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이말자가 아니라 이채원이라는 이름으로
AI 그림 Gemini
박 팀장이 감사실로 끌려간 뒤, 사무실은 기묘할 만큼 차분해졌다. 직원들은 이미 어제 이 상무의 눈물 섞인 고백을 들었고, 그 진심에 응답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박 팀장이 폭로라고 내던진 서류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영수증처럼 무의미했다.
이 상무는 자리에 앉아 사내 메신저의 '전체 쪽지' 창을 열었다. 이미 어제 밥을 먹으며 강수와 지윤이에게 모든 이해를 구했고, 직원들에게도 육성으로 고백했지만, 그녀는 리더로서 이 상황을 공식적으로 매듭짓고 싶었다.
[전 직원께 드리는 글]
직원 여러분, 이채원입니다.
어제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제 남은 생을 걸고 젊음을 선택했습니다. '이채원'이라는 이름은 제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당당히 법적 절차를 거쳐 개명한 제 이름입니다.
박 팀장이 소란을 피우며 던진 과거의 기록들은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라, 제가 '이채원'으로 살기 위해 거쳐온 치열한 투쟁의 흔적들입니다. 제 외모는 기술의 힘을 빌렸을지 모르나, 여러분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쌓아온 실력과 성과는 오롯이 저의 것입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겠습니다. 제 과거의 이름보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가치로 저를 평가해 주십시오. 저를 믿어주신 만큼, 저 또한 여러분의 리더로서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쪽지를 보낸 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직원들은 쪽지를 확인하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상무님, 힘내세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그들이 다시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 자체가 가장 강력한 지지였다.
그때, 준우가 상무에게 다가와 조용히 보고했다.
"상무님, 감사실에서 연락 왔습니다. 박 팀장이 자신의 비리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상무님을 '사기 취업'으로 맞고소하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 합니다."
이 상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사기 취업이라... 정당하게 개명한 이름으로, 정당한 실력을 갖춰 들어온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죠. 준우 씨, 박 팀장이 외주 업체 선정 과정에서 누락시킨 리포트 원본과 이중장부 리스트, 지금 바로 감사실로 넘기세요. 남의 과거를 캘 시간에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전해주시고요."
상무는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20대의 활기찬 걸음걸이였지만, 그 기백은 수십 년의 풍파를 견뎌온 노련한 이말자의 것이었다.
회의실 문을 열자, 팀장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그들의 눈에는 경계심이나 의구심 대신, '진짜 리더'를 향한 깊은 신뢰가 서려 있었다.
"자, 시작합시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이 상무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쟁쟁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