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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y 19. 2024

여보, 백화점 가서 옷 한 벌씩 사 입을까요?

내 남편의 골대를 옮길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열어보면 입을 옷이 없다. 얼추 사회생활 20년을 넘어서는 40대 중반인 내가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은 옷들을 탓할 일이 아니긴 하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진 탓에 군살이 붙어서인지, 염색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걸 보니 어쩌면 노화의 가속도가 붙은 건지 작년에 입었던 옷이 나이와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나이와 맞지 않으면 한 벌 또 사서 입으면 될 일이다 싶다가도 옷장에 걸린 즐비한 정장들을 보면 또 한 해는 넘기겠다 싶은 마음에 소비를 향한 마음을 고이 접어 넣어두게 된다.


주말에 남편과 외출할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지하 주차장에서 앞서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편의 헤어스타일이 있어서 외출을 할 때는 "우리 아내가 내가 이런 머리를 하면 좋아하지요~" 하며 시커먼 얼굴을 살펴보라며 눈 맞춤을 하곤 하는데 그날은 피곤했던지 그마저도 하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서너 달 밤마다 한강 라이딩으로 허벅지 근육이 불끈 솟아서 청바지가 살짝 타이트해 보이는 청바지를 입고서 다행히 환한 셔츠를 말끔하게 입어서 간신히 낙제를 면한 차림으로 외출에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걸며 대뜸 내가 한 마디를 했다.

"여보, 우리도 백화점 가서 한 벌씩 예쁘게 사 입을까요?"

남편은 별안간 무슨 소린가 싶은 톤으로 대답했다.

"옷 사고 싶으면, 자기 옷 사요. 나는 괜찮아요."

그럴 줄 알았다.


남편을 보면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참 다양하고 각양의 모습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텐데,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남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기에 그저 '습관'으로 사는 거라고 덮어두게 된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이 되어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는 말은 참 여러 책에서 유사한 표현들로 들어왔다. 살아가며 빼놓을 수 없는 소비행동도 그 사람의 인생의 단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남편이 옷을 소비하는 행동은 매우 단순하다. 출근용 정잘 바지와 셔츠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중저가 매장에서 할인할 때 득템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구매한다. 외투는 출근할 때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센스 있다는 칭찬을 듣곤 할 정도로 깔끔하게 챙겨 입고 다닌다. 알고 보면 계절별로 한 벌로  멋을 부리는 외벌 신사이지 선택할만한 갖가지 옷들을 갖고 있지 않다. 좀 특이한 건 동남아의 저개발 국가로의 해외 출장이 잦아서 출장 갔을 때 우리나라의 동대문 야시장 같은 로컬 마켓에 가서 필요한 저가의 옷들을 넉넉히 구매해 와서 유용하게 활용한다.


이런 남편에게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자는 아내의 말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한 것과 같은 이야기였을 법하다. 한 5분쯤 운전을 하고 가는데 남편이 직장 동료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며 꺼내놓았다. 평일 저녁식사를 하면 운동 삼아 한강으로 라이딩을 다니고 있다는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그 후임이 당연히 레저용 좋은 자전거로 꽤나 멋져 보이는 여가를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더란다. 그래서 남편은 자전거는 작동만 되면 되는 거지 좋은 자전거 탄다고 운동 더 되는 거 아니라고 응수를 했단다. 그랬더니 후임이 "백부장님은 자동차도 자전거도 다 낡은 걸 타면서 사는 데만 좋은 곳에 사시네요." 하더란다.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It runs!!! 또 그랬겠네요?" 했더니, "그런 거죠." 하며 슬쩍 미소를 보였다.


남편과 외출을 다녀와서 읽고 있던 책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을 마저 읽어갔다. 말미에 저자의 투자 스토리가 쓰여 있었는데 남편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인상 깊게 다가온 한 줄이 있었다.


"다만 골대를 더 이상 옮기지 않을 뿐이다."


이 문장의 배경을 조금 더 풀어보자면 모건 하우절은 자신의 재무 계획 중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젊은 나이에 세워놓은 생활양식을 크게 변경시키지 않은 것이라 고백 한다. 저축률이 상당히 높지만 아낀다는 느낌 없이 생활하고 있고 욕구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근사한 물건을 좋아하고 더 편안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불만족하지 않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골대를 옮기지 않는 것'의 의미로 해석된다.


소비가 한 사람의 인생의 단면을 드러낼 수 있지만 소비를 많이 할 수 있다고 풍요로워지는 건 아닌 것 같다. 17년째 함께 살면서 남편에게서 결핍에 목말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소비와 관련해서는 늘 충분하거나, 이만하면 만족한다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골대를 갖고 있고 더 이상 옮기지 않을 것이 앞으로도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아마도 백화점이라는 골대는 앞으로도 우리 부부와 벗이 되기는 틀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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