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사계절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누군가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계절로 겨울을 고르기도 한다. 떨어진 기온이 몸을 움츠러들게 하고 차가운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서리 위에 눈까지 쌓인다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나쁜 일이 계속 벌어진다는 의미로 쓰일 정도이니 이런 겨울이 반가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자동차에게도 마찬가지. 얼어붙은 노면에서 차는 미끄러지기 쉽고 차갑게 굳은 엔진오일이나 고무 부품은 평소엔 내지 않던 소음을 내기도 한다. 시동을 걸고 엔진을 정상 온도로 높이려다 보니 공회전 시간은 길어지고 이는 여름철 에어컨을 켠 것만큼이나 연비를 떨어트리는 원인이 된다. 이는 같은 양의 연료를 쓰면서도 주행거리는 짧아지게 된다는 뜻으로, 배터리와 모터로 달리는 전기차도 정도가 다를 뿐 상황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겨울의 혹독한 날씨는 전기차에 불리할까.
무엇보다 배터리의 특성이 그렇다.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건전지처럼 전기차의 배터리도 겉으로 드러난 양극과 음극 사이에 여러 소재들이 채워진다. 물리적으로 둘을 나누는 분리막이 있고, 에너지를 가진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전해질이 있다. 전해질은 탄소와 산소, 수소를 다양한 형태로 결합한 유기용매와 리튬염, 양극과 음극을 보호하는 여러 첨가제가 합쳐진 끈적한 겔 형태다.
즉, 배터리 내부는 안쪽에 초코렛과 과일 조각을 품은 탱글탱글 한 푸딩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푸딩을 뜨거운 햇볕 아래 놔두면 녹아 버릴 것이고 냉동고에 넣으면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적당히 시원한 냉장 상태가 가장 맛있는 것처럼 배터리도 전해질이 적정 온도 범위에 있을 때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다. 이를 위한 배터리의 최적 온도는 대체로 15~35°C 정도로 알려져 있다. 4°C 이하나 46°C 이상이 되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자동차 협회(AAA, 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가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하 6.7°C에서는 영상 24°C일 때보다 주행가능거리가 12% 정도 떨어지고 전비도 8% 줄어든다고 한다. 여기에 전기 열선으로 작동하는 히터를 틀면 최대 41%까지 주행가능거리가 줄어드는 데, 설정 온도에 따라 감소율은 매우 달랐다고 한다. 실제 국내 환경부의 전기차 전비 측정 기준도 이와 비슷하다. 영상 25°C의 상온과 영하 6.7°C의 저온 주행거리를 측정해 표기한다. 특히 이 저온주행거리는 전력 소모가 많은 히터까지 가동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국내 보조금 지급 기준이 상온 주행거리의 70% 이상이어야 하므로 국내 판매 전기차 중 보조금을 받는 차는 최소 이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겨울철 전기차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곳에 차를 세우는 방법이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각수가 들어가는데, 영하의 날씨에 차가 노출되면 배터리 자체와 냉각수까지 모두 차갑게 식어 버린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열이 발생하는 전기모터 등을 통해 냉각수 온도를 올리게 되는데 아예 조금이라도 온도가 높은 곳에 차를 세우는 것이다. 지상보다는 지하 주차장이 낫고, 가능하면 찬바람이 불어 온도가 낮은 입구 쪽보다는 안쪽이나 한 층 더 내려간 공간에 세우는 것도 밤 동안 배터리 소모를 그나마 줄일 수 있다. 물론 하룻밤 정도 주차라면 같은 지하주차장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겠지만 기간이 길다면 가능한 따뜻한 곳에 세우는 것이 좋다.
배터리 온도 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오래하면 뜨거워지는 것처럼 전기차도 고속 주행이나 급가속 등 에너지를 많이 쓰면 온도가 올라간다. 겨울철에는 이와 반대로 너무 차가워지지 않도록 배터리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윈터 모드’가 있다. 차가 달리는 동안 외부 온도에 따라 배터리가 차가워지거나, 주차 중에 예약 또는 원격으로 공조장치를 작동할 때 등 배터리를 사용하게 되면 별도의 배터리 전용 히터를 작동해 배터리 셀의 온도를 높여준다. 물론 이를 위해 저장된 전기를 쓰므로 주행가능거리가 줄어들지만 차가운 배터리에서 전기를 뽑아 내는 것보다는 더 효율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또 ‘배터리 프리 컨디셔닝’은 급속 충전 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차가운 배터리에 급속 충전을 하는 것은 입구가 반쯤 얼음으로 채워진 물통에 물을 채워 넣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전해액의 온도가 낮으면 전기 에너지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인데, 특히 급속충전소를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했을 경우 미리 충전에 적합한 온도로 높여 빠르게 충전을 할 수 있다. 사실 배터리를 충전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넘어온 사람에게 가장 적응이 힘든 일인데, 프리 컨디셔닝 기능과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배터리 보호는 물론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 된다.
또 하나, 앞선 AAA의 조사 결과처럼 겨울철 전기차의 주행가능거리를 줄이는 가장 큰 원인은 공조장치, 그 중에서도 히터에 있다. 하지만 주행가능거리를 늘리기 위해 히터를 완전히 끈 채 두꺼운 옷을 입고 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뜩이나 미끄러운 겨울철 노면에서 내연기관차보다 토크가 크고 무거운 전기차를 운전하는 것은 섬세한 조작을 필요로 하는데, 두꺼운 외투를 입는 것은 운전자세를 망치는데다 반응 속도도 느려지기 때문이다. 윈터 모드를 사용하고 원격 공조를 작동해 미리 실내 온도를 높이고 두꺼운 옷은 벗어야 한다.
겨울철 주행가능거리가 걱정된다면 처음부터 ‘히트펌프’가 달린 차를 고르는 것이 최선이다. 같은 전기차라고 해도 히트펌프를 포함해 열관리 장치가 제대로 갖춘 차들은 저온 주행가능거리가 훨씬 길다. 이런 열관리 장치에는 배터리와 모터에서 발생한 열을 회수해 난방 등에 활용하는 것과, 일반적인 자동차 에어컨과 반대로 작동하는 히트펌프 등이 핵심 요소다. 에어컨은 액체가 기체로 증발할 때 주변의 열을 빼앗는 기화열 현상을 이용한다. 기체가 된 냉매를 압축해 다시 액체로 바꾸면 온도가 올라가는데, 에어컨은 이 열을 공기중으로 내보내 버리지만 전기차는 이를 히터의 열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즉 액체에서 기체가 될 때의 찬 기운을 차 밖에서, 기체에서 액체가 될 때의 뜨거운 열기를 차 실내에서 활용하는 원리다. 물론 냉매를 압축할 때 별도의 전기모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전기를 소모하게 되지만 전기를 직접 열로 바꾸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이 좋아 주행가능거리가 덜 줄어든다.
이 외에도 겨울철 난방을 위해 사용하는 전기량을 줄이는 방법은 많다. 같은 상황이라면 공조장치의 히터보다 시트와 운전대 열선을 적극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차가운 차 안 공기와 내장재를 뜨거운 바람으로 데우는 것보다 손과 몸 등에 직접 열기를 전달하는 쪽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따듯함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운전자 혼자 탄 상황에서 공조장치를 작동한다면 차 전체가 아니라 운전석으로만 바람이 나오는 ‘DRIVER ONLY’ 버튼을 누르는 것도 방법이다. 집 난방을 하면서도 옷방이나 거실 등으로 가는 온수량을 줄이고 안방이나 침실만 난방을 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겨울은 모든 자동차에 혹독하다. 내연기관차 중에도 디젤차는 예열 시간이 길어져 바로 히터가 나오지 않는다. 반면 전기차는 전기차만의 겨울나기 비법이 있는 셈이다. 히트 펌프 같은 기계장치의 여부, 윈터 모드와 배터리 프리컨디셔닝 같은 기능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가능하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 난방과 운전대 및 시트 열선, 예약 공조 등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효율적으로 실내 온도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새 차 구입 예정이라면 이런 불편함이 적은 차를 고르면 된다. 국내 전기차의 전비와 주행가능거리는 상온과 저온 두 가지를 모두 측정해 발표하는데, ‘환경부 저공해차 통합누리집(ev.or.kr)’에 방문하면 구매보조금 지급대상 차종을 통해 상온과 저온 주행가능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겨울철 주행가능거리가 걱정이라면 저온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확인하고 상온과 저온의 차이가 적은 차를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전기차는 저렴한 충전 비용 등 경제성이 가장 큰 장점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 오너들은 조용한 실내와 묵직한 승차감, 뛰어난 달리기 성능을 장점으로 꼽는다. 되려 여름철에는 공회전 걱정없이 에어컨을 마음껏 켤 수 있는 전기차만의 장점도 얼마든지 있다. 잠깐 스쳐가는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낼 활용법은 많다.
글.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컨설턴트)
자동차 교육 및 컨설팅 업체 '풀드로틀 컴퍼니'의 대표이자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본 콘텐츠는 작성자의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으며, 현대자동차로부터 원고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