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오롯이 말자
AI 이미지 Gemini
지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그 통에 한 번 들어가서 젊어지고 다시 늙으면 끝이야. 다시는 되돌릴 수 없어."
말자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젊어진 이후 단 한 순간도 인생을 허비한 적이 없었다. '이말자'라는 이름 그대로 대학교에 입학해 젊은 동기들 사이에서 밤새워 공부했고, 그 노력 끝에 IT 플랫폼을 성공시키며 당당히 커리어를 쌓아왔다.
하지만 지윤의 절규는 말자의 가슴 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자식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한 증명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할 때였다. 말자는 다음 날 바로 법원을 찾아가 이름을 고쳤다. 70년 세월의 고단함이 묻어있던 '이말자'를 떠나보내고, 비로소 오롯한 자신으로 존재할 이름, ‘이채원’을 얻었다. 주민등록증도 다시 발급받았다.
이름을 바꾼 채원은 더욱 무서운 기세로 업무에 매진했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성공을 넘어, 회사의 상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승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70년 인생에서 얻은 사람을 보는 안목과 젊은 채원의 분석력이 결합하자 그녀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채원의 팀에 신입사원 한준우가 입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한준우입니다. 상무님이 만드신 플랫폼을 보고 이 회사 입사를 꿈꿨습니다."
준우는 채원을 향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단순한 동경을 넘어선 것이었다. 업무 보고를 할 때마다 묘하게 머무는 시선, 채원이 야근할 때 슬며시 건네는 따뜻한 음료. 채원은 처음엔 그저 '싹싹한 후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준우는 채원을 '성공한 상사'가 아닌 '매력적인 여자'로 대하며 다가왔다.
"채원 상무님, 오늘은 일 말고... 저랑 저녁 먹으러 가요. 상무님 말고 '채원 씨'랑 가고 싶어서요."
그의 당돌한 고백에 채원의 가슴이 거세게 요동쳤다. 70 평생 '강수 엄마'로 살며 잊고 지냈던 여자의 심장이었다. 두 사람은 프로젝트를 핑계로 만남을 이어갔고, 이내 깊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준우와 함께 영화를 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채원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평범하고도 달콤한 연애의 기쁨에 젖어 들었다.
준우의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으며, 채원은 지윤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래, 한번 들어가 버리면 다시 늙으면 끝이지... 그러니 지금 이 행복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채원은 이제 과거의 미련도, 엄마라는 무게도 잠시 내려놓은 채, '이채원'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자신의 진짜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