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시대에도 건재한 세단의 매력
우리는 언젠가부터 SUV가 대세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차종은 세단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SUV가 대체했죠.
사람들이 SUV를 많이 찾는 이유는 우선, 활용성일겁니다. 같은 급의 세단보다 실내공간이 더 넓어 짐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으니까요. 이는 야외활동이 잦거나 짐을 많이 싣고 다녀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잘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SUV가 세단만큼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20년 전의 SUV는 지금처럼 편한 차는 아니었습니다. 시끄럽고 진동 심한 디젤 엔진에, 주행감도 어색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세단만큼 편하고 안락한 승차감은 물론, 풍절음에 취약한 차체 구조에도 불구하고 정숙성까지 챙겼습니다. 뛰어난 활용성에 상품성까지 높아졌으니 SUV를 사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생각해볼까요? SUV가 이렇게 좋아졌다면 SUV를 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세단의 판매량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왜일까요?
세단의 형태는 엔진룸, 캐빈, 트렁크까지 3박스 구조입니다. 자동차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승용차에서는 세단만이 3박스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박스 형태는 사실 실용성이 떨어집니다. 공간을 정확히 분배하면 공간이 그만큼 줄어드니까요. 그럼 왜 세단은 3박스 형태를 고집할까요? 그건 인간의 거주 공간을 기계실과 짐 공간으로부터 철저히 분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엔진룸과 사람이 거주하는 캐빈을 분리하는 건 모든 차종이 마찬가지입니다. 엔진이 만든 소음과 진동,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서죠. 그러면 짐공간과 캐빈을 분리하는 이유는 뭘까요? ‘세단은 짐을 싣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을 태우기 위한 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공간과 실내공간 사이에 격벽을 설치해 철저히 분리시킨 거죠.
세단의 가치는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짐보다 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짐과 사람을 같은 공간에 두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죠. 이것이 세단이 인간을 대하는 가치이자 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단은 그 어떤 차종보다 편하고 안락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세단이 인간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우선 세단은 SUV보다 차체가 낮습니다. 사람이 타고 내리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단은 노인도, 어린아이도 쉽게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반면 SUV는 지상고가 높죠. 거친 노면에 차체 바닥이 닿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짐을 많이 실을 경우 차체가 주저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단보다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더 길고 단단하죠. 즉 두 차는 차체 구조에서부터 목적성이 뚜렷하게 나뉩니다.
승차한 후에는 어떨까요? 눈높이가 낮은 건 그만큼 노면과 탑승자의 몸이 가깝다는 뜻입니다. 즉, 불안감이 덜하죠. 또한 노면 충격을 부드럽게 눌러 탑승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조용해야 하죠. 외부의 진동과 소음으로부터 인간의 안락함을 지켜내야 하니까요. 네, 그게 세단의 가치이자 철학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세단의 가치는 대부분 SUV가 흡수했습니다. 그래서 SUV가 많이 팔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SUV가 가질 수 없는 세단만의 장점과 가치가 있습니다. 우선 주행 성능입니다. 세단은 무게중심이 낮고 무게도 가볍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높은 주행성능과 연결됩니다. 더불어 사고 위험을 낮추면서 안정적인 핸들링도 제공하죠.
연료효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단의 낮은 차체는 바람저항 면적을 줄여줍니다. 즉 공기역학적으로 유리하죠. 또 지붕보다 낮은 트렁크 덕분에 유연한 공기 흐름을 만들어 와류를 줄입니다. 이 또한 공력성능에 유리하고 풍절음을 줄여주죠.
가격과 유지비도 세단이 다소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같은 급의 SUV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높은 연비를 지녔기에 유지비도 낮죠. 또 소모품인 타이어도 SUV보다 대체로 저렴합니다.
세단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미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세단의 낮고 날렵한 디자인은 세련된 외관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단은 전통적으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강조해왔죠.
현대차의 기함 그랜저를 보면 세단의 가치를 잘 대변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그랜저의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 기능은 주행 중에 발생하는 로드 노이즈와 반대되는 제어음을 내서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감소시킵니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어떨까요. 이 기능은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으로 노면 정보를 미리 인지해 서스펜션 감쇠력을 미세하게 조절합니다. 이를 통해 최적의 승차감을 제공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외에도 운전자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장시간 주행에도 편안한 운전환경을 제공하는 에르고 모션 시트, 뒷좌석 승객의 편의를 위한 리클라이닝 시트와 목베개, 뒷좌석 탑승객의 채광과 프라이버시를 위한 전동식 커튼 등 탑승객의 편의를 위한 첨단 시스템이 차고 넘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 SUV 전성시대인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단도 세단만의 매력이 있고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세단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건 세단이 가진 특유의 디자인과 감성, 그리고 탑승자를 대하는 정중한 태도 때문이지 않을까요. 세단은 SUV보다 가볍지만, 탑승자를 존중하는 태도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