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깨지 않을 영원한 기억 속으로 건너가다
죽음 이후에 천국도 지옥도 없다면, 살았던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골라서 영원한 사후의 시간 속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순간을 선택할까? 생의 나머지 기억은 모두 잊은 채 죽은 후 사흘 동안 고심해서 고른 단 하나의 기억 속에서 영원을 살게 된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8년작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된다. 삶을 마친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질문이지만 먼저 떠난 이에게 물어볼 수는 없기에, 영화를 보며 나는 혼자 생각해보았다. 몇 가지가 떠올랐지만 하나만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고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영화 속 죽은 이들도 그 한 순간을 금방 찾지 못한 채 고민한다. 단 한 사람, 아이처럼 미소 짓는 나이든 여성, 누구든 손을 잡고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얼굴을 가진 그녀만이 삶의 끝과 영원 사이에 놓인 선택의 순간이 온 줄도 모른다. 영원으로 가져갈 기억 찾기를 돕는 직원들은 그녀가 죽기 한참 전에 가장 행복했던 벚꽃이 만발한 순간의 기억만을 남긴 채 다른 건 모두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을 자신만의 아름다운 시간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녀를 보며, 해가 갈수록 더 가벼워져서 아기처럼 내내 잠만 자던 엄마를 떠올렸다. 한참 전부터 서로 영향을 미치는 여러 난치성 병을 겪으며 점점 더 과거 속으로 돌아가던 엄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오래 전 죽은 여동생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엄마의 기억 속 모습보다 그때 내 나이가 훨씬 많았을텐데, 나는 다시 아이가 되어 엄마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서러운 내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엄마가 먼 기억 속에서 돌아온 아주 짧은 순간이 있었다. 그날 나는 병상 옆 의자에 앉아있다가 침대 난간에 머리를 기댄 채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꿈처럼 부드럽고 공기처럼 가벼워서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손길, 몇 년간 튜브로만 영양 공급을 받으며 손가락과 발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던 엄마의 손이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런 순간이 그 후에도 몇 번 찾아왔다가 금새 사라졌다. 서서히 병세가 악화되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엄마가 혼자 돌아간 기억 속에서 더는 고통스러운 병상으로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던 날 태어난 그녀는 봄이 시작되던 날 생의 가장 환한 봄날 속으로 영원히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