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일! 가사, 나를 키우는 일! 육아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by 자유인

결혼 이후, 여성은 출산과 육아라는 위기를 맞이한다.


한국 사회의 여성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경제활동참여유형을 분석하면 M자형의 구조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 즉, 성인기에 이르러 경제활동참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다가 결혼과 출산의 시기를 거치면서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경제활동참가율이 뚝 떨어진다. 그러다 자녀 양육의 결정적인 시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기혼 여성들은 이전의 직장보다는 질이 낮은 곳으로 재취업할 가능성이 높다.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해서,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을 했더라도 결혼을 통해 여성이 직면하는 현실은 결혼과 동시에 자기희생을 요구받는다. 특히, 자녀 출산이 그러하다. 이건 이 시대의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삶의 위기로 작동하게 되면서 결혼을 미루는 만혼현상이 팽배해졌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딩크족이 생겨난 것도 새로운 사회현상이 되었다. 누구나 위기가 닥쳐오면 지연시키거나 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대응이다.


교육의 기회에 있어 여성차별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 굉장히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통계자료를 검토해 보면 1990년대 무렵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부터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는 확실하게 증가한다. 사회활동으로 자기실현의 욕구 충족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처럼 작동해 왔고, 여성들은 소외되어 있었다. 이것은 한국의 유교적 전통에 따른 요인이 작동한 것이므로 거시적인 문화 맥락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다만, '극복 '을 위한 과제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은 촘촘하게 따져보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화합하고 협력할 지 지혜를 모으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결혼 직후 시어머니께서는 직설화법으로 두 가지를 조언하셨다.


첫째, 한 사람 벌이를 모두 쓰더라도 맞벌이가 나으니 일은 꼭 해라.

둘째, 20년은 내가 키웠지만 이제 니 남편은 네가 관리해라.



왜 맞벌이가 낫다는 거지?


시부모님은 경남 진주의 시골에서 나고 자라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아들들은 대학 교육을 시켰어도 딸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없으셨다고 한다. 시부모님은 수십 년 동안 사진관을 운영하시며 부부가 함께 살림을 일궈 오셨고, 노부부의 모습이지만 두 분은 상당히 평등한 관계이고 시아버님도 시어머니를 상당히 존중하신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시어머니의 말씀은 오해를 사기 쉬운 표현이다. 나 역시 일을 좋아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결혼 초기에 맞벌이를 권하신 시어머니의 말씀은 살기 어려운 세상에 맞벌이로 경제활동을 하라는 의미만은 아니셨다. 자기 목소리를 확실하게 낼 수 있는 사회활동의 영역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멋진 여성상'이라는 의미셨다.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 시어머니의 생활을 봐도 여전히 역동적이신 것을 보면 시어머니의 말씀은 며느리의 사회활동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남편이 관리의 대상인가?


시어머님은 결혼과 동시에 당신의 아들을 나에게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이양하셨다. 남편에게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결혼을 했으니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사는 것이 최선이고, 아들은 부인이 하는 말을 존중하면서 둘이 알아서 사는 것이라고. 시부모님은 결혼과 동시에 아들과의 심리적인 작별은 매우 깔끔하게 선언하신 것이다. 어떤 세련된 표현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20년은 내가 키웠지만 이제 니 남편은 네가 관리해라." 이 한마디로 관계는 깨끗하게 정리됐다. 시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관리 이양으로 남편은 원가족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 결혼 후 부부는 원가족에서 독립해야 한다. 그래야 부부는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고,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 여정에서 동지애를 쌓아가기 수월해진다. 원가족과의 끈끈한 관계가 결혼한 부부에게 갈등의 요소를 남긴다면 좋을 것이 없다. 태어나면서 자라온 원가족과 새로 꾸려진 가족이 경쟁 구도에 있게 되면, 관계의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원가족이 승리하기 쉽다. 하지만 이 승리가 현재로부터 미래의 삶에 유익한가를 따져보면, 결혼은 원가족과의 심리적 작별의 시기이며 독립된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이면 가장 좋다.


결혼 이후 삶의 방식은 온전히 두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그 과정을 책임지는 것도 두 사람이다. 과거의 삶과 경험을 존중하지만 묶여있을 수 없다. 이제는 둘이 하나가 되어 이인삼각을 하듯 서로가 상대에게 맞추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것을 시어머니의 조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원가족에게서 완벽하게 벗어났기에 남편은 훨씬 수월하게 '아내'라는 새로운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애시절 서로의 의미가 아무리 각별해도, 결혼하면 소중함의 색이 변한다. 더 아름다운 색으로 변화될지, 추한 색이 될지는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임신과 출산의 선택권은 부부에게 있다.


결혼 이후 여성이 직면하게 되는 위기로서의 출산과 양육의 과제를 내 삶의 과제로 떠올랐을 때, 나 역시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하게 되었다. 내가 자녀를 양육하고 책임질 만한 성품과 역량을 갖추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부모세대만 해도 결혼적령기가 있었고, 결혼하면 자녀 출산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두려움은 현실이었다. 나는 남편과 고민을 나누었고 비교적 쉽게 출산과 양육의 과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백만 가지 고민이 있었지먀 닥치면 해결해 보기로 하고.


신혼의 달콤함은 잠시였다.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각자의 사회생활의 영역은 차치하고, 결혼생활의 7할 이상은 자녀양육이라는 공동의 과업이 차지한다. 사회생활도 각종 난제로 가볍지 않은데, 처음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한다는 건 낯설고 버거운 과제이다. 결혼생활 14년을 지나 우리 부부는 세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다. 이 과정은 서로를 향한 더 큰 사랑과 신뢰를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건 역경과 고난의 길을 함께 걷는 동지애와 같다. 이것도 대단한 사랑인지라 연애시절 열정으로 가득했던 사랑을 능가하는 어떤 힘이 있다.



남편 관리는 필요 없었다. 다만, 부부에게는 아직도 성장의 길은 남아있었다.


결혼하기 좋은 남자가 어떤 남자인가 조건을 생각하면, 나는 롤모델로 남편을 꼽는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자료에서 기혼남성과 여성의 퇴근 후 생활상을 분석해 보면 가사 및 육아와 관련하여 두 가지 흥미로운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남성보다 여성의 퇴근 후 가사노동이 현저히 높게 나타난다. 둘째, 육아와 관련해서 여성은 '노동'에 가까운 일들을 담당하지만 남성들은 '놀이'에 가까운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을 결혼하기 좋은 남자로 평가하는 것은 이런 통계적 현실과 다른 삶을 살기 때문이다. 퇴근 후 가사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육아와 관련해서 각자 수월한 역할을 찾는 꼼수를 부리지도 않는다. 서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며 우리 부부가 육아에 있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


우리 부부의 역할 구분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되어있다.


부부가 가사와 육아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은 두 가지의 전략 구상이 가능하다. 첫째는 중요한 역할을 목록화하고 주된 책임자를 지정하여 배분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소위 분업화된 직선형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둘 다 숙달되어 있어 공동으로 책임지는 방법이다.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라는 통념이 만들어낸 역할의 직선적 구분 없이 처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매우 우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으로 직선과 대비되는 곡선형 전략이라 이름 붙여 보았다.


우리 부부는 두 번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매우 만족한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고, 각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양보하고 희생해 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양보와 희생은 부부관계에서 존중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상대가 원한다면, 간절히 원한다면' 기꺼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상대를 위해 내어 주는 선택이 양보이고 희생이다.


여기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육아와 가사를 모두 당신이 책임지는 거야. 난 그걸 간절히 원해."라고 말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있다면 맥락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부부관계의 철로를 이탈한 경우로 봐야 할 것 같다. 상대의 양보와 희생을 요청할 때도 예의가 필요하고 실현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 남편은 잦은 해외 출장과 수개월의 파견 근무가 잦았고, 부재 시에 나는 마치 초능력을 발휘하듯 혼자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한편, 남편 역시 내가 바쁜 시즌이 되면 나의 부재를 완벽하게 커버해 주었다. 서로의 커리어와 성장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희생과 양보가 잠시 불편했지만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하므로 감당할 만했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 공유는 이상적이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래도 해보자.


성인지적 관점에 대해 학자들도 언급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대한 논의도 익숙한 담론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삶에 오롯이 반영하여 살아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다. 여기에는 남편이나 아빠인 남성도,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도 서로를 향한 이해와 배려, 때로는 인내까지도 요구될 수 있다.


만약 가사 경험이 없고 아이를 잠시 맡겨도 불안해 보이는 남편을 둔 아내라면 첫 번째 전략인 직선형을 적용해 보기를 권한다. 남편이 최소한 해주었으면 하는 과업들을 명확하게 요청하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남편이 조금 변했다면, 예전보다 숙달되거나 좋아졌다면 칭찬도 하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리액션도 필요하다.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서서히, 조금씩 찾아올 것이다.


현재 남편이 어느 정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의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라면, 아마도 남편은 첫 번째 전략에 머무르며 스스로 충분히 '괜찮은 남편'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아내라면 남편의 이러한 자평에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가끔 혹은 종종 남편의 뒷모습이나 말 한마디가 얄밉거나 서운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직 가사와 육아를 자신의 책임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남편과,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아내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질적인 종족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거리감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는 곡선형의 전략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가사와 육아에 있어 책임과 역할의 공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부가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의 공유는 나누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둘이서 소유한다는 의미이다. 물건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 책임이기에 이러한 공유가 가능하다. 가장 먼저 성역할의 성벽이 무너져야 할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그렇다고 아내는 남편이 이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함부로 폄훼해서는 안된다. 아내의 시선에서 부족해 보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 남편을 우선 수용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 후, 아내의 입장에서 새로운 기대와 바램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기대와 바램을 몰랐을 수도 있으므로, 먼저 정확하게 알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아내의 기대가 실현되었을 때 가정은 어떻게 변화될지 그 청사진을 남편에게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이라면 남편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남편이 기꺼이 아내의 요청을 수용했다 해도 곧장 아내가 원하던 청사진이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체험을 통한 학습은 실제로 어렵거나, 어려워 보이는 것을 학습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남편들에게 가사와 육아는 매우 낯설고 어려워 보일 수 있다. 새롭게 시도했지만 숙달되지 않아 실수투성이인 남편의 모습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나더러 그만 포기하라는 건가?' 싶어 화딱지가 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했다면 변화는 시작된 것이므로 좋은 날을 기대하며 참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가정에서 여성은 선각자적인 자세로 조금씩, 천천히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수밖에.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한걸음 먼저 나가보는 것이다.


家事(가사)는 佳事(가사)가, 育兒(육아)는 育我(육아)가 되면 어떨까 싶다.


家事(가사 : 집 가, 일 사)

佳事(가사 : 아름다울 가, 일 사)

育兒(육아 : 키울 육, 아이 아)

育我(육아 : 키울 육, 자기 아)


한자어에서 보듯 집안의 사소한 일들(家事)이 아닌 아름다운 일들(佳事)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育兒)은 곧 내가 성장하는 일(育我)로 여기는 것이다. 가사는 가족구성원들의 생존은 물론 휴식과 평안을 위해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다. 가사에 몰입해 본 사람이면 집안일들이 결코 사사롭지도, 기피할 일도 아니란 것을 알 것이다. 나름 보람도 크고 귀한 일들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양육하며 키가 자라고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면 그 과정에서 어른인 나도 함께 성장함을 느낀다. 전에 몰랐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기도 나는 세 자녀들을 낳고 키우면서 배운 것이다.


이렇듯 결혼, 출산이 더 이상 어느 누구에게도 위기의 사건이 아니길 바란다. 아름다운 일(가사 佳事), 나를 성장시키는 일(육아 育我)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꿈꾸는 세상이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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