요.”
“응? 왜 그러느냐 원아 왜?”
원이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어떤 할아버지가 손으로 만지니까
그 쓰러져있던 아재 피가 없어졌어요.
어? 그런데 쓰러진 아재가 꼭 우리 외할아버지를 닮았어요. 달수 할아버지처럼 엄청 큰 아재예요!!”
연화는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랬구나. 원아. 연화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의 아버지가 돌섬의 신들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것을.
그런 원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연화가 바라본다.
“원아. 얘기는 원이와 엄니 둘이만 얘기하기로 약조허자. 어디 가서도 이런 얘기하면 안 된다.”
“왜요, 어머니?
그럼 할아버지, 아버지, 할머니한테도 말하지 마요?”
“그래. 절대 이건 원이와 엄니 둘만 아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들으면 놀라셔.”
“엄니가 동물 친구들과 대화하는 거 원이는 알지? 엄마가 원이한테만 말했던 것처럼,
원이도 이 얘기는 다른 누구에게도 절대 말허면 안 돼.”
“아..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해요? 왜요?”
“다른 사람들은 원이와 엄니처럼
동물들과 대화를 하지도 않고,
긴 머리 할아버지도, 예쁜 여우 누나도
보고 듣지도 못하거든.”
“다른 사람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걸
우리 둘만 듣고 본다면, 얼마나 무섭겠니? 그렇겠지?”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그럼 엄니와 저랑 비밀이에요?”
“비밀? 그래, 원아.
너와 나와 단둘이 아는 비밀로 하자꾸나.”
연화는 그런 원이가 귀여운 듯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사또의 악몽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저리 안 가느냐! 썩 물러가라!!”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는 날이 더 잦아졌다.
하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아니, 갈수록 더 심해지지네.
참말로 귀신이라도 들린 거 아니신가 몰러.”
“아이고, 이 사람 모가지 날아갈 소리 허고 있네.
양반 어르신이라도 들으면 말한 자네 주둥이도,
옆에서 듣고 있던 내 귀도 성치 못할 거여.”
“절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허들 말고,
내 앞에서도 그런 소리 허들 말어!
오금이 다 저리네.”
“우리 둘만 있는디 뭐 어뗘!! 참말로.”
연화는 멀찍이 서서 두 하인이 말하는 모습을 다 듣고 있었다.
“하늘은 참말로 공평한 법이지요.”
연화가 낮게 중얼거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혔소.
양반 어르신의 그 추악한 얼굴들이
이제 낮 새들한테도 다 까발라지는구만요.”
달수가 목숨 걸고 캐논 귀한 산삼을 나라에 올리지 않고 몰래 빼돌리던 날들, 그 약재를 사또 자신만을 위해 꼭꼭 숨겨두었던 그 욕심, 그 모든 걸 하늘과 연화는 알고 있었다.
“채삼 행수 달수는 이리로 나오시게."
개똥이가 먼저 나와 달수에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감영에서 달수 어르신을 찾으셔요.
퍼뜩 나와 보셔요.”
“감영에서? 아이고, 잠깐만, 바로 나가겠다.”
“아니, 이 야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사옵니까?”
“조금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동안 올린 산삼과 약재,
전부 자네 손을 거쳐 갔다지?”
“그렇지요. 돌섬에 갈 때마다
귀한 삼과 약재들을 꼬박꼬박 나라에 받쳤지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요?”
“장부가 다르다.
왜 삼들이 하루 걸러, 이틀 건너,
달이 지나도록 약재를 내질 않는 것이냐?”
“궁에서 확인한 물목과
이 고을에서 올렸다는 물목이 서로 다른 걸,
달수, 네 입으로 설명해 보거라.”
달수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럴 리가 없사온디.”
“어허! 네 말대로라면
그럼 약재들은 다 어디로 갔다는 게냐?”
“아니, 저는 사또 영감 나리께 전해 드렸는디요.
사또 어르신이 이제 사또께 드리면 된다고 하여
그리 하였는디요.”
“어디 뚫린 주둥이로 그짓말을 하느냐.
달수, 네 놈에게 오기 전에 관청은 미리 들렀다 왔다만, 사또는 달수, 요즘 네가 통 약재들을 바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혔다.”
“이래도 발뺌을 할 참이냐?”
“진상 물목에 손을 댄 자는,
대개 역적들과도 손을 잡는다더니,
혹시 역적들과 손을 잡고 나라에 올릴 것을
네가 빼돌린 것이 아니냐?”
“그럼 제가.. 역... 적이요?”
“나라에 올릴 것을 빼돌린 자,
그걸 받아 챙긴 자,
그걸 사서 모은 자.
그 한 줄기 안에 역모의 냄새가 난다 하여
윗전에서 샅샅이 캐고 있다.”
달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무언가 지금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달수는 체념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설화야… 이게 무슨 일이 당가..)
(대체 이걸 어찌하면 좋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을 한가운데 큰 북이 울렸다.
“모두 모여라!
전하의 교지를 반포한다!”
관원이 붉은 비단에 싸인 교지를 펼쳤다.
“본 고을 사또와 그 일가,
채삼 달수는 진상 물목을 속이고
역적과 내통한 죄가 밝혀졌으니 삼족을 멸하여 경계로 삼는다.”
“삼족이라면.. 부모, 형제, 사돈까지??”
“그라제..며느리, 손주까지 몽땅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큰일이네.
아니, 행수 어르신이 절대 그럴 리가 없는디,
안 그려요?”
“그러게 말이여.
달수 행수 어르신이 그럴리가 없지요.
말이 안 되잖소. 그 바르고 심성 고우신 분이.
나라를 위해 그렇게 삼을 몇백 뿌리는 바쳤을 텐디.”
“아이고, 이 사람아.
죄가 없는디 나라에서 저러겄어?
죄가 있으니 그렇겄지.”
“그럴리가요. 근디 나는
행수 어르신보다 사또 어르신이 수상허단게요.”
“아니, 행수 어르신이 어느 날
삼들을 나라에 직접 바치지 않고
사또 어르신을 거쳐 갔다고 했잖소.”
“그 사또 어르신이 중간에 꿀꺽한 거 아녀요?”
“아니, 근디 이 사람이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을 혔나.”
“자네 입 조심허게. 진짜 모가지 날아가겠네.”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자 연화의 머리는 순간 멍해졌다.
(삼족을.. 멸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연화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돌섬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곤 연화는 속삭였다.
(왜 죄 없는 우리 아버지까지.
그리고 왜 우리 서방님과 우리 아이까지.)
(이게 맞소이까? 대체 진실이 있긴 한 거요?)
(설마 내 탓입니까요.?
내가 사또어르신을 그리 미워한 대가요?)
(내가 사또어르신을 매일같이 증오하여 이리도 벌을 주는 것이오?)
(그렇다면 사또어르신과 저만 받아야 마땅할 것을. 왜 불쌍한 우리 아버지를..)
연화는 배를 부여잡고 눈물을 훔치며 돌섬으로 향했다.
“어떻게 된 거요, 어머니.”
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윗전에서 이미 본보기’를 정한 모양이다.
진상 물목에 손을 댄 죄를 역모와 엮어 버리면
웬만한 말로는 안 풀리지.”
“연화야.. 아가, 거기 있느냐.”
“예.”
“너와 원이는 지금 당장 이 집을 떠나야 한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머니, 저는 못 갑니다요.
어찌 어머님과 아버님, 설희를 두고
도망이라니요.”
“윤아 아니다. 너는 아비다.
연화와 원이, 그리고 연화 뱃속에 있는 네 자식까지 지켜야 할 두 아이의 아비다.”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연화와 원이를 데리고 피신하거라.”
그러자 윤이 원이와 연화를 보며 비장한 눈으로 말하였다.
“나는 여기 남는다.
나는 이 집 장자다.
아버님과 어머님, 설희는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한다.”
“연화야, 너는 내가 본 누구보다 강한 여자이다.
그리고 너는 어미니라. 나는 너를 믿는다.”
윤은 원이를 향해 몸을 숙였다.
“원아. 아들아, 내 아들아, 우리 원이.
어머니 잘 지켜줄 수 있지?
우리 원이는 멋진 사내대장부지?”
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윤아, 그러지 말거라. 시간이 없다.
어서 연화와 원이를 데리고 떠나가거라.
제발, 어미 말 좀 듣거라.”
그러자 연화가 나섰다.
“어머니..서방님 말씀이 옳습니다요.
걱정하시지 말고, 부디 몸 건강히 다시 뵐 그날까지...”
윤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원이와 연화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밖의 횃불은 휘날리고, 사람들 고함 소리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자와 죽이려는 자들의 쫓고 쫓김이 시작되고 있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던 세 사람은 막다른 우물 앞에 도착하였다. 윤은 숨을 몰아쉬며 우물을 내려다보았다. 물빛조차 보이지 않는 깊고 캄캄한 어둠만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 연화의 손을 붙잡고 속삭였다.
“살 운명이면 살 것이오.
죽을 운명이면 신이 부를 것이오.”
“장모님이 당신과 우리 원이를 지켜줄 거라 나는 믿소.”
“ 더 이상 이제 피할 곳이 없다오.”
윤의 눈빛이 떨렸다.
“원아 이 아비와 저 아래 강가에서 박 가지고 헤엄쳤던거 기억하지? 그때, 아버지랑 논 것처럼 잠깐만 우물에서 헤엄치고 놀고 있으려무나. ”
“엄니는 원이를 꼭 껴 안아야 헌게, 원이가 절대 이 박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알았제?”
(이 아버지가 꼭 다시 데리러 오마
부디 어미와 같이 무사히 살아다오..)
윤은 떨리는 손으로 밧줄에 엮은 박 두 개를 원이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연화는 눈물을 머금고, 가까워져 가는 죽음의 발걸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우물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윤이 연화에게 재빨리 원이를 안겨주었다.
윤이 연화를 밀기도 전에 연화 스스로 우물 안으로 몸을 던진다. 우물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한참 후에야 ‘풍덩’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윤은 눈물을 흘리며 연화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원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윤은 원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하며,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급히 향했다.
이들 가족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의 아들 원이의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우물 속에 몸을 던진 연화와 뱃속의 아이는 무사할까.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금 이 순간, 연화와 원이, 그리고 달수에게 닥친 이 참담한 운명이 과연 하늘의 정의라 할 수 있을까? 왜 죄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도망치고, 절벽까지 몰리고 있는걸까.
분명 이런 불행과 고난이 닥쳤을 때는 다 뜻이 있을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전부 흘러가는 한때일 뿐이다. 그 속엔 실수가 아닌‘구원’이라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걸 하늘이 마지막 카드를 내준 것일지도 모른다.
강한자는 이 고통을 이겨낼지어고 그렇지 않은 자는 하늘도 포기할지어니.
운명은 어쩌면 하늘이 정해주는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하는 몫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