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 화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다
AI 그림 Gemini
공개 연애 선언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5년이 지났다. 20살의 모습으로 돌아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교까지 졸업한 뒤, 28살에 상무가 되었던 채원이는 이제 서른세 살이 되었다. 30대 초반이 된 채원이는 준우 씨와 여전히 예쁘게 만나고 있으며, 이제 두 사람 사이에서는 결혼 이야기가 천천히 나오고 있다.
어느 날 오전, 채원이는 준우 씨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이제는 준우 씨가 채원이의 아이들인 강수와 지윤이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 하는 자리였다. 네 사람이 식당에 모여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처음 보는 자리라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준우 씨, 우리 엄마랑 결혼하실 생각이에요?"
딸 지윤이가 묻자 준우 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이는 준우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준우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엄마랑 결혼하시면 이제 아빠라고 불러야겠네요."
그 말에 긴장했던 식탁 분위기가 금세 환해졌다. 아들 강수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준우 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채원이는 준우 씨와 아이들이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저녁에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오신 준우 씨의 어머니가 저녁에 같이 밥을 먹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채원이는 준우 씨와 함께 긴장된 마음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저녁이 되어 도착한 일식집, 어머니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 봉투를 내던지듯 내려놓으셨다.
"내가 사람 시켜서 다 조사해봤다. 채원 씨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우리 아들이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부 다 알아."
어머니의 시선은 오로지 자기 아들인 준우 씨에게만 향해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아까워서 채원이를 매섭게 몰아붙이셨다.
"준우야, 난 이 결혼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내 아들이 어디가 부족해서 이런 복잡한 과거를 가진 여자랑 결혼을 하겠다는 거니? 나는 오직 내 아들 앞길만 생각한다. 너처럼 귀하게 키운 아들이 왜 이런 짐을 지고 살아야 하니? 나는 이 결혼 절대 반대다!"
오로지 아들 준우만 생각하는 어머니의 서슬 퍼런 호통에 방 안은 찬물이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채원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아들이 평탄한 길을 가길 바라는 마음에 채원이를 강하게 거부하셨다.
채원이는 어머니의 매정한 말에 입술을 깨물었고, 준우 씨는 채원이의 손을 더 꽉 잡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더 말할 것 없다. 난 허락 못 하니까 그렇게 알아라."
어머니는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가버리셨다. 홀로 남겨진 채원이와 준우 씨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33살의 채원이는 다시 한번 인생의 큰 벽 앞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