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에 적용된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오래전부터 자동차 제조사는 정숙성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제아무리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뛰어난 주행성능을 갖추었을지라도, 정숙성이 떨어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숙성을 강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차음재, 흡음재, 제진재 등의 소재를 무작정 많이 적용하게 되면, 그만큼 차량의 무게가 늘어나게 됩니다. 이는 곧 연비 저하와 배출가스 증가로 이어지며, 차량의 원가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독특한 기술을 개발해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SUV ‘팰리세이드’에 적용된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Active Noise Control, 이하 ANC)'이 바로 그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 것인지, 이번 시간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보닛에서 올라오는 엔진음, 자동차가 공기를 가를 때 나는 풍절음,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노면 소음 등, 자동차는 매우 다양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소음은 500Hz 이하의 ‘저주파 소음’으로, 실주행 영역인 시속 60km에서 시속 80km 사이에 발생합니다.
이와 같은 저주파 소음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주파 소음에 오래 노출되면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겪게 되며, 심할 경우 공황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저주파 소음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소음 제어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시켜왔습니다. 두 개의 유리 사이에 특수 필름을 삽입한 ‘이중접합 차음유리’와 차체 바닥에 적용되는 ‘흡차음재’가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소음 제어 기술은 ‘다이내믹 댐퍼’입니다. 진동이 발생하는 부분에 부착되는 다이나믹 댐퍼는 노면 소음을 효과적으로 줄여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차체 강성을 강화하여 진동을 억제하고 금속끼리 만나는 부분에 탄성 있는 재질을 더하는 등의 시도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수동적인 대처만으로는 저주파 소음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주파 소음을 완전히 차폐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흡차음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대중 브랜드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헤드폰이나 이어폰 등의 음향 관련 기기에 사용되는 ‘ANC’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흔히 ‘노이즈 캔슬링’으로 불리는 기술을 활용하여 노면 소음을 잡아내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ANC에 대한 이론은 한 세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ANC를 구현할 만큼의 기술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었죠.
하지만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자동차에도 ANC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전 세계 여러 자동차 제조사가 ANC를 탑재하기 시작했으며, 현대자동차 역시 플래그십 SUV ‘팰리세이드’에 ANC를 장착해 차량 내부로 들어오는 엔진음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습니다.
한 세기 전부터 존재한 이론답게, ANC의 원리 자체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소리는 공기의 진동으로 이루어진 파동입니다. 파동은 파동과 만났을 때 서로 간섭이 일어나 증폭되거나 상쇄되는데, ANC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마이크를 이용해,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파동을 분석합니다. 그다음, 소음과 위상이 정반대인 파동을 스피커로 출력하여 소음 파동을 상쇄시킵니다. 결론적으로, 차 안으로 들어오는 소음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팰리세이드에 장착된 ANC는 65~125Hz대의 저주파 소음을 효과적으로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ANC가 적용된 덕분에, 팰리세이드의 탑승객은 저주파 소음의 방해가 없는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12개의 스피커로 이루어진 ‘KRELL 프리미엄 사운드’의 웅장한 음향을 보다 선명하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죠. 민감한 귀를 가진 운전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능입니다.
ANC의 등장으로, 현대자동차는 엔진음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현대자동차는 한 단계 진화한 ANC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노면 소음까지 잡아냈습니다. Road-noise Active Noise Control(이하 RANC)입니다.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발생하는 엔진음과 달리, 노면 소음은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타이어의 종류만 바뀌어도 노면 소음은 완전히 다른 파장을 보입니다. 이로 인해 기존의 ANC로는 노면 소음을 잡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가속도 센서’와 ‘DSP(Digital Signal Processor)’를 추가했습니다.
원리는 먼저 진동의 전달 경로에 위치한 가속도 센서를 통해, 노면 소음을 유발하는 진동을 기록합니다. 이후 기록한 진동 정보를 DSP로 전달해, 실내로 유입될 노면 소음을 예측하고, 마지막으로 예측한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파동을 스피커로 출력하여 노면 소음을 완벽하게 상쇄시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고작 0.002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노면 소음이 차 안으로 전달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0.009초임을 고려하면, 가히 찰나에 가까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죠.
이처럼 현대자동차가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경량화’와 ‘전기차’에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동차에는 굉장한 양의 흡차음재가 적용됩니다. 하지만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을 활용하면 흠차음재의 양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동차의 연비 향상에도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전기차는 엔진음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면 소음이 크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즉, 노면 소음을 확실하게 잡아야만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엔진음은 물론 노면 소음까지 잡아낸 현대자동차의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은 이제 ‘풍절음’을 다음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덕분에 향후 출시될 현대자동차의 차량은 팰리세이드를 뛰어넘는 고요함을 선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론만으로 존재하던 기술이 현실로 다가온 것처럼, 현대자동차의 놀라운 기술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