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경고등이 켜질 때
몇 년 전 어느 날 늦은 저녁,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선 지 대략 5분 정도.
계기판이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못 보던 노란 표시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수도꼭지 같기도 하고 카메라 모양 같기도 하고 알라딘의 램프 같기도 하고 앙증맞은 이모티콘 같기도 하고...
아무튼, '참 오래전'에 이 차를 구입한 뒤 처음 보는 표시였습니다.
모양은 앙증맞아 보여도 왠지 좀 무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빨간색은 아니지만 노란색도 차를 잘 알지 못하는 '차알못' 운전자에겐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그 때는 막 자동차전용 도로에 들어선 상황.
노란빛이 섬뜩해 보이긴 처음이었습니다. 12만 km 넘게 탈 동안 저런 문양은 한 번도 뜬 적이 없었으니까요.
'별 거 있겠어?' 일단 목적지까지 무시하고 갈 생각이었지만, 조수석 아내에겐 공포감이 더 크게 느껴졌나 봅니다. '당장 옆길로 빠져서 차 세우라'는 아내의 긴급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안전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운 뒤, 급한 대로 헌책방의 고서처럼 보닛 안에 고이 묵혀두고 있던 자동차 설명서를 뒤적거렸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경고등이 계속 점등돼 있으면 '가능한 빨리' 정비 업소를 방문하라고 합니다.
'가능한 한 빨리'라는 말이, 그래서 '어느 정도 빨리'라는 건지.
얼마만큼은 운행을 해도 된다는 건지, 아니면 당장 운행을 중지하고 견인을 하라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문장대로 '2장의 공해 방지, 연료 경제성 및 주행에 관한 조언'도 찾아봤지만, 역시 결국엔 배출가스 감지 관련 부품 고장 가능성이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지정 정비소에 가서 점검을..."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라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또 처음입디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저 노란 아이콘의 정식 명칭은 '엔진·배출가스 자가진단 경고등'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인터넷을 계속 뒤져봐도 해답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글이 저 경고등이 들어오는 원인은 수십 가지라는 말로 시작됐습니다.
다른 경고등과 달리 딱 잘라 어딘가에 이상이 생겼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한 글도 있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대략 대여섯 가지를 가장 잦은 원인으로 꼽고 있었습니다.
주유구 뚜껑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은 경우
점화 플러그가 낡았을 경우(가솔린 차량에 해당)
산소 센서 문제
촉매변환 장치의 이상
공기 질량 센서 이상
냉각 수온 센서 이상
제발 1번이 원인이길 바라면서 얼른 주유구로 달려가 뚜껑을 열심히 꽉 닫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켜자... 매우 실망스럽게도 저 무심한 노란 경고등은 그대로였습니다.
2번, 점화 플러그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게 어디에 있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저의 상식으로는 알 턱이 없었습니다.
3번부터 6번까지, 운전자 대부부는 저런 장치나 센서들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운전합니다.
저 6개 원인 외에도 수십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니, 원인 파악은 이후의 문제였습니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이대로 목적지까지 운전을 해도 되는지, 아니면 절대 운행하면 안 되고 즉각 견인차를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가까운 정비소까지는 몰고 가도 되는지였죠.
하필 휴일인 데다 늦은 시간이어서 인근에 문을 연 정비소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상의 조언들도 '가급적 빨리' 정비소에 가라고 돼 있었습니다.
'가급적', '가능한', '최대한', 되는대로', '시급히' 등등의 말은 늘 우리의 판단을 애매하게 만듭니다.
'적당히', '충분히', '알맞게' 같은 표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더 검색해 보니, 노란 경고등은 당장 운행을 중단할 필요까지는 없단다. 정비소까지는 차를 몰고 가도 된다는 설명들이 많았습니다.(그러나 빨간색 경고등은 차원이 다르답니다. 즉각 운행을 멈추고 견인차를 불러야 한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다음 날 정비소를 찾았습니다.
정비사에게 노란 경고등을 얘기하니, 아래 장비가 동원됐습니다.
정비사님이 컴퓨터와 연결된 이런저런 선과 모니터가 매달린 바퀴 달린 막대기로 점검을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쓰는, 링거를 매단 폴대와 닮아 보여서 제 차가 아파 보였습니다.
점검 결과, '냉각 수온 센서'라는 자그마한 부품이 낡아서 경고등이 들어온 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지 물으니 너무나 당연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교체하시면 됩니다."
별 수 없지 않나요? 10만 원 가까이 주고 새 센서를 갈아 끼워야 했습니다.
바로 요것입니다.
결국 차에 경고등이 켜지는 원인은 대부분 부품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해법은 '교체'에 있습니다.
그 교체라는 해법에는 몇 만 원에서 수십만 원, 혹은 몇 백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갑니다.
※결론 : 어느 날 당신의 차에 노란색 엔진 경고등이 들어오거든, 우선 차를 세우고 주유구 뚜껑을 확인하라. 그게 소용없으면 가까운 정비소에 들러 돈을 주고 부품을 교체하라!
그러나 경고등이 빨간색이면 당장 차를 멈추고 견인차를 불러라!
'경고'라는 건 '뭔가 잘못했으니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뭔가 위험한 상황이 됐으니, 뭐든 조치를 취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중에 경고등이 켜지는 건 자동차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고등은 수없이 켜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 어딘가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다 큰 자녀와 생각지 못한 일로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것 같은 친구 사이에 '돈 문제'가 끼어들면서 민감해질 때도 있습니다.
더 많이 불리려고 투자해 놓은 자산에 이상 신호가 감지될 때도 있고,
오랜 세월 아내나 남편의 속에서 쌓여만 가던 불만이나 원망이 어느 날, 말 한마디에 터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건강에, 재산에, 인간관계나 가족 관계에, 직장 생활에, 애정 전선에,
'별 일 없이 살던' 일상에 보이지 않는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평탄하던 우리의 마음은 '불안'이라는 상태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어찌해야 경고등이 다시 꺼질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면서 방법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야속한 경고등은 말 그대로 경고만 할 뿐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진 않습니다.
건강에 대한 경고등 정도가 기껏해야 '가능한 한 빨리', '가급적이면' 병원에 가라는 애매한 안내를 합니다.
'사람 부르라'는 식이죠. 물론 돈을 들여서.
그런데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금전 문제에 대한 경고등의 경우 그 해법은 온전히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돈을 들여서라도 잘못된 것을 교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위의 조언도 '가급적', '가능한 한 빨리'라는 말 이상의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자동차의 노란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책자나 인터넷을 뒤지며 생각을 해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인생의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도, 두려워 말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낫겠지요.
이후에도 제 차는 타이어에 이상이 생겨서 저 노란 경고등이 뜨기도 했고, '슈라우드 어셈블리'인지 뭔지가 낡아빠져서 또 저 공포스러운 노란 경고등이 빛을 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경고등의 횟수가 잦아져만 갔습니다.
그때마다 해법은 '돈'이었고요.
그래서 '언제까지 경고만 받고 살 순 없다'는 생각으로 더 큰돈을 들여봤습니다.
늙고 병든 차를 아쉬운 마음으로 보내고, 젊고 건강한 녀석으로 바꾼 것입니다.
모든 걸 터치와 음성으로 조작하는 컴퓨터 화면이, 경고등 표시가 포함된 '계기판'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 노란 경고등을 볼 일은 없을 듯합니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고나 할까요?
물론 '장기 할부'라는 굴레도 함께 얻었지만 말이죠.
경고에 대한 해법으로 새 출발, 혹은 리셋을 택한 셈인데, 가장 편하고 속 시원한 해법이지만 그 대가 또한 적지 않다는 게 문제일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