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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자동차 Mar 21. 2024

[전문가 칼럼] 아직도 전기차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Writer 김형준(자동차 저널리스트)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BBC 톱기어> 한국판을 거쳐 <GQ> 피처 에디터, <모터트렌드> 한국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전기차에 관심은 있지만 막상 구매하려니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걱정되는 게 한 둘이 아니죠.
특히 시대적 아젠다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전기차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전문가의 특별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전기차를 망설이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2023년 국내 자동차시장 성적이 발표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전기차 판매량이다. 소형 배터리를 기존 내연기관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판매는 전년대비 42.5% 늘어난 반면, 대형 배터리와 모터로 구동하는 순수 전기차(BEV) 판매량은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판매 수치로 보면 HEV는 10만 대 이상 더 팔렸고(39만 898대) BEV는 2,000대가량 덜 팔렸다(16만 2,507대). 

판매지표를 발표한 한국 자동차 모빌리티 산업협회는 이 같은 현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산 인기모델 대부분에서 하이브리드 선택이 가능해졌으며, 얼리어답터 수요 중심의 고성장세를 기록하던 전기차는 소비 여건 악화 등으로 신규 수요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전기차는 가격이 아직 높은 편이다. 차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내연기관차에 비하면 대체로 40% 가까운 웃돈이 든다. 그래서 국가가 각종 지원정책을 펼쳐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구매보조금을 지원하고, 취득세 감면 등 세금 혜택도 더해졌다. 수년간 전기차 시장이 J자 곡선을 그리며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이다.


전기차 보급 정책의 기류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변화했다. 보조금, 세금 지원과 같은 혜택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유럽의 경우 독일이 연말부터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고, 프랑스는 고소득자들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영국과 스웨덴, 중국은 아예 보조금 지급을 폐지했다. 

상황은 국내도 비슷해서, 승용 전기차 1대당 국고 보조금은 매년 감소하고 있고 세금 혜택의 일몰도 눈앞에 와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전기차 시장과 관련해 ‘성장 둔화’ ‘침체기’ ‘한파’ 같은 표현을 포함한 부정적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진 배경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국내 사정과 별개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성장했으며, 점점 더 규모가 커질 것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한 예로, 전기차 시장조사기관인 ‘EV 볼륨스(EV Volumes)’에 따르면 지난해 1,420만 대의 전기차가 판매됐고, 이중 순수전기차는 100만 대 가량이었다. 유럽의 전기차 등록대수는 32% 증가했고(독일 제외),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36% 늘었으며, 북미시장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전년보다 46% 높았다. 이 기관이 전망한 2024년 전기차 판매대수는 1,780만 대로 지난해보다 360만 대 더 많다. 순수전기차 판매량도 1,280만 대로 전년대비 280만 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다른 에너지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loomberg New Energy Finance)’의 예측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기차 시장은 전년대비 21% 성장하는 1,670만 대 판매, 그리고 이중 70%가 순수전기차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각국 전기차 보급 정책의 변화, 시장간 기득권 다툼, 원자재 가격과 공급을 둘러싼 불확실성 등의 변수가 시장상황을 흔들 수 있지만 ‘전기차 대세론’은 흔들림 없다. 자동차 이용자 관점에서 보자면, 전기차는 오늘 탈 것인지 내일 탈 것인지의 문제일 따름이다. 흔히 하는 얘기처럼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기차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올해 초 미국 소비자매체 ‘컨슈머리포트’가 발표한 보고서 내용이다. 매체는 지난해에 미국 소비자 9,030명을 대상으로 ‘전기차 경험 정도에 따른 구매 의향 변화’를 조사했다. 전기차 경험 유무에 따른 전기차 선호도를 조사한 리포트다. 이중 눈길을 끄는 내용은 전기차 노출 정도를 0~4단계(우측으로 갈 수록 전기차 노출도가 높음)로 구분한 뒤 이에 따른 전기차 구매 의향을 묻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꼭 전기차를 사거나 빌릴 것이다’고 응답한 비율은 0단계에서는 3%, 4단계에서는 50%로 나타났다. 또한 ‘지금이나 앞으로 전기차를 사거나 빌리는 걸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0단계에서 49%, 4단계에서는 9%였다. 이 조사가 말해주는 것은 간단하다. 전기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기차에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 반대로 전기차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더 호의적이다. 과장 조금 섞어 말하자면, ‘전기차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해본 사람은 없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순수 전기차의 어떤 특징이 ‘유경험자’들을 매료시켰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거의 없다시피 한 진동과 소음, 무거운 배터리 중량마저 말끔히 지워버리는 후련한 토크 등 전동 파워트레인 특유의 성질이 첫손에 꼽히는 이점이다. 광고성 문구에 어김없이 포함되는 ‘다이내믹한 성능’이라는 표현은 스포츠카 못지않은 가속성능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조그만 경차가 덩치 큰 SUV들 사이에서 추월을 시도할 때도, 배송 트럭이 몇 톤 중량의 화물을 실은 채 가파른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갈 때도 전동 파워트레인의 역동성은 눈부시게 빛난다. 


이 같은 이점 덕분에 우리 자동차 이용자들은 보다 폭넓은 선택지를 갖게 됐다. 앞서 예로 든 경차와 배송 트럭이 대표적인 경우다. 경차는 차량 크기부터 엔진 배기량까지 한정된 규격 안에서 제작되는 자동차다. 그 덕에 경제성을 얻었지만 실제 운행 상황에선 부족한 파워트레인 성능 때문에 여러모로 답답함을 유발한다. 하지만 BEV 패키지를 품은 경차라면 얘기가 다르다. 대지를 박차고 나가는 힘이 소형 디젤엔진에 뒤쳐지지 않고, 묵직한 배터리가 차 바닥을 묵직하게 눌러주니 안정감도 높다. 

또한 BEV 파워트레인은 예열, 후열 등 파워트레인 열관리 필요성이 높지 않다(리튬이온 배터리의 온도 조절은 한파가 있는 겨울철에 제기되는 계절적 이슈로, 파워트레인의 일반적인 열관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전원을 켜자마자 출발하고 목적지 도착과 동시에 전원을 끄고 내려도 별 문제없다는 의미다. 숨쉴 틈 없이 짧은 거리를 자주, 빠르게 이동하는 배송 트럭 운전자에게 이보다 효율적인 도구는 없는 셈이다. 




게다가 10여년 전 초기 시장상황과 비교하면 지금 BEV 시장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국내 제조사와 수입 브랜드가 앞다퉈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가격대부터 차량 사이즈, 차종까지 거의 모든 세그먼트에서 순수전기차를 찾아볼 수 있다. 차량마다 타깃 고객도 세분화돼 있어 1인 가정이나 자녀 있는 가족, 도심생활자나 아웃도어 활동이 잦은 이들, 안락함이 중요한 사람부터 중독성 강한 고성능을 바라는 이들까지 다변화된 니즈를 만족한다. 구매 의사만 있다면 본인 취향이나 쓰임새, 지불 능력에 맞는 차량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기차의 저변은 올해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국내 제조사들은 경형 SUV, LFP 배터리를 탑재한 보급형 세단, 모든 걸 갖추고 있는 대형 SUV 등 시장의 저변과 함께 깊이까지 더해줄 신규 차종들을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가칭)을 위시한 보급형 모델이 펼칠 BEV의 대중화, 플래그십 모델 아이오닉7이 보여줄 윤택한 전기차 경험과 라이프스타일의 확장은 특히 기대되는 부분이다.




상품이 다양해지면 경쟁이 가속화되고 그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이는 시장 환경이 고도화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시장 고도화의 지표는 신규 상품 출시 외에도 여기저기서 관측된다.


먼저 기존 차량들의 업그레이드다. 아이오닉 5는 출시 3년차를 맞은 올해 성능과 가치를 한층 끌어올렸다. 에너지 밀도가 향상된 4세대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늘어났고 충전 성능도 나아졌다. 나아가 ccNc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탑재, OTA 적용범위 확대를 비롯한 기능상 개선 내용도 많지만 가격은 이전과 같다. 

구매 경험뿐 아니라 ‘소유 경험’까지 향상하기 위한 제조사의 노력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국내 자동차시장 영향력이 큰 현대차가 특히 적극적이다. 현대차가 지난 2월 출시한 ‘EV 에브리 케어’는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 코나 일렉트릭 신규 출고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이다. 충전 크레딧 또는 홈 충전기 설치 지원과 같은 충전 편의 제공, 중고차 잔존가치 보장, 전손 사고에 대한 신차 교환 지원 같은 혜택이 포함된다.




현대차는 이와 별개로 중고차 보상판매 프로그램과 함께 매입한 중고 전기차를 단장해 ‘인증 중고차’로 판매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현대차는 E-핏을 필두로 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부지런히 구축하는 중이다. 

‘신차 매매→운용→중고차 매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건강하게 자리잡으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은 약해지고 시장은 한층 활성화된다. 

전기차 이용 환경은 점점 좋아지고 있고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전기차 세계로 넘어오라’고 강변할 일은 아니지만 이 세계가 짐작만큼 ‘이세계(異世界)’는 아니며 전기차 경험이 지나치게 망설일 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기능이 활성화된 차 안에서 쇼츠 영상을 보며 “금방 나갈게” 말한 지 1시간 전인 연인을 기다리는 일, 열선을 켜둔 시트에 누워 V2L로 충전 중인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며 오롯이 한밤을 보내는 차박 캠핑은 순수전기차만이 만끽할 수 있는, 소박하고도 특별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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