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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pr 21. 2022

4월의 크리스마스

평일인데도 사람과 소음과 활기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바로 전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 마음이 놓이는 풍경이다.

따가운 햇볕 아래 한참을 걸었다. 얼음이 가득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시간이다. 중앙시장 근처의 커피맛이 좋다는 가게는 마침 휴일이다. 지도를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카페가 있다.

손님이 없는 조용한 가게였다. 아는 언니가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가꾼 전원주택에 초대받은  은. 카페 뒤편에 주변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정원이 인다. 곧장 들어가  가꾼 나무와 풀과 꽃이 배치된 정원을 가로질러, 그늘 아래 평상에 자리 잡았다. 정원을 둘러싼 높은 벽이 따가운 햇볕과 소음을 가려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만 들어오는 공간이다.


같이 여행하곤 했던 L과는  년만이다. 낯선 도시에서 오랜만의 만남으로 예전의 사람과  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팬데믹 때문에 함께 계획했던 여행을 중단했던 S 더불어, 리 세 사람의 이야기는 비상 상황이 이어졌던 지난  해를 돌아보다가 다가올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때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편안한 공간에 걸맞은 거슬리지 않는 올드팝 목록에 섞여있던 곡 중 하나였을 것이다.

겨울이 아닌 때에 듣는 연말연시의 노래는 향이 날아가고 시큼해진 와인, 김 빠진 맥주, 먹다 남긴 안주, 냉장고에서 시들해진 잎채소 같은 느낌일 뿐이다, 보통은. 하지만 그 순간의 그 음악은 불길했다.

4월에 크리스마스 노래라니. 잠시 투덜거리다가 작년과 재작년 연말을 떠올렸다. 조금만 있으면, 새해가 되면, 백신이 나오면, 치료제가 나오면,  모든 것이 끝나고 시간과 기회와 풍요로움이 넘쳤던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갈  같았다. 기대를 삼키고 견디며 잊었던 시간들을 지난 지금, 내일, 다음 , 내년의 일을 어떻게   있을까.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올해는 괜찮을 거라고 다짐했다. 다가오는 여름,  하반기, 내년 초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던 순간에 흐르던 크리스마스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다시 구름이 흘러가고, 4월의 풀과 나무가 예년보다 더 푸르고 어진 초여름 같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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