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이름을 지우고 '언니'가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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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말자는 견딜 수 없는 조바심에 휩싸였다. 이대로 지윤을 보내면 아들 강수에게 닿을 길이 영영 끊길 것만 같았다. 말자는 급히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 나갔다.
"지윤아! 잠깐만, 다시 들어와 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지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말자는 대답 대신 주방으로 달려가 냉장고를 열었다. 미리 소분해 두었던 장조림, 멸치볶음, 진미채... 아들 강수가 유난히 좋아하던 반찬통들을 정신없이 꺼내 지윤의 가방에 쑤셔 넣었다.
"이게 다 뭐야? 엄마, 오빠 주라는 거야?"
"그래. 강수 그 녀석, 혼자 있으면 끼니 대충 때울 텐데... 이거 꼭 챙겨 먹여야 해. 네가 전해줬다고 하고 꼭 먹으라고 해."
말자는 가방 지퍼를 닫고 지윤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지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말자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지윤아, 그리고 하나만 약속해 주련. 조만간 오빠랑 나랑 만날 자리를 좀 만들어 줘. 대신... 나를 그냥 너랑 친한 언니라고 소개해."
지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언니? 엄마를? 오빠가 믿겠어?"
말자는 거울 속에 비친, 아들보다 더 팽팽하고 젊은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믿게 만들어야지. 네 학교 선배라고 하든, 아는 언니라고 하든 상관없어. 절대로 내 정체를 들켜선 안 돼. 내가 옆에서 오빠 밥 먹는 거 한 번만 직접 볼 수 있게... 제발 도와줘, 지윤아."
아들을 보기 위해 '엄마'라는 이름을 스스로 버리기로 한 선택. 말자는 이제 지윤에게 들려 보낸 반찬통만큼이나 무거운 비밀을 안고, 아들 앞에 설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