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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문중  이야기

청주한씨

우리문중에서  대권주자가 나올 수 있을까ᆢ.

현 시점에서  총리와 사실상 여당의 당대표를  청주한씨가 맡게됐다.

더우기 당대표는 젊고 스마트한 이미지 때문에 지지층을 모으고 있다.


물론 나와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긴 하다 . 하지만 같은 청주한씨라는 동질감이 있고 다소 성실하고 그의 최근 공정한 발언들에 호감이 간다.  분명히 현 대통과도 차별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삼십년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선친과 양주  일영의  한씨중시조  가을 시제에 참여 했을 때이다.  그 당시에도 청주한씨가 총리였고  현직장관이 세명이나 있을때였다.


문중 어르신들의 대화주제는 이 때문에  고무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더 큰 정치진출을 위해 문중차원의 지원을 논의 하자는 것이었다.


항상 문중의 최대관심사는 후손들의 번성과 출세의 후원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동성 성씨들간의 유대감은 예전같진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유교적 문중종친회가 존속 하는한  그 동질감 고양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선친은 삼대독자셨던 조부님이 돌아가신 후   외가인  문씨문중  조모님 고향으로 이사했다.

당시에는  농촌에서 인척들간의 유대가 경제생활에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은연중 느꼈던 것은 조모의 인척간 유대감보다 문씨문중 그들간의  일가 동질감이 더 강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청주한씨가 당시에  7다성을 이룰 정도로 적지않은 문중이었다. 반면 우리고향에서 집성촌을 이뤘던  남평문씨는 그리 다수의 성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집성촌에서 일가들 간의 결집력은 대단했다.

더우기 최근 일이지만 문대통까지 배출됐으니 그 문중의 분위기는 미루워  짐작이 간다.


우리 청주한씨는 단일 일가로서 수적으로 세손가락 안에 든다. 즉 김해김씨 진주강씨와 청주한씨가  단일본 문중의  다수성씨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전반기 한씨들의 위세는 천하명문으로 일컬어 졌다.

그 조상들이 현세까지 양주시 일영유원지 인근에 수십기 묘역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 선친을 따라 청주본관 시제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이 곳 양주 일영묘역이  규모적, 수적으로 더 대단했다.


요즘 TV에서 한 위원장이 자주 비춰지며 중년여성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중년여성들 수다떨기 통화중 한 위원장이 나온다고 전화를 끊자고 다는 에피소드가 회자될 정도란다.


나로써는 그의 이미지에 걸맞는 참신한 처신을  바랄 뿐이다.  즉 현 대통에 분명히 차별화된 공정, 보편, 통합의 이념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나와 정치성향은 차이가 있지만 일상에서 종종  흥미로운 말을 듣곤 한다.  내가 외모와 어투면에서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이다.


얼마전 가족들과의 식탁머리에서  한 위원장이 나오는  TV를 보았을때   

 그 말을  딸램에게서 처음 들었다.

 또한 아내의  무심코 했던 그때 말 때문에 모두가 박장대소를 한적이 있다.

"한씨집안에 그런인물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혼잣말 때문이다.

아무튼 그가 한씨집안이라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지난번 초등동창 모임에서도 세명믜 친구한테서 이미지가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 나는 의도적으로 초등동창 단톡방을 주기적으로 활성화시켜 왔다. 나를 너무 드러내지  않으면서 친구들을 참여시키고  참신한 댓글,포스팅을 유도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이것들이  그와 조금은 비슷한 외모와 함께 스마트한 긍정의 이미지로 작용한 듯 하다.


아무튼 우리  한씨문중메서도 이제 대권을 거머쥐는 인믈이 나왔으면 좋겠다. 문중에 자부심이 남달랐던 선친이  계셨더라면 더 좋아 하셨을 일이다. 하지만 전국에 한씨종친회가 건재하는한 그곳에 우리 한씨네의 구심점은

항상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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