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기업 조선의 임시직 군관

병가가 뭐죠?

by 소주인

1796년 11월 17일-노상추 51세


11월 17일(무오) 흐림.

이날 바람이 불지 않았다. 순장巡將에 낙점되어 대궐에 나아가 패牌를 받고 1소所로 나갔다. 감군監軍은 도총부 경력 신호문申好文이었다. 2소의 순장은 영장 채현일蔡顯一이고, 감군은 경력 조수趙신출자였다. 이날 밤 군호는 ‘풍징豊徵’ 두 자로 내리셨다. 감군은 궁장宮墻을 순찰하러 가고, 나는 성문城門으로 갔다. 5고鼓가 울린 뒤에 순찰을 마치고 청廳으로 돌아왔다. 아픈 몸이 다 낫지 않았는데, 또다시 밤에 일을 했으니 병이 날까 염려된다. 이날 밤에 달이 대낮처럼 밝았다.



*노상추는 1796년 7월 26일에 순장(巡將)으로 초계되었다. 순장은 행직당상관을 기용하는 임시직 군관으로 그때 그때 국왕의 낙점(지명)을 받아 도성 내 야간순찰을 하였다. 국왕의 낙점은 예고 없이 당일에 이루어졌다.



2022년 1월 10일


노상추는 이 일기로부터 8일 전인 11월 9일에 한속(寒粟)의 증세를 느꼈다. 이날부터 근무를 서는 11월 17일까지 쭉 앓은 듯하다. 그래도 13일~14일에는 제법 입맛도 생겼다고 하고 15일에는 몸도 회복되고 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16일에는 큰 눈이 내렸고, 17일에는 낙점되어 근무를 서게 되었다. 하직 몸이 채 모두 회복되지 않았는데 밤새도록 도성 안을 순찰해야 했으니 병이 도질까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군다나 노상추는 이 때 51세. 젊은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낙점은 곧 왕의 근무 명령. 사경을 헤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못 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또 이 때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추위가 찾아온 때였다. 땅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 11월이라고는 하지만 음력 11월이다. 양력 11월의 추위를 생각하면 안 된다. 순장의 순찰은 지금 시간으로 오후 10시에 인정이 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새벽 4시에 모든 근무가 끝난다. 총 6시간동안 추운 겨울밤 밖을 해매야 한다는 것.

노상추는 다음날인 11월 18일에도 연이어 낙점되어 다시 근무를 서야 했다. 이틀간의 밤샘근무를 끝낸 19일의 일기는 친지가 찾아왔지만 기록할 수 없다는 짤막한 일기 뿐. 아마도 따뜻한 구들장에서 빵처럼 구워지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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