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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방 이야기

sns 만능시대

ㅡ50명이나 되는 단톡방이니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감안해야 한다. 그동안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서  틀 잡힌 중년남녀들에게  어릴 적 동심만 고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ㅡ


요즘은 누가 뭐래도 sns시대이다.   sns가 없는  일상과  대인관계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중에서 학창 시절 친구들 모임방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초등친구 단톡방은 애틋한 감동이 있는 곳이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되었건만 그곳 단톡방에 들어가면 항상 동심의 나래가 저절로 펼쳐진다.

동심의 친구들, sns  단톡방이 있어 다행이다. 수십 년간 잊고 살았던 그들의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물어볼 수 있다. 


또한 친구들 하나하나의  프로필 사진을 훑어본다.  그들의 최근 모습과  근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순진했던 시골의 새까만 소년, 소녀들이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 따라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일가를  이룬 모습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내 고향은 농촌과 산촌을 아우르고 있는 시골이다.  

 학교를 중심으로 십리안쪽으로 통학권 내 마을들이 흩어져 있었다. 학교가 지척인 큰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가 하면  매일 한 시간도 넘게 종종걸음으로 학교를 오가던 친구들도 있었다.


학년당 2 학급을 넘지 않던 작은 시골 학교였다.

우리 동창들도 2학급으로 90여 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현재 초등모임 단톡방은 50 명선을

유지하는 상태다.


그중에서 적극적인 댓글참여 친구들은 소수이다. 아쉽게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인원밖에 안 될 것이다.

몇몇 친구들은 단톡방에 초대해도 나가기를 거듭하기 일쑤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특별모임 등이 있을 때면 또 초대를 하게 된다.


열린 마음과 포용이 필요한 곳이 초등 단톡방이라고 생각된다. 언제든지  동심의 그리움이 사무쳐서  초등단톡방을 기웃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한 경우도 발생했다. 나가기를 반복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심경이 호전되었는지   단톡방에 초대 좀 해달라는 부탁전화다.


 대부분 친구들이 댓글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언의 공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수시간, 수일의 시간차가 있을 뿐  모두가 댓글이나 포스팅들을 읽어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눈팅족이라고 불리는 그들도 그렇게 존재감을 나타내 준다.


평상시에 단톡방은 안부인사나 덕담포스팅들이 주를 이룬다.

가끔은 번개팅을 주선하는 댓글이 올라와 단톡방을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각자가 살고 있는 곳의 일상 예기나 사진들을 올린다.

어쩌다가  금전적 과시성 댓글이나 사진도 올라온다. 하지만 공감이 떨어짐을 직감하게 된다.


여가생활이나 취미활동 등은 건전한 포스팅에 속한다고 본다.

이것마저도 과시성으로 받아들여  공감 못하는 친구가 더러는 있다.

한 번은 취미작품  포스팅에  직설적 악플을 단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이 난감해한 듯 응답댓글 하나 없이 한동안 잠잠하였다. 나는 단톡방의 활성화를 위해 완곡한 표현으로 이러한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ᆢ톡방에서 너무 표현에   신중하면

내 안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너무 과하면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것을 안다면

중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단톡방은 항상 십인십색이니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드러내는 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댓글이나 취미작품, 악기연주 등 포스팅 참여는 이해를 해줘야 우리 단톡방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ᆢ."


이 댓글을 올린 직후  악플을 단 여자동창  친구는 나에게   개인톡을 날려 왔다. 자신을 두둔해 주지 않았다고  서운함을 토로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단톡방을 나가기 해 버렸다.


50명쯤 되는 단톡방이니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감안해야 한다. 그동안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서  틀 잡힌 중년남녀들에게  어릴 적 동심만 고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그 친구를  단톡방에 초대하고 싶다. 그때는 친구의 마음이 동심처럼 너그러워졌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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