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고스트 스토리(2017, 데이빗 로워리)> 리뷰

by siyn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된 리뷰입니다.



가끔 무언가를 두고 온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후드집업의 주머니가 휑한 느낌. 대상이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두고 온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는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문득, 잊어버린 것이 나를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렇다고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흐릿한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단지 평범한 풍경만이 내 앞에 있을 뿐이다.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바로 그런 어른거렸다 사라져 버린 잔상에 대한 이야기다.


죽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는 걸까.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이별의 공식에 물음을 던진다.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 곁을 떠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우리 곁에 다른 방식으로 머무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중심이 되는 연인은 소소한 일상을 함께한다. 노래를 들려주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연인의 시간. 하지만 그 일상은 갑작스러운 이별로 깨져버리고 만다. 남자는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여자는 그의 차갑게 식은 몸을 마주한다. 함께였던 집. 그러나 이젠 홀로 돌아올 뿐이다. 여자에게 남겨진 건 사람 하나 분량의 빈자리고, 그 빈자리는 너무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여백이다.


사라진 연인이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를 다시 불러낸다. 죽은 자가 살아있을 적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남자의 잔상이다. 잔상은 흰 이불을 뒤집어쓴 채 마치 귀신(ghost)처럼 여자의 곁에 머문다. 실체를 잃어버린 존재는 물질적 세계에서 의미를 잃어버린다. 염원이 불러낸 잔상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볼 뿐이다. 다가감과 접촉은 허락되지 않는다. 여자 역시 그 잔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잔상 역시 사랑하던 여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도 위로를 건넬 수 없다는 비극적인 사실에 직면한다. 전처럼 사랑을 속삭일 수도 없다. 돌아온 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그저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다음이 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여자는 전부 토해내더라도 꿋꿋하게 파이를 입에 밀어 넣는다. 살아가야 할 삶의 무게는 외면할 수 없는 허기와 닮았다. 괴로운 시간을 통과해 낸 여자는 남자와 함께 겪지 못하는 미래를 마주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둘 사이 공유되지 못하는 여자만의 기억을 만든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그림자 같던 잔상과 멀어진다. 멀어지는 여자를 잔상은 붙잡지 못한다. 그는 무형의 존재기에. 그저 ‘머무름’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산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죽은 사람은 그 자리에 고여간다.


작은 쪽지를 문틈 사이에 끼워 넣은 채 집을 떠나는 여자를 그저 바라만 본다. 잔상은 그 작은 쪽지에 기대어 머문다. 어쩌면 그 쪽지에 자길 향한 여자의 마지막 고백이, 편지가 적혀있을 것이란 희망에 사로잡힌 채로.

자신이 이 집에 돌아온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맞은편 집에 있던 또 다른 잔상. 유일하게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여자가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마음에 내려앉는다. 기다림의 대상조차 흐릿해질 긴 시간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간 속에 홀로 있다 보면 건너편의 그처럼 자신도 여자와 쪽지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르페우스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녀 대신 다른 사람들이 집을 차지한다. 잔상은 그 현실을 부정하지만 막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한다. 실체를 잃어버린 존재는 물질적 세계에서 의미를 잃어버릴 뿐이다. 둘만의 공간에 새로운 흔적들이 덧입혀지고 그는 스스로의 의미를 잃어간다. 자길 불러낸 집과 여자- 두 존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다. 시간은 흐르고 잔상은 옅어진다. 잔상을 붙잡아두던 집도 시간이 흘러 허물어지는 결과를 맞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간이 역행한다.

잔상은 어느 순간 과거로 돌아간다.


집이 사라지기 이전, 그 이전, 그리고 더 이전의 시간에 도착한다. 집의 터를 처음 잡는 정착민들. 그리고 또 긴 시간. 그 모든 기다림의 끝에서, 여자가 다시 돌아온다. 살아있을 적 자신과 함께. 영화 초반부 행복했던 장면이 되풀이된다. 피아노를 조율하고 노래를 듣는다. 하지만 순리는 정해져 있다. 순서대로 남자는 죽고 여자는 괴로워한다. 시간이 또다시 흐르고 그녀는 다시 떠난다. 잔상이 홀로 남겨지는 두 번째 순간이다. 억 겹의 시간 동안 간직해 온 그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듯 쪽지는 손바닥 위에 떨어진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읽는 순간 기다림의 목적을 달성한 잔상은 흰 천만 남기고 사라진다. 미련은 소멸한다.


쪽지의 내용은 여자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들이 역사를 거스르게 한다. 사소한 것들이 잔상을 이곳에 묶어둔 것이다. 우리가 남기고 가는 삶의 작은 흔적들. 흔적을 애절하게 소망하며 표류하는 잔상. 무게 없이 떠도는 그들. 남겨진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 영화는 이 모든 감정을 천 안에 품은 누군가의 미련으로 보여준다.


떠난 그들이 나를 계속 지켜봐 줬으면 하는 마음. 나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우리의 욕망 아래 만들어진 잔상은, 허공에 건네지 못할 위로를 건네며 떠나버린 우리를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지금 뒤돌아본다면, 어쩌면 그들이 여전히 우리가 떠난 자리에 남아 손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2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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