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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글: 위티 활동가의 '네모'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⑬

  2022년 4월, 우리는 ‘위티 활동가의 네모’라는 제목의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네모, 즉 빈칸 안에 무엇이든 넣어 질문을 던지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위티 활동가의 동기, 신념, 설렘, 아쉬움, 괴로움, 기쁨, 꿈, 목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위티라는 단체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자연스레 드러날 거라 믿었습니다. 이렇게 단체의 문화를 복기하고 점검하는 모습이 다른 단체 활동가들에게도 작은 영감이 되길 바랐습니다.

  세 달이 지난 지금, 활동가 열두 명의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창립 초기부터 쭉 활동한 사람도 있고, 중간에 합류한 사람도 있으며, 지금은 위티를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닌 사람이 있는 반면 쭉 제도권 학교에 머무른 사람이 있고,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대학 거부 선언을 한 사람, 한국 대학에 진학한 사람, 유학을 앞둔 사람,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사람 등 청소년기 이후에 내린 선택도 다양합니다. 



 ‘위티’라는 이름의 털실뭉치


  이렇게나 다양한 활동가들이 말하는 위티는 마치 ‘털실뭉치’ 같았습니다. 여러 색깔의 실이 한 데 동그랗게 뭉쳐 있는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사진] 흰색과 연한 갈색으로 이루어진 줄무늬 패턴 이불 위에 주황색 털실뭉치가 놓여 있다. [사진 끝]


  각각의 실은 어디서 왔을까요? 안전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서 (햇살), 내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지원), 내가 괴짜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유경), 재미있을 것 같아서 (라원)날 것의 마음을 보여줘도 평가받지 않을 것 같아서 (경하) 사람들은 하나둘 위티를 찾아왔습니다. 특히 위티가 청소년의 관점을 중심에 두는 페미니즘 단체라는 사실에 놀라움과 호기심을 느낀 이들이 많았습니다. 가입 및 활동에 나이 제한을 두는 단체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위티는 청소년들이 쉽게 손 내밀 수 있고, 어리다는 이유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위티는 활동가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각자에게 위티 활동이 가지는 의미를 묻자 이런 답변들이 돌아왔습니다. 서로 믿고 솔직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공간 (가은), 비청소년 중심의 언어와 사고를 성찰할 수 있게 된 계기 (지원), 기계처럼 노동하면서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를 지탱해준 것 (홍일),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확인한 곳 (햇살), 나의 소질과 재능이 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곳 (라원), ‘세상이 정말 변할 수도 있겠다’ 느낀 곳 (봄다), 사회적 틀에 들어맞지 않는 내 욕망을 긍정하게 된 곳 (도현), 묵혀놨던 10대의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었던 경험 (하영)

  그러나 털실뭉치는 겉에서 보는 것만큼 포근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서로 부대끼며 거칠어진 부분, 군데군데 엉킨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때로 위티의 활동가들은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지혜), 본인 역량 밖의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잘 몰랐으며 (지원), 몸과 마음을 돌보기 힘든 상태 (민경)라고 느꼈습니다. 단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급하게 처리하는 것은 괴롭고 힘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하영). 업무가 평등하게 분담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과 어려움을 느끼며 이것이 특정 동료의 문제인지, 아니면 재정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현실에서 오는 구조적 문제인지 갈팡질팡하기도 했습니다 (경하)


[그림] 연한 크림색 바탕 위에 네 개의 둥글둥글한 도형이 그려져 있다. 분홍색 도형에는 ‘공동체, 탈배제, 안전’이라고 적혀 있다. 초록색 도형에는 ‘청소년, 당사자성, 여성’이라고 적혀 있다. 파란색 도형에는 ‘기구, 공론장, 지속가능성’이라고 적혀 있다. 보라색 도형에는 ‘사안처리, 반성폭력, 조직문화’라고 적혀 있다. [그림 끝]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고민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위티라는 공동체의 안온함을 누리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각자가 가지는 위치성, 특권, 책임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그동안 비판해 온 제도권의 성과중심주의적 환경에서 온 것은 아닌지 (하영), 비청소년이 된 이후에 청소년운동을 이어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도현), 신입 활동가들도 회의에서 쉽게 이의제기를 할 수 있을지 (유경), 공동체가 안주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홍일) 등, 어렵지만 회피해서는 안 될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삐죽 튀어나왔습니다. 

  활동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겪어온 억압을 나누고 함께 성토하는 것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면, 이제는 많은 활동가가 ‘지속가능한 활동’을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무턱대고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 고민하게 됐다는 봄다, 결국 내가 즐거운 일을 해야 소진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라원, 퍼포먼스와 연극 등 예술작업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경하, 정당에서 일하며 ‘쉬운 정치’를 고민하고 있는 지혜까지. 우리는 ‘활동’의 의미를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하며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기획연재를 마치며


  “이거 진짜 실어도 돼?” 인터뷰 글을 검토하면서 우리가 자주 던졌던 질문입니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중 어떤 것들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내밀한 우리끼리만의 고민 같아서, 세상에 공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긴 논의 끝에, 우리는 최대한 많은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싣기로 했습니다. 단체의 공식 논평이었다면 내보내지 않을 이야기까지도요. 

  당연하게도, 인터뷰이들의 의견은 매끈하게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상황,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를 들을 수 있었고, 각 활동가가 위티의 활동을 서로 다르게 의미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에도 조직 구성원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오긴 했지만, 서로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묻고 답한 것은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었습니다. 뭉쳐 있던 털실을 천천히 풀어서 뜨개질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위티가 공식적으로 남기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남기는 궤적도 하나하나 소중하다는 것. 서로에게 진한 동질감을 느꼈지만, 우리는 사실 다른 점이 더 많았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괴로웠고, 마음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기 힘들기도 했다는 것. 어떤 기억들은 스스로 해석하는 데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어쩌면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위티의 활동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내놓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위티의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계속해서 얽히고설키어 가기를 바라며 긴 연재를 마칩니다.


[사진] 여러 색깔의 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털실뭉치.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 흰색, 검은색 실 등이 있다. [사진 끝] 

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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