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낯선 재회, 아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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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 주선한 만남은 일주일 뒤, 강수의 퇴근길 근처 작은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말자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 화장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엄마가 아닌 '선배'처럼 보이기 위해 평소 즐겨 입던 단아한 옷 대신, 조금 더 화사하고 세련된 블라우스를 골라 입었다.
식당 문이 열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 들어왔다.
"지윤아, 여긴 웬일이야? 갑자기 저녁을 다 먹자고 하고."
강수였다. 며칠 밤을 새운 듯 초췌한 얼굴, 조금 마른 듯한 어깨. 말자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 테이블 아래로 손을 꽉 맞잡았다. 금방이라도 "강수야!"라고 부르며 달려가 그 마른 뺨을 어루만지고 싶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아, 오빠. 인사해. 내가 말했던 학교 과 선배야."
지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윤은 오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7년 전, 젊음을 얻기 위한 계약 조건 때문에 엄마를 '사망' 신고하고, 이름 모를 무연고자의 유골함을 사 와 강수 앞에서 장례까지 치렀던 그날의 기억이 지윤의 가슴을 찔렀다. "엄마가 왜 이렇게 빨리 갔냐"며 영정 사진 앞에서 짐승처럼 울부짖던 강수의 모습은 지윤에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죽은 줄로만 아는 엄마를 눈앞에 두고 '언니'라고 소개해야 하는 현실에 지윤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강수는 별 의심 없이 말자를 바라보았다. 강수의 눈과 말자의 눈이 마주친 찰나, 말자는 숨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이지윤 선배 되는... '말자'라고 합니다."
강수는 멍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말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신기하다는 듯 입을 뗐다.
"말자...라고 하셨어요? 와, 우리 엄마 이름이랑 똑같네요. 요즘 세상에 '말자'라는 이름은 좀 옛날 이름이라... 실례지만 조금 놀랐어요. 선배님은 얼굴이 너무 젊으셔서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인데."
강수의 무해한 웃음이 말자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말자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라 바꾸지 않고 살았어요. '끝 말(末)'에 '아들 자(子)', 딸은 그만 낳고 아들이나 보라고 지어준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저는 이 이름이 좋아요.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억될 이름일지도 모르잖아요."
주문한 스테이크와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도착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보자 말자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강수는 늘 고기를 크게 썰면 체하곤 했다. 말자는 무의식 중에 칼과 포크를 들고 아주 작고 정교하게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강수가 먹기 딱 좋은 크기였다.
말자는 수십 년간 해온 숙련된 솜씨로 잘게 썬 고기 한 점을 강수의 접시 위로 옮겨주려 했다. 하지만 포크가 강수의 접시에 닿기 직전, 지윤의 경악 어린 시선과 마주쳤다.
'아차.'
말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공에서 포크를 멈췄다. 강수는 젓가락을 들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만난 '젊은 선배'가 자신의 접시에 고기를 놔주려는 친밀한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동생이 있는데, 버릇이 돼서 그만 실례를 했네요."
말자는 타는 듯한 얼굴을 숙이며 고기를 자신의 접시로 가져왔다. 지윤이 서둘러 분위기를 돌리려 가방에서 반찬통들을 꺼냈다.
"에이, 선배님이 워낙 다정하셔서 그래. 오빠, 이것 봐. 선배가 오빠 자취한다고 하니까 특별히 장조림이랑 반찬들도 챙겨주셨어."
강수는 반찬을 한 젓가락 입에 넣더니 갑자기 멈칫했다.
"이 맛..."
강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장조림을 씹었다.
"우리 엄마가 해주던 거랑 맛이 너무 비슷해요. 돌아가신 뒤로 이 맛을 다시는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꼭 엄마가 챙겨주신 밥상 같아요. 목소리도, 분위기도... 자꾸만 엄마랑 겹쳐 보여서 이상하네요."
그 말에 말자는 식탁 아래에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내가 네 엄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강수의 컵에 물을 따랐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말자는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 거울을 보았다. 젊음을 얻고 아들을 되찾았지만, 동시에 아들에게 영원히 '엄마'라 불릴 수 없는 형벌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