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부모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비법
오랜만에 첫째, 둘째가 용돈 정산을 하자며 날짜별로 한 일들을 목록으로 정리한 수첩을 드리 밀었다.
첫째(13세, 여)는 17,400원
둘째(12세, 남)는 16,400원
3주 만에 정산한 용돈이다.
올해의 용돈 기준
1. 집안에서 공적인 일을 수행하면 건당 200원
2. 1주일에 2천 원은 기본금으로 책정
3. 용돈 받는 날은 받을 사람이 챙긴다.
4. 용돈을 받을 때는 본인이 한 일을 리스트업 한 자료를 증빙해야 한다.
* 9월부터의 변동사항: 둘이서 협력해서 하는 일이 많으므로 건당 100원으로 줄일 예정임. 7월에 엄마인 내가 제기된 사항이나 막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저항이 있어서 한 달 유보하기로 타협함.
일가정 양립은 정말 쉽지 않다. 다행히 남편도 나도 육아와 가사를 포함해서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모든 일은 '나의 일'로 여기고 있어서 우리 부부 사이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가 셋이고 맞벌이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므로 세 아이들도 제 몫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왔다.
사실 널브러진 장난감을 아이가 정리하도록 훈련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다. 차라리 후다닥 내가 정리하는 게 쉬운 선택일 수도 있다. 아이의 수준에 맞게 왜 이 일이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쉽지 않아서 아이 몫의 일을 남겨 두지 않았던 적도 있다. 일하는 엄마라는 나의 상황을 단기간에 정리할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과 집안일도 공유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는 대여섯 살 때부터 이런 훈련은 가능하고, 꼭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편안하고 행복하려면 다 함께 책임져야 한다. 엄마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청소를 시작하면, 아빠도 아이들도 제 각각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찾아서 '청소'에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요리를 시작하면 남편은 옆에 와서 다음 단계에 내가 할 작업들을 준비한다. 밥상이 차려질 때가 되면 큰 아이는 밥을 퍼고, 둘째는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고, 셋째는 수저를 준비한다. 혼자 살지 않는 한 가족에게도 집은 공유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이 암묵적인 가족규칙이 되고 서로의 시그널을 정확하게 감지하여 협업의 효율도 상당히 높아진다. 이 모든 것은 한 번에 설정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책임을 나누고 기꺼이 감당하는 일상이 반복될 때 가능해진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몫을 해주어서 집안일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시기는 첫째가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3년 전부터 아이들과 협의해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안일들의 리스트 만들었다. 신발 정리, 선반 닦기, 동생과 놀아주기, 분리수거, 놀잇감 정리, 쓰레기 버리기, 심부름 등과 같이 자신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목록화하고, 난이도에 따라 100원에서 200원까지 금액을 책정했다. 예를 들어, 난이도를 고려해서 신발 정리는 100원이고, 분리수거는 200원으로 정했다. 이 과정은 모두 아이들과 토의를 통해 협의하고, 정한 규칙은 2년 정도 꾸준하게 지켜졌다.
용돈은 아이들의 행동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돈의 의미처럼 아이들에게 작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첫째는 동전을 모아, 천 원짜리 지폐로 바꾸고, 천 원짜리를 모아 만 원짜리로 바꾸는 것을 즐거워했다. 반면, 둘째는 동전이 잔뜩 쌓여서 무거워지면 돈이 많아져서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즐겼다. 아무렴 어떠하리! 용돈은 아이들의 집안일에 참여하는 행동을 유지하기에 충분히 의미 있게 작동하고 있다.
초등 자녀들에게 용돈관리를 시키는 건 경제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했을 때, 엄마의 입장에서는 경제교육의 효과보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때 느끼는 보람이 훨씬 컸다. 용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목록에 추가하자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아이들에게도 '돈'이라는 보상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궁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돈쓰기'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가지는 것이 의미 있게 작동했다.
일하는 엄마로 살다 보면 퇴근 후 맞이하는 집안일이 벅찰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주면 엄마인 나는 가용한 시간과 에너지를 유용한 데 쓸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것,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쯤은 너무나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주기로 한 기본 용돈과 아이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가치를 더하여 용돈을 주지만 먼저 챙겨 주는 법은 없다. 받을 사람이 먼저 날짜별로 한 일을 증빙하며 달라고 할 때 준다. 받을 돈을 챙기는 건 아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용돈을 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한 주간 아이들이 기록한 것을 갖고 와서 정산하는 시간을 챙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일정을 관리하는 것도 아이들의 몫으로 넘겨주었다.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갖고 사는가도 너무나 중요한데, 돈에 대한 철학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돈을 무시하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현재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돈의 작동 원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드러날 때면 놓치지 않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우리들의 용돈에 관한 룰에 반영해 왔다.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안전한 곳에서 냉정한 현실을 배우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돈에 관한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돈은 모든 사람에게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주는 사람은 덜 주려고 하고, 받을 사람은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도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알려 주고 있다. 그래서 한 일들의 목록을 갖고 오면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부당해 보이는 것은 지적하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고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들의 정당성을 설명하곤 한다. 이런 모습이 내가 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얼마 전 용돈을 정산할 때도 빨래 개기를 둘이 같이 하면서 각자 200원을 받아가는 건 용돈을 주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과하다고 주장해 보았다. 그러면서 문제 있는 항목들을 요목조목 대면서 건당 100원으로 낮춰 보았다. 그랬더니, 곧 8월에는 가족 중 생일자가 두 명이나 있어서 지출이 과할 예정이라 자신들에게 비현실적이라며 8월까지는 200원으로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이뻐서 수락해 주었다. 까다롭게 논쟁거리를 제시하지만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면 나는 언제나 수락한다. 나의 역할은 논쟁을 통해 생각하고, 이유를 찾을 수 있게 자극하는 것에 있을 뿐,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장점이 서로 다르다. 나는 발달단계마다 필요한 것들을 제시하고 남편에게 제안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남편은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에 자신의 의견을 보태어 구체화시키고 관리하는 것을 나보다 잘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집안일을 할 때 용돈을 주는 시스템을 적용하자는 의견은 내가 제시하지만 아이들의 구체적인 용돈관리는 남편이 담당한다.
아이들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어제와 오늘의 엄마의 논리와 생각이 같아야 아이들이 혼란을 경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일관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한 목소리를 내면 아이들은 부모를 존중할 가능성이 커진다. 아이들에게 존중받는 부모가 될 때, 훈육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건 부모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