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전망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돈의 개념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돈 많은 부자가, 돈이 필요없어진다고 했으니, 무슨 의미인지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합니다.
인도 기업가 니킬 카마스와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밝힌 머스크의 설명은 이렇게 축약됩니다.
"AI와 로봇 기술이 모든 인간의 욕구를 충족할 정도로 발전한다면, 돈의 중요성은 급격히 약해질 것이다... 물리학적 의미의 근본적 화폐는 남을 것이다. 바로 에너지다. 에너지가 진짜 화폐다."
왼쪽, 니킬 카마스. 오른쪽, 일론 머스크
또 AI와 로봇이 상품이나 서비스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경제에는 디플레이션, 즉 물가 하락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물가가 낮아지면 금리도 떨어지고,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지면 부채 문제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라 전망했습니다.
상당히 일리 있는 미래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먼 미래도 아닌 것 같고요.
AI가 과연 인간에게 장점만 있을까에 대한 견해도 피력했는데, 이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강력한 기술에는 파괴적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AI가 진실이나 아름다움, 호기심 같은 가치관을 인식할 때 인류는 안전하다. 인류가 존재하는 편이 AI에게도 더 흥미로운 세계일 것'이란 얘기입니다.
공교롭게도 AI에 대한 머스크의 이런 전망 뒤에 비슷한 맥락의 뛰어난 통찰이 우리나라에서, 다른 유력 인사의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공개 대화'에서, AI를 넘어 AGI, 나아가 ASI까지 꿰뚫는 전망을 제시한 겁니다.
손 회장은 인공지능 기술의 목표 지점을 AGI가 아닌 ASI로 설정했습니다.
AGI는 인간의 지능과 전체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을 말하고, ASI는 더 나아가 인간 지능을 크게 능가하고 초월하는 '초인공지능'을 말합니다.
지금의 AI 기술은 계산이나 정보 수집, 분석 등 특정 부분에서만 인간을 능가하는 단계지요.
손 회장은 이 대통령에게 AGI는 과정일 뿐, ASI가 도달 지점임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초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이런 비유로 예측했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ASI는 인간의 두뇌보다 1만 배나 더 뛰어난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의 두뇌와 어항 속 금붕어의 두뇌를 비교하면 인간의 두뇌가 1만 배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인류가 금붕어가 되고 AI가 인간이 되는 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우리는 강아지가 우리의 반려동물이라 생각하지만 우리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으로 대하면서도 더 뛰어난 존재인 사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죠.
앞으로 인공지능도 친절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반려견을 해치려 하지 않는 것처럼, AI도 우리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 회장의 이런 전망을 읽고 났더니, 이번에는 해외뉴스 코너에 '트럼프와 로봇'에 대한 내용을 전하는 기사들이 이어졌습니다.
네이버 뉴스 화면 캡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에 로봇 산업과 관련한 '행정명령' 발표를 검토 중이라는 겁니다.
로봇 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법과 제도로도 지원하겠다는 거죠.
트럼프 행정부가 로봇 산업에 주력하려는 배경엔 중국이 있습니다.
현재 로봇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중국인데, 산업용 로봇의 수만 비교해봐도 2023년 기준으로 중국은 180만 대, 미국은 그 4분의 1수준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배경이야 어쨌든, 내년부터 미국이 로봇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면 중국도 가만 있질 않겠죠.
그래서 내년에 미국과 중국의 '로봇 패권 다툼'이 전개될 양상입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도 경쟁에 뒤지지 않으려 할 것이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로봇 기술은 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겠죠.
AI와 AGI, 나아가 ASI를 탑재한 로봇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로봇이 모든 걸 생산하고 인간은 노동이나 자본 없이 살아가는 시대도 가능할 것입니다.
머스크와 손정의의 예언대로 인간이 돈도 일자리도 필요 없어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인간은 무엇을 할까요?
아주 일차원적이긴 하지만, 그냥 놀고 먹기만 해도 되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백여 년 전의 영국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에게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살로메>도 꽤 유명하고요.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 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육체노동은 '기계' 가 하면 된다. 인간의 목표는 '고상하고 우아한 무위도식' 이다."
<사회주의 속 인간 영혼>이란 에세이에 등장하는 문장인데, 이 글이 출간된 건
1891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130년도 더 전입니다.
로봇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거의 맞아떨어지는 전망을 남긴 겁니다.
오스카의 이 예언과도 같은 문장은 SF 소설을 쓰듯,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만으로 나온 게 아닙니다.
당시 영국 사회와 노동자들의 비참한 실태를 세심히 관찰하고, 그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장기적 플랜을 제시한 겁니다.
기술문명과 복지사회로 빈곤과 고난을 극복하려 한, 시대를 참 많이 앞서간 통찰의 문장이죠.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담긴 130년 전의 문장들 몇 개를 더 읽어보겠습니다.
"(기술이 발전한 미래에는) 어떤 사람도 악취 나는 굴에서 악취 나는 넝마주이를 덮고서 말도 안 되고 절대적으로 혐오스러운 환경 속에서 건강하지 못하고 배를 주리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사회의 안전이 날씨 변화에 따라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서리가 내렸다고 해서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역겨운 비참함에 휩싸인 채 거리를 방황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흐느끼며 손을 벌리고, 혹은 어떻게든 빵 한 조각과 하룻밤 비루하게 잘 곳을 찾아보려고 역한 쉼터 문 앞에 둥글게 모여 서 있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 사회가 누리는 일반적인 번영과 행복을 공유할 것이며, 서리가 내리는 날에도 누구도 실질적으로 더 나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 오스카와일드 <미학 강의 : 사회주의 속 인간 영혼>.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AI와 로봇의 출현을 예측이라도 한 듯한 전망도 이어지는데, 여기서 오스카는 자본과 노동이 필요없어진 시대, 인간은 무얼 할지에 대한 답까지 제시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육체 노동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배제돼야 한다. 육체노동은 '기계' 가 하면 된다.
인간의 목표는 '고상하고 우아한 무위도식' 이다."
돈 개념이 필요 없어진다는 머스크나 ASI로 행복하게 살 거라는 손정의보다 130년도 더 앞선 전망인데도, 표현은 훨씬 더 가슴이 설렙니다.
'고상하고 우아한 무위도식'
130여 년 전에 어떻게 이런 전망을 했을까요?
그건 바로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 현실을 해소해주고 싶은, 인간에 절실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AI와 로봇의 시대가 도래할수록, 인간적인 것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해봅니다.
고상하고 우아한 무위도식을 하면서 '인간성'이 더 활짝 펴는 세상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