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왜 저 위로만 흘러가는가?

루카스 역설과 낙수효과

by 지저귐


부러지는 사다리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방송이나 신문지면을 장식하며 다수를 허탈케 하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 '초부자'들의 돈보따리가 얼마나 더 커졌냐에 대한 통계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국세청 자료가 보도됐습니다.


'2023년 귀속 통합소득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통합소득자(근로, 사업, 금융, 임대 등 모든 소득 합산)는 2,700만 명 정도이고, 평균 연소득은 4,120만 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소득 상위 0.1%가 벌어들인 1년 소득은 1인당 평균 17억 3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0.1%면 2만 7천 명인데, 이들이 번 돈이 전체 평균의 42배 정도라는 겁니다.


반면 하위 10%, 27만 명의 2023년 소득은 220만 원이었습니다. 상위 0.1%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보다 8백 배 가까이 많다는 계산입니다.


상위 0.1%의 소득을 다 합하면 46조 원 정도입니다.


사람 수는 0.1%인데 2,700만 명의 전체 소득에서 0.1%인 2만 7천 명이 벌어들인 돈의 비율은 4%가 넘습니다.


반면 하위 50%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16.2%에 불과했습니다.


퍼센티지와 숫자로 나열하니 복잡하기만 하고 쉽게 와닿지는 않지만, 소득 격차가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가늠됩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소득 증가율'의 격차입니다.


상위 0.1%의 재산이 1년 동안 14.5% 늘어난 반면 하위 10%는 소득 증가율이 5%도 안 됩니다.


2022년에 백억 원 번 사람은 2023년에 114억 원 넘게 벌었는데, 2백만 원 벌었던 사람은 210만 원만 번 셈입니다.


해마다 소득 상위와 소득 하위의 버는 돈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죠.




열심히 벌어도 '제자리'



개인의 소득액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소득이 더 늘어나면 상대적인 빈곤은 더욱 깊어집니다.


100만 원 벌던 A의 소득이 1만 원 늘었는데 200만 원 벌던 다른 사람들이 2만 원 이상 더 벌게 됐다면 A는 훨씬 더 가난해진 거죠.


통계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소득분위 이동에 관한 건데, 이걸 보면 부자는 계속 부자, 빈곤층은 계속 빈곤층인 '소득 계층 고착화' 현상이 뚜렷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2023년 한 해 소득이 2022년보다 늘어나서 상위 소득분위로 올라간 사람의 비율이전체의 17%도 안 되는 걸로 나타난 겁니다. 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비율입니다.


소득 중위층에서만 이동이 좀 있을 뿐,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서는 모두 계층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득 사다리'가 짧아지거나 아예 부러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열심히 일해 돈을 좀 더 벌어도, 결국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더 낮아지는 현실.


우리 사회의 돈이 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손을 떠나 부자들한테로 흘러가는 형국인 거죠.


이러다 보니 이른바 ‘낙수 효과’란 말에 회의감이 짙게 듭니다.


물이 가득 찬 그릇에 물을 계속 부으면, 넘친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가듯, 부유층의 흘러넘치는 돈도 결국 저소득층에게까지 흘러간다는 그 낙수 효과... 현실은 정반대이니 말이죠.


낙수 효과 대신 '루카스 역설'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루카스 역설(Lucas Paradox)의 시대


루카스 역설은 다음 문장에 관한 경제 이론입니다.


"왜 부유한 나라의 자본이 가난한 나라로 흘러가지 않는가?


전통적인 경제학을 따르면 국제 경제에서 글로벌 자본은 '낙수효과'와 비슷하게 부유한 나라의 여유 자본은 투자할 곳이 많은 가난한 나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로버트 루카스라는 경제학자는 현실이 정반대임을 발견합니다.


조사해 봤더니 선진국들의 자본은 선진국들 사이에서만 돌거나, 오히려 가난한 나라의 자본이 선진국 세계로 유입되고 있었던 겁니다.


루카스가 이런 현실과 그 원인을 분석해 1990년에 제기한 글로벌 자본 이동에 관한 이론이 루카스 역설입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으로 접근하면 아프리카와 남미, 인도 등은 개발 대상이 많아 예상 투자 수익률이 미국과 유럽, 캐나다와 호주보다 훨씬 높다고 계산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본 이동이 거의 없었고, 역으로 아프리카와 남미, 인도의 돈이 선진국으로 유입되는 살도 발견된 겁니다.


루카스는 그 원인을 가난한 나라들의 정치적 혼란, 재산권 보호에 관한 법과 제도의 미비, 인적 자원의 부족 등을 꼽았습니다.


한마디로 후진국 내부 문제들이 선진 자본 유입을 막고 있다는 거죠.


루카스 이론에는 후진국들에 대한 연민이나 빈곤국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감정이 완전히 배제돼 있습니다.


순전히 국가 간 자본 이동 현실과 그 원인에 대해 경제학적으로만 분석합니다.


어찌 보면 선진국 투자자의 입장에서 제시된 이론이란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루카스 역설의 개념만 추려내 낙수효과란 말과 대비하면, 루카스 역설은 국가 간 자본 이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 사회 소득 불균형 문제에 더 잘 적용된다는 생각입니다.


루카스 역설

기존 이론에 따르면

부자 나라의 돈이

가난한 나라로 흘러가야 하는데,

왜 현실은 정반대일까?


우리 사회

낙수효과에 따르면

부자들 돈이

저소득층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왜 현실은 정반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