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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pr 03. 2022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이제 외국 여행 다시 가야지?” 삼우제를 지내고 며칠 후에 다시 만난 동생이 물었다.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아, “가긴 가야지, 곧 갈 수 있겠지,” 하다가, 평생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무 데도 가지 않길 바라는 듯한 아버지 얼굴을 보면서 덧붙였다. “올 하반기엔 꼭 갈 거야.”


지난 이 년은 병상에 누운 엄마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시간이었다.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이미 꺼져가는 불꽃처럼 위태로운 상태였지만, 치료제도 없는 감염병에 걸려 낯선 곳에서 고통을 겪으며 홀로 마지막 순간을 맞지 않도록,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전과 마찬가지로 석 달마다 병원을 옮겼고, 지역에서 감염자 수가 폭증해서 갈 곳 없이 막막했을 때도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처음으로 고연령층을 위한 백신 접종이 시작됐을 때 침대에 누운 채 움직일 수 없는 엄마를 모시고 접종센터까지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병상에서 접종이 가능해졌을 때는 병원에서 언제든 임종을 맞을 수 있는 상태라며 굳이 권하지 않는다 해서, 대신 가족들이 가능한 한 빨리 백신을 맞았다.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버텨내며 함께 머물러주었다. 그동안 나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야외 공간에서 혼자가 아니면 외식을 하지 않았고, 친구와 함께 간 몇 번의 짧은 국내 여행 후엔 돌아오는 길에 PCR 검사를 받았다.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가 있었고, 이전부터 원격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는 게 가능했다.


엄마가 가신 후에도 금방 모든 게 바뀌진 않았다. 아픈 가족과 함께 병원을 옮겨 다니며, 우리는 의료가 한정된 자원이란 냉혹한 사실을 절감했다. 예전 같으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던 사람들이 시기를 놓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의료 체계에 한 사람분의 부담은 덜어주고 싶었다. 게다가 후유증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새로운 변이가 자꾸 출현하는 감염병에는 되도록 걸리고 싶지 않았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도 사정은 여태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현지 생활과 격리된 환경을 택해서 거기서만 며칠 머물다 오는 여행은 어쩌면 당장이라도 가능하지만, 그럴 거라면 굳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까지 갔다 올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팬데믹 이전에 내가 하던 여행은 안전을 고려하면서도 낯선 곳에서 맞닥뜨리는 새로운 사건과 상황을 즐기는 쪽이었다.


가장 싼 비행기표를 사서, 여권과 몇 가지 소지품만 챙겨 훌쩍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불과 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가격에 상관없이 그동안 노선이 취소되지 않았고 행선지까지 돌발 상황을 최대한 억제하며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는 항공권을 찾아야 한다. 감염을 커버하는 여행보험 상품을 찾고, 여행할 국가와 한국이 적절한 의료 제공 협약을 맺었는지 확인하고, 실제 상황도 알아봐야 한다. 도착한 곳에서 필요한 숙소와 식사, 교통을 되도록 미리 세심하게 계획하고, 그곳에서 코로나에 걸렸을 때 한 달 이상 불가피하게 더 머물러야 할 상황에 대비한 금전적 여유도 마련해야 한다. 접종 완료한 입국자에 대한 격리 조치는 사라졌지만, 나이 드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행을 마친 후 일주일 정도 혼자 지낸 후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하나하나 써놓고 보니 이건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아니라 신경과민이다. 이런저런 난관을 떠올리고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점점 힘이 들다가, 무언가를 뺏긴 듯한 분별없는 억울함까지 살짝 솟아난다. 사실은 온 세상이 함께 겪었던 팬데믹 이전에, 세계의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은 채 너무 쉽게 누리던 모든 것이 과분했던 것일텐데.


그런 여행과 세상은 사라졌다는 걸 아직은 순순히 인정하기가 힘들다면, 한번은 다녀와서 확인해도 괜찮지 않을까. 새로운 방식의 여행에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면 더는 떠나고 싶지 않아지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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