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기량 엔진은 여유로운 출력과 함께 부드러운 회전 질감으로 대형 럭셔리 세단의 고급스러운 주행감을 완성하는데 필수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엔진 다운사이징 열풍이 불었을 때에도 각 브랜드의 기함급 모델은 8기통 엔진의 상징성 때문에 대배기량 엔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대표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 역시 최초 F 세그먼트 세단인 에쿠스와 함께 8기통 엔진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현대차는 국산 승용 모델 최초 8기통 엔진을 탑재하며, 최근까지 V8 엔진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급격히 다가오는 전동화 시대로의 전환을 위해 약 22년의 역사를 끝으로 현대차그룹의 8기통 엔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99년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를 출시하며 4.5리터 V8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당시 국산차 중 가장 높은 배기량이 높았던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엔진이 V6 3.6리터 엔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수치였습니다. 1세대 에쿠스의 4.5리터 V8 엔진은 일본 미쓰비시의 8A8 엔진을 개량한 오메가 엔진이었는데, 미쓰비시의 엔진까지 전량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했던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오메가 엔진의 초기형 버전은 최신 직분사(GDi)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직분사 엔진은 획기적이었지만, 고급유를 주유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 시장은 고급유를 취급하는 주유소도 드물었고, 고급유에 대한 운전자들의 인식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후기형 버전에는 현대차에서 일반유 세팅으로 바꾼 MPI 방식으로 변경됐습니다. 이후 오메가 엔진은 1세대 에쿠스가 단종된 2008년까지 약 10년간 현대차의 V8 엔진 자리를 지켰고, 현대자동차의 직분사 엔진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됐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오메가 엔진에 이어 국내 완성차 업계 최초로 승용형 V8 엔진을 독자 개발에 성공합니다. 현대차그룹의 기함급 모델에 탑재되어 왔던 타우 엔진입니다. 초기형 타우 엔진인 4.6리터 MPI 엔진은 2008년 출시된 현대 1세대 제네시스의 북미형 모델에 처음으로 탑재됐고, 국내 시장에서는 2009년 출시된 현대 2세대 에쿠스에 탑재됐습니다. 4.6리터 V8 MPI 엔진은 최고출력 336마력, 최대토크 44.8kg.m를 발휘했으며, 에쿠스 리무진에는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51kg.m를 발휘하는 5리터 MPI 엔진이 탑재됐습니다.
이후 2012년에는 직분사(GDi) 기술을 적용한 5리터 타우 엔진이 에쿠스에 탑재되기 시작했습니다. 고급유 권장 사양으로 최고출력 430마력, 최대토크 52kg.m를 발휘해 여유로운 출력을 자랑했습니다. 이후 현대 에쿠스의 후속 모델이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 EQ900(현행 G90)로 바뀌며, V8 타우 엔진은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에 탑재되어 국내 8기통 럭셔리 세단의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타우 엔진은 국산 완성차 브랜드 중 최초 독자 개발된 승용형 V8 엔진이라는 타이틀과 미국 워즈오토 10대 엔진에 선정된 첫 번째 국산 개발 엔진입니다. 첫 번째 타우 엔진인 V8 4.6리터 MPI 엔진은 우수한 출력과, 대배기량 엔진에도 우수한 효율을 바탕으로 2008년 워즈오토 올해의 엔진에 선정됐습니다. 이어 2009년 역시 성능과 연비, 소음, 내구성과 친환경성 등에서 경쟁력을 갖춰 V8 엔진으로는 유일하게 워즈오토 10대 엔진에 선정됐고, 이어 2010년에도 V8 5리터 GDi 엔진이 선정되어 타우 엔진이 3년 연속 워즈오토 10대 엔진에 선정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99년부터 현대차그룹의 플래그십의 상징이었던 V8 타우 엔진은 지난해 3세대 G90의 단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V8 엔진의 자리는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을 거쳐 전동화 파워트레인으로 변경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전동화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전동화 전용 플랫폼인 E-GMP를 기반으로 전동화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V8 타우 엔진의 빈자리 역시 E-GMP의 고효율, 고출력 PE 시스템이 대체하게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