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생 지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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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는 야근을 하고 지친 몸으로
강수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수의 목소리는 거의 실성에 가까웠다.
"이게 다 뭐야! 유골함에 왜 흙밖에 없어! 엄마 어디 있어, 이지윤! 너 엄마 어떻게 했어!"
강수의 절규에도 지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동자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오빠. 그 유골함 가짜야. 엄마 안 죽었어. 아니, ‘이말자’라는 늙은 여자는 죽었고, 이제 ‘이채원’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어. 이제 속이 시원해?"
강수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잇지 못하자, 지윤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오빠, 정신 똑똑히 차리고 내 말 들어. 엄마가 왜 그 통에 들어갔는지 알아? 평생을 누구 때문에, 어떻게 살았는지 잊었어? 사고로 다리 다쳐서 평생 못 걷게 된 아빠, 그 무거운 몸을 매일 닦아내고 욕창 생길까 봐 밤잠 설치며 뒤척여준 게 누구야? 오빠가 밖에서 술 마시고 사고 치고 다닐 때마다 그 뒷수습 누가 다 했냐고! 무능력하게 제 앞가림도 못 하고 나이만 먹는 오빠 보면서, 엄마 속이 얼마나 시커멓게 타들어 갔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지윤의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거칠게 쏟아졌다.
"엄마, 그 리셋 통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오빠 걱정뿐이었어. 자기 몸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그 지옥 같은 집구석 돌보느라 진액이 다 빠져나갔다고! 그런 엄마가 이제 겨우 이름 바꾸고, 젊어져서,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겠다는데 오빠가 뭔데 엄마 발목을 잡아? 오빠가 엄마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엄마를 다시 그 쭈글쭈글한 노파로 만들어서, 또 오빠 뒷바라지나 하게 만들고 싶어? 그래서 오빠 마음 하나 편해지자고?"
강수가 "그래도... 그래도 엄마잖아! 어떻게 자식을 버려!"라며 울부짖자 지윤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엄마는 자식을 버린 게 아니라, 지옥을 탈출한 거야. 잘 들어. 엄마 지금 IT 회사 상무로 승진해서 이름 날리면서, 신입사원 준우라는 사람이랑 생전 처음 여자로서 사랑받고 행복해하고 있어. 그 기적의 통, 한 번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에 늙어버리면 정말 끝이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오빠가 지금 가서 '내가 아들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엄마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거야. 다시 그 냄새나는 집구석으로 돌아와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고."
지윤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낮게 읊조리듯 으름장을 놓았다.
"선택은 오빠가 해. 오빠가 정말 엄마 아들이라면, 인간이라면... 그냥 엄마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 엄마 인생 살게 내버려 두라고. 만약 오빠가 엄마 앞길 막으면, 나 그땐 정말 오빠 가만 안 둬."
지윤은 미련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수는 거실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손에 쥔 낡은 은가락지가 엄마의 거친 손마디처럼 느껴져, 강수는 차마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채 유골함 위로 눈물만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