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베러티(Verity)》

콜린 후버(Colleen Hover)의《베러티(Verity)》

by 우물 안 개구리



"잤니? 잤어? 잤냐고?" 이토록 노골적인 말이 있을까. 이보다도 한국 막장 드라마를 한마디로 압축시켜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을 거다. 불륜 상대와의 성관계가 드라마의 주된 골격을 이루다 보니 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그만큼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내용들이 텔레비전 유튜브 할 것 없이 다채로운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원조는 따로 있고, 원조가 원조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 어떤 매체도 책을 이길 순 없다(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강조하고 싶다). 직접 보는 것보다 상상에 맡겼을 때 놀라움과 재미는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에 미국물까지 더해졌다. 이쯤 되면 '네가 안 읽고 배기나 보자'의 심정으로 내놓은 책이 아닐 수 없다.


책 제목이기도 한 베러티는 이야기의 주요 인물이다. 유명 소설가인 그는 차 사고로 인해 침상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의식은 있지만, 뇌를 다쳐 의지가 없는 상태로 생명만 연장하고 있다. 글을 전혀 집필할 수 없기에 남편 제러미가 그를 대신해 시리즈를 마쳐줄 사람으로 무명의 소설가 로웬을 뽑는다. 로웬은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두 사람의 집에서 묵게 된다. 살아 있지만 진정 살아 있는 게 아닌 아내, 잘생기고 다정한 남편, 그녀를 대체할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등장. 마라맛 드라마의 막이 오른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막장 전개를 기대해선 안 된다. 이야기는 제러미와 사랑에 빠지는 로웬의 시선에서 이뤄지지만, 진짜는 베러티의 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녀의 자서전에 의해서 말이다. 베러티는 제러미와의 첫 만남부터 첫 섹스, 결혼, 쌍둥이 딸들과 아들을 낳아 기르는 과정, 차 사고가 있기 직전의 모든 내용을 자신의 자서전에 담았다. 특히 두 딸의 죽음까지도. 베러티에겐 제러미가 세상이었고 제러미에게도 그녀가 전부이길 바랬다. 그러나 쌍둥이를 임신한 이후, 그녀의 세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제러미의 눈에 자신 이외의 것들이 담기는게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낙태를 시도했지만 태아의 얼굴에 상처를 낸 정도에서 그쳤고,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나서부터는 이중생활을 감행한다. 남편이 없을 땐 아이들은 내팽개쳐놓고 글만 썼으며, 그가 돌아오면 돌봐주는 식이었다. 두 딸 중 하나인 채스틴이 다른 딸 하퍼의 손에 죽는 꿈을 꾸고 부터는 채스틴만 애정하고, 하퍼는 잠재적인 살인자 취급을 한다. 채스틴이 갑작스레 죽자, 꿈이 곧 예지몽이었다고 판단한 베러티는 하퍼를 사고인 것처럼 꾸며 죽인다. 이후 남편 제러미가 의심하자 자신이 직접 차를 몰아 사고를 낸다.

여기서 끝을 맺는다 해도 이미 충분하지만, 작가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변주해나간다. 자서전의 모든 내용을 읽은 로웬은 제러미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베러티가 가짜 식물인간 행세를 했다는 것도 밝혀진다. 이에 분노한 제러미가 로웬의 도움을 받아 베러티를 사고사로 위장해서 죽이게 된다. 은밀한 둘만의 비밀이 생긴 제러미와 로웬은 부부가 되고, 둘은 베러티의 보험금과 완성된 책 수익으로 새 삶을 꾸리려 한다. 부동산에 팔기 전 마지막으로 들러본 집에선 베러티가 남긴 충격적인 쪽지가 발견되고, 이를 본 로웬은 갈갈이 찢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혹자는 이 소설을 두고 "the most EVIL(가장 악한)" 콜린 후버의 책이라며 감상을 남겼다. 낙태부터 시작해서 위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자세한 성 관계 묘사하며...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적나라한 표현들이 생생하게 나와서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계속 읽었던 건 아니, 읽게 하는 건 작가가 짜놓은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닌가 싶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 속에서 버틴건 정말 순수하게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그렇다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정말 끝이냐? 그건 또 아니다. 외려 시작이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읽고 나면 지금의 나처럼 입이 근질근질 해질 테니까. 이미 많은 이들이 결말에 대한 해석을 두고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사실 결말을 다루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지만, 앞으로 읽고 이에 참여할 이들을 위해서 최대한 꾹꾹 참았다. 앞에서 다뤘던 것처럼 막장하면 우리나라도 못지않은데 김치 싸대기보다 더 험한(?) 것이 나왔다면 어떻게, 구미가 당기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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