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를 감수하는 최후의 고백

<본즈 앤 올(2022, 루카 구아다니노)> 리뷰

by siyn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된 리뷰입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구의 증명, 최진영』



카밀 드 엔젤리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본즈 앤 올(2022)>은 또래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로맨스 장르의 영화다. 그러나 다른 러브스토리와 큰 차이점이 있다면, 두 주인공 매런과 리는 인간을 먹어버리고 싶어하는 ‘식인’의 본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 본능은 둘을 자연스레 평범한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매런은 자제하지 못하는 식욕 탓에 아빠와 계속해서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았고, 그 아버지마저 매런이 18살이 되자마자 더 이상은 너와 함께할 수 없다며 떠나가버린다. 리 역시 스스로를 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킨다. 그는 미국 여기저기를 헤매며 방랑자를 자처한다.


둘의 만남은 우연적이었다. 하지만 둘이 함께하는 것은 거의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서로를 알아차린 후, 인간의 가장 큰 금기를 범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공통점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세상에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을 찾았다고,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누군가로부터 떠나온 둘은 마침내 서로의 정착지를 찾았다고 믿는다. 그 어떤 것도 감추지 않고 기댈 수 있는 존재를 만났다.


기본적으로 포옹이란 스킨십은 따스함이란 속성을 반영한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품 속에서 안정감을 찾곤 하는 것이 포옹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내 몸을 상대에게 온전히 내놓는 것. 그러나 '이터'간의 관계에서 포옹은 다른 사람들과의 포옹과 차이점을 가진다. 이터란 사람을 먹는 존재로, 그 대상엔 다른 이터 역시 포함된다. 이터 역시 사람이기에 포옹이란 행위는 어쩌면 네 먹잇감이 되도록 자신을 노출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매런과 엄마가 만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매런은 엄마에게 이터의 본능을 물려 받았다. 그렇게 찾아다녔던 엄마는 매런이 엄마의 품에 안기는 순간, 매런에게 위협을 가한다. 모녀의 관계보다 이터 간의 사이라는 관계가 두드러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리와 매런은 매런과 엄마처럼 이터이기 이전 그저 소년과 소녀의 관계임을 강조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몸을 기댈 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은 부재한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타인을 먹어치우며 삶을 이어온 이들에게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의 해피엔딩은 허락되지 않는다. 작품에서 두 주인공 간의 사랑은 결국 매런이 리를 뼈까지 전부 씹어 먹어버리는 식인 행위로 귀결된다. 어쩌면 금기의 허기에 시달리는 자들이 만났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매런이 한 소녀를 먹음으로 시작된 영화에 걸맞는 수미상관적 엔딩이다.


피범벅인 모습으로 홀로 남아버린 매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본즈 앤 올>의 엔딩이 서글프면서도 잔혹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카니발리즘으로 표현되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상대를 완전히 나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마음을 이기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랑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 전제에는 21세기 현재 팽배해진 ‘개인주의’ 심리가 있을 것이다. 각자는 독립된 존재이며 결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소유격으로 불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누구보다 외로워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싶고 함께이고 싶다. 혼자는 정말 싫다. 나와 평생을 함께할 누군가에 대한 욕구는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해왔다. 이런 마음은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합일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으로 발전된다.


그런 점에서 <본즈 앤 올>의 상대를 전부 먹어버리는 사랑의 표현은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처절한 고백의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섭취는 필연적으로 소화를 동반한다. 영원한 포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 방식의 사랑은 잠시 느낄 수 있는 합일의 만족감과 맞바꾸는, 이후 끝없는 허기를 감수하겠다는 사랑 고백일지도 모른다. 너는 내 안에 있다고 믿으며 애진작 텅 비어버린 배를 쓰다듬겠단 미래를 예견하는 결핍의 사랑이다.


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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