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돌아갈 수 없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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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은 준우를 내보내고 책상에 엎드렸다. 이번에 늙어버리면 정말 끝이다. 다시 그 냄새나는 집구석으로 돌아가 남편의 병수발을 들며 아들의 빚더미를 감당하던 '이말자'로 회귀할 수는 없었다.
그때, 정적을 깨고 개인용 비즈니스 채널의 알림음이 울렸다.
[상무님, 아니... 엄마. 나 지금 회사 앞이야. 제발 얼굴 좀 보여줘. 아니라고 말해줘.]
화면 속 강수의 간절한 메시지가 가짜 인생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채원은 눈을 감고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강수를 마주하는 것은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지만, 지윤의 말대로 '다리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서는 비겁하게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채원은 거울 앞에 서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고 붉은 립스틱을 덧발랐다. 거울 속에는 처량한 노파가 아닌, 차갑고 도도한 이채원 상무가 서 있었다.
"그래, 이게 나야. 내 이름은 이채원이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읊조리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텅 빈 복도에 울리는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조여왔지만, 채원은 철저히 표정을 지웠다.
로비 유리문 너머, 가로등 불빛 아래 강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깨는 잔뜩 굽어 있었고, 그는 구원이라도 기다리는 듯 건물 입구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채원이 문을 밀고 나가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구두 소리에 강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이미 눈물로 퉁퉁 부어 있었다.
"상무님..."
갈라진 목소리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강수는 한 걸음 다가오며 손바닥 위에 놓인 낡은 은가락지를 내밀었다. 시장 통에서도, 나물을 다듬을 때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았던 엄마의 가락지였다.
"이게 왜 상무님 가방에서 나와요? 지윤이가 한 말이 다 진짜예요? 우리 엄마, 정말 죽은 게 아니라... 당신인 거예요?"
처절한 물음에 채원은 잠시 다리가 휘청였지만, 곧 냉철한 상무의 눈빛으로 강수를 쏘아보았다.
"강수 씨, 지금 제정신입니까? 비즈니스 채널로 무례한 메시지를 보내더니, 이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까지 하는군요."
"거짓말 마!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당신, 우리 엄마 맞잖아! 나 도와준 거, 내 업체 살려준 거, 그거 다 엄마라서 그런 거잖아!"
강수의 울분에 채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갑게 대답했다.
"착각이 심하시네요. 난 수익이 날 파트너를 지원했을 뿐이고, 그게 마침 당신이었을 뿐이에요. 내 인생에 당신 같은 아들은 없어요. 내 아들은... 이미 죽었거든요."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뱉은 마지막 말에 강수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채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치 타인처럼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