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슬프다, 즐겁다, 들뜬다, 실망한다, 절망한다, 서운하다, 외롭다, 편안하다, 불안하다, 그립다, 든든하다, 뿌듯하다, 자랑스럽다, 쓸쓸하다, 무섭다, 의아하다, 아리송하다, 놀랍다, 후회스럽다, 사랑스럽다, 억울하다, 답답하다, 시원하다, 황홀하다, 편안하다, 행복하다, ……
말할 때도 쓸 때도 감정을 바로 표현하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어찌하지 못할 일로 마음속이 터질 것 같을 때도 기쁨인지 슬픔인지 절망인지 애써 알아보지 않았다. 한곳에 집중할 수 없는 어지러운 마음일 때도 혼란인지 피곤함인지 실망인지,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외부 요인 때문에 생긴 내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지치면 잠시 다른 시간과 장소로 떠나곤 했다. 그럴 땐 세세한 뉘앙스까지는 영원히 알아차릴 일 없는, 낯선 언어가 떠다니는 곳을 찾아다녔다. 어디에 가든 남겨 두고 온 해결 못할 상황이 변하거나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순 없었으나,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문제는 팬데믹 이후였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재난 앞에서 물리적으로 장소를 옮기는 행위가 불가능해진 시절, 단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편치 않다고 해서 쉽게 떠나는 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 갑자기 찾아왔다. 거리를 둔답시고 도망칠 수도 없던 지난 두 해 동안, 나는 언제든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는 재난 속에서 평온한 일상을 가장하고 싶어 내게 찾아온 감정들을 멀리 치워 두려고 애썼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임종을 간발의 차로 놓치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직 따뜻한 그 손을 잡은 채,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던 이상한 내 울음소리에 나는 그저 놀랐던 것 같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The Emotion Wheel
요즘 참가하고 있는 온라인 영어수업에서 ‘EMOTION WHEEL’이라는 수업자료와 함께 팬데믹 시기에 느낀 감정을 쓰는 과제가 나왔다. 그간 겪은 일과 감정이 담긴 다른 이들의 글이 슬랙에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어 감정 형용사를 사용해서 표현의 폭을 넓힌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과제였는데, 차례로 읽으면서 각자의 삶에서 팬데믹을 겪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감정이 친밀하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다 주어졌지만, 영어로 글을 쓸 때도 감정을 담는 건 쉽지 않았다. 과제를 마무리해야 하니 우선 짧은 글을 써서 제출한 후, 따뜻한 색에서 차가운 색으로 서서히 변하며 여러 감정 형용사가 빽빽하게 들어찬 감정의 바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음이 짚이는 단어가 몇 개 더 눈에 들어온다. 서툰 영어 대신 모국어로 쓴다면 팬데믹을 지나며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 감정을 더 잘 찾아낼 수 있을까.
감정을 통해 돌아본 팬데믹의 시간
휠에서 가장 먼저 찾은 건 부정적인 의미에서 상황에 압도당한 느낌과 공황 상태에 가까운 공포에 해당하는 단어였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던 2020년 초에, 공공병원에서 갑자기 쫓겨나다시피 퇴원한 엄마를 모시고 갈 만한 병원을 찾아 도시 곳곳을 헤매던 기억, 구급차 소리만 요란하던 텅 빈 거리와 겹쳐지는 참혹한 감정이다.
뒤이어 떠오르는 건 배제된 고립감이다. 전염병에 휩쓸린 곳이 고향인 직원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로 확인하는 회사 때문에, 동생은 아픈 가족이 있는데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었다. 마트에 식료품은 남아있는지 아마도 걱정되어 물었을 카톡 메시지와, 소식 없던 지인이 올린 소셜미디어의 여행 모임 사진에 마음이 불편해졌던 건 아마 그런 고립감에서 생겨난 편협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시 세상과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준 일도 있다. 온라인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힘들어하는 이곳 시민들을 위한 고구마 나눔 행사를 열었는데 내가 생각나서 신청했다며 고구마 한 상자를 보내준 지인이 있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을 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진 않을 식재료지만, 오븐에서 구울 때부터 달콤한 향기가 나던 그때 그 고구마는 따뜻하게 뱃속을 채우고 살얼음 낀 마음까지 녹여주었다. 남은 고구마는 재난구호 물품이라며 동생네 집에도 나눠주고 엄마를 돌봐주시던 간병사님께도 드렸다.
점점 길어지던 재난 시대에 친절과 선의가 불러일으킨 따뜻한 감정도 떠오른다. 갑작스러운 퇴원 이후 때때로 전화해서 엄마가 잘 계시는지 물어보던 투석실 간호사 선생님, 와상 환자에 대한 다른 환자들의 불만을 다독이며 입원을 도와주셨던 수간호사 선생님, 마지막까지 치료받았던 병원에 처음 입원할 때 이런 중환자도 받아주는지 묻자 당연하다고 말해준 의사 선생님,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엄마를 반짝반짝하게 씻고 닦아주고 아기처럼 다루며 돌봐주셨던 간병사님을 통해, 태어나고 자랐지만 언제나 떠나고만 싶었던 이 도시에 조금은 정이 들었다.
억지로라도 그래야 해서 용감해졌던 감정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쓰러지기 전까지 강하고 두려운 게 없어 보였던 모습에 마냥 기댈 수 있었던 엄마가, 병석에 누운 채 점점 아기처럼 되어가는 걸 지켜보며 처음엔 의지할 곳을 잃은 상실감과 충격을 느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면 어떻게든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재난 시대에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만 했다. 결국 이겨낼 수 없을 병이라도 울거나 포기하는 대신, 통증이 덜한 순간에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마주 잡고 보낼 수 있는 짧은 평온함을 소중히 여기며 마지막까지 전염병을 피해 가자고 다짐했던 시간이다.
그래서 팬데믹은 끝난 걸까, 이렇게 잊어도 되는 걸까
벌써 이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미 전염병의 시대는 끝난 것처럼 여기거나 곧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가 넘친다. 그간의 고통과 갑갑함을 떠올리면 그럴 만도 하지만, 사실 전염병은 변이를 거듭하며 여전히 진행 중이고, 상황이 나아진다 해도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 어쩌면 전염병에 대비할 수 없는 사람들, 감염을 두려워하며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더는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말하지 않게 되는 날 이번 팬데믹은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재난이 올 때까지 잊혀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가능하면 그간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조심스럽게 만나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고, 어떤 일을 겪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묻기 전에는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이, 있는지도 몰랐던 감정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며 고립되었던 마음을 다시 이어 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