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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y 24. 2024

돈벌이로 일하는 남편과 업으로 일하는 아내

다름이 만드는 조화

가정을 꾸려서 자녀들을 낳아 키우는 일 못지않게 일은 중요한 삶의 영역이다. 나와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는 일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나는 과하게 가치와 의미를 지향하는 사람인지라 설렘을 주는 가치와 의미가 발견되면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의미가 퇴색되면 사는 맛을 잃어버려서 더 이상 그것을 해낼 힘을 낼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다르다. 모든 일의 가치와 의미는 '돈'을 버는 것에 있을 뿐 더 이상 이면의 비물질적 가치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는 일을 업으로 하지만 남편은 그야말로 직장인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 통제권을 내가 갖는 것, 다른 말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건 진짜 싫어한다. 대신, 이전에 있었던 일도 내가 하면 다르게 변화를 주어야 성에 차는 편이다. 교수라는 직업도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연구를 할 때도 나는 답을 정해 놓고 길을 찾는 연구에는 흥미가 없다. 확실치 않은 현상,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더 즐긴다. 한편, 남편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하고 좋단다. 특히나 남편이 하는 일은 안전이 중요한 공항 설계 영역이라 시행착오를 감수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영역이 아니란다. 오래전부터 누적된 확실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자기 생각대로 일하는 사람과는 맞지 않는 분야라고 한다.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 가족들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삶의 9할 이상은 가족에게 맞춰진 사람이다. 그러니 삶의 대부분의 가치를 가족에서 배분하다 보니 '가족을 위하는 것'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일을 업으로 생각하는 나는 때로는 가족보다 일에 더 몰입할 때가 있다.


일에 대한 태도는 이직 횟수와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업으로 하는 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이직을 쉽게 결정한다. 한 번 되기도 어렵다는 교수임용을 3번이나 대학을 바꿔가며 나와 맞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는 건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예일 수 있다. 한편, 연봉과 복리후생 등 확실한 베네핏을 보고 아주 신중하게 이직을 생각하고, 생각했다가도 실제로 옮기는 건 더 다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 같다. 남편에게 이직은 대단한 생애사건처럼 보인다.


일을 업으로 하는 것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얼핏 보면 가치지향이 한 차원 높은 격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업으로 일하는 나의 삶보다 돈벌이로 일을 하지만 돈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므로 남편의 삶이 훨씬 균형 잡힌 모습으로 보이곤 한다. 적어도 업으로서 일을 바라보는 내게는 남편의 관점이 다르지만 부부로 지내기에는 조화를 이루기에 어느 정도의 장점이 있는 듯하다.


, 맞벌이  생활을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지략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채택했을 때 가능한 것 같다. 그 지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일과 가정에 현재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배분하는지 재빨리 알아차리고 한 발 앞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민감성과 배려이다. 이것이 없다면 직장의 복리후생이나 사회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개인이 선용할 수 없다.


일례로 해외출장이 많은 남편은 출장을 갈 때는 준비할 새도 없이 단 며칠 만에 장기출장을 갈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재빨리 일과 육아를 위한 시간 배분과 노력의 양을 새롭게 구조화했다. 물론 남편도 내가 마감일을 두고 바삐 움직여야 할 때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육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자기 역할을 다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일의 가치와 성장을 위해 매진할 수 있고, 남편은 자신을 동기화시키는 보상기제에 지금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다르지만 가정 안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매우 지혜로운 조화로 다듬어 내는 것 같다. 결혼 후 부부생활은 역시 조화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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