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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알게 될 것 같아요."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②

  나는 지원의 본명보다 활동명을 먼저 알게 되었다. 하자센터 뉴스레터에서, 10대 연구소 보고서에서, 위티의 콘돔전시회 작가 소개란에서 ‘오리’라는 이름을 연거푸 발견했고,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를 실제로 마주하게 된 건 작년 집행위원회 모임에서다.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원은 내 솔직한 고백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열심히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최선을 다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온라인으로 마주앉아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지원: 안녕하세요, 저는 지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1년제)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밖 청소년으로 지내다가 지금은 대학에 진학한 상태입니다.

도현: 지원 님은 어떤 계기로 위티를 발견하고 활동하게 되셨어요?

지원: 제가 하자센터에서 ‘10대 연구소’라는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10대 청소년이 직접, 청소년이 마주하는 삶의 문제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자료 조사를 하다가 위티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냥 SNS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콘돔전시회 준비위원회 모집 공고를 보고 제 경험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사진] 콘돔전시회에서 붉은색 반짝이가 묻은 콘돔을 들고 있는 지원의 뒷 모습 [사진 끝]


도현: 그럼 위티에서 한 첫 활동이 콘돔전시회였던 거네요. 활동 초기에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지원: 저는 콘돔전시회 준비위원회 (이하 ‘콘준위’)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제가 ‘활동가’라고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이게 문화예술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었어요. ‘시민단체 활동’이라고 했을 때 바로 떠올리지 않는 종류의 활동이었으니까요. 동시에, (콘돔전시회 덕분에) 그 이후에 ‘시민단체 활동’을 생각할 때 좀 더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어쨌든, 당시에는 ‘활동가’보다는 ‘참여자’의 입장에서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도현: 그랬다가, 스스로 ‘활동가’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원: 집행위원회에 참여를 하면서부터였죠. 그때는 집행위에서 단체 운영에 관한 회의를 주로 했었거든요. 그래서 회원들이 얼마나 들어왔고 얼마나 빠졌고 이런 세부적인 것까지 다 알게 되니까… 운영에 대해서 정보를 전달받는 게 저에게 활동가라는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또, 당시 (2020년) 위티의 큰 의제 중에 하나가 ‘청소년 당사자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청소년이 단순히 ‘발화자’나 아니면 ‘당사자’를 넘어서 스스로를 ‘활동가’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그 전까지는 내가 어떤 경력, 학력이 있거나 회계, 논평 작성 이런 걸 해야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제가 했던 인터뷰도 대부분 당사자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는데 (나를 ‘활동가’로 섭외했지만 결국 ‘당사자’로서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그런 맥락 속에서 내가 나를 활동가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거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때쯤 나도 활동가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1. 내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도현: 지원 님이 앰네스티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콘돔전시회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어른들이 청소년을 ‘보호’해주기를 원하는, 피해자 정체성을 띤 사람이었다”고요. 그렇다면 위티를 만난 만나고 나서부터 페미니즘이나 청소년인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지원: 저는 좀 보호주의적인 시각의 페미니즘을 먼저 접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콘돔전시회 준비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약간 갈등되는 순간들도 많았죠. 예를 들어, ‘내 친구가 청소년인데 막 15살 많은 성인을 만난다고 하고 폭력적인 관계가 예상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관계를 반대해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보호주의: 청소년운동에서 말하는 ‘보호주의’란, 청소년을 미성숙하고 약한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빈번하게 등장했던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같은 구호는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누락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호주의적이다. 보호주의는 제도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성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지켜주어야 할 사람’으로만 바라보면, 여성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성적 관계를 즐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놓친 채  ‘권리 보장’보다는 ‘안전 조치’에 국한된 제도만을 내놓기 쉽다.


  근데 동시에, 페미니즘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죠. 그때 저는 청소년이었으니까, 흔히 여성들이 꾸밈을 강요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뭔가 꾸미지 않을 것을 더 강요받는 것 같은데? 이런 부분들이요. 그리고 젠더폭력 사안에 있어서도 여성 청소년은 더 복합적인 피해자의 틀을 요구받고, 혹은 ‘왜 신고를 안 해?’라고 묻지만 여성 청소년이 혼자 신고를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뭔가 이런 부분들이 ‘청소년 페미니즘’의 언어로 설명이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페미니즘 안에서 되게 청소년이 타자화될 때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청소년 페미니즘’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청소년이 됐다면 지금 청소년들을 보호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해요. 물론 아직 제 안에도 비청소년 중심의 언어들이나 사고들이 많이 남아 있긴 하죠. 근데 위티는 그런 걸 성찰할 수 있는 계기였어요. 


[사진] 위티 활동가들이 직접 만든 피켓 두 개. 피켓에는 ‘지금 당장 여성 청소년의 삶을 바꿔야 한다’,  ‘N번방 가입자 26만명 전원 처벌’ 이라는 슬로건이 각각 쓰여 있다. [사진 끝]


도현: 공감해요. 청소년 스스로도 비청소년 중심의 보호주의적인 관점을 갖기가 너무 쉽죠.

지원: 네, 맞아요. 어떤 새로운 의제나 사안에 대한 글이 비청소년의 언어로 쓰여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면 그 자료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관점을 습득하게 되는 거죠. 사실 페미니즘 활동도 되게 비청소년 중심으로 이루어지잖아요. 집회 같은 경우도 청소년 관련 사안인데도 활동가를 모집할 때 비청소년만 모집하는 곳도 있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자체가 별로 없었는데 콘돔전시회 준비위원회 첫 모임에 갔을 때 일단 위티는 그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만 만들어갈 수 있는 뭔가가 있겠다고 느꼈어요. 

도현: 콘돔전시회 준비위원을 시작으로, 위티 내에서 여러 위치를 경험해보면서 활동이 지원 님한테 가지는 의미가 바뀌기도 했나요?

지원: 처음에는 그냥 이 공동체가 안전하다는 생각에 온 게 컸었어요. 근데 후반으로 가면서는… 다른 활동가 분이 ‘단순히 여기서 경험하는 공동체를 넘어서 이 활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가 조금 더 확실해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저는 ‘위티 활동을 통해 이걸 얻고 싶다’ 하는 게 확실히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얻고 싶었던 건 ‘내 언어를 만드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제가 계속 위티에 남은 이유는 어떤 의제에 대해서 내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고 그 언어를 만들려고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어요.


[사진] 위티의 회의 테이블. 연분홍색 포스트잇 여덟 개가 책상 위에 이리저리 놓여 있다. 
포스트잇에는 ‘홀가분’ ‘피곤한’ ‘따뜻’ ‘다정함’ 같은 다양한 키워드가 크레파스로 쓰여 있다. [사진 끝]


도현: ‘언어를 만드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흥미로운데,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지원: 이전까지는 내가 아닌 정체성들 (비청소년, 남성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언어들을 주로 습득하고, 또 그걸 사용해서 내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위티를 만나고 나서는) ‘내가 이때까지 이 단어를 이렇게 사용했는데 이게 진짜 이 뜻일까?’ 생각하게 된 거죠. 예를 들면 ‘동의’가 정말 내가 이때까지 알고 있었던 의미일까?

  또 이전까지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내 경험을 설명할 ‘단어가 없다’ 내지는 ‘사상이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달라졌죠. 예를 들어, 내가 학교에서 여성으로 존재하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전까지는 단순히 ‘여성은 남성들에 의해 폭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했다면, 위티를 만난 이후로는 ‘학교 안에는 교사와 학생 간 위계관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나는 이러이러한 학생상을 요구받게 되기 때문에 안전하지 못하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의미에서, 위티가 언어를 구성하는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나 해요. 

도현: 지원 님이 위티에 남았던 이유를 지금 와서 복기하시는 것처럼, 확실히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쓰는 말이라든지 사람을 대하는 태도들이 어디어디에서 왔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는 때가 오잖아요.

지원: 맞아요. 위티 활동도 사실 쉰 지 너무 얼마 안 돼서, ‘위티가 나한테 어떤 의미였지?’ 아니면 ‘당시에 내 마음이 어땠지?’ 생각하면 딱 명확하지 않은 것들도 있어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때 나한테 위티가 이런 의미였구나’ 알게 될 것 같아요.  



2. 확신할 수 없었던 순간들


도현: 위티에서 힘들거나 부정적인 경험도 있었나요? 

지원: 역량 밖의 일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기자회견 같은 경우에 청소년 당사자의 발언을 원하는 곳이 많잖아요. 그런 곳에서 발언을 하게 되는데, 정작 나는 이 의제에 대해서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것 같고 내 생각이 완전히 정리됐는지 모르겠을 때도 있었어요. 해당 의제 관련 세미나를 하지 않고 기자회견에 참여한 적도 있었고, 설사 세미나가 진행되더라도 위티가 연대하고 있는 모든 의제에 대한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의제에 있어서 당사자로 이야기를 하게 되거나 인터뷰를 하게 되면 약간 자신이 없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새로 써보는 형식의 글들이 많잖아요. 기획서도 그렇고, 논평이나 기자회견문, 발제문도 그렇고.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어디서 뭘 참고해야 될지 몰랐어요. 뭘 보고 따라 할 수도 없고…


중요한 사회적 사건이 터지면, 위티를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가 속해 있는 연대체에서 급하게 기자회견을 기획하고, 위티 측에 발언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사안에 대한 세미나 등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기자회견에 가야 했다는 지원의 고민은 이러한 외부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도현: 맞아요. 시민단체에서 하는 일들이 지식 외우듯이 바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일들을 할 때, 위티 안에 충분한 지원 내지는 시스템이 있다고 느끼셨나요? 

지원: 기자회견문 쓰는 걸 따로 배우지는 않았는데, 이전 자료나 영상을 한번 받았던 것 같아요. 발제 같은 경우는 그 당시 집행위원분들의 발제문을 보고 어느 정도 배웠어요. 
  기자회견문이 특히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하는 이야기가 위티의 관점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내가 월경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동료) 활동가들이랑 모여서 토론을 한 것도 아니고 세미나를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내가 하는 말이 위티의 입장이 될 수 있는지가 고민됐어요. 그리고 발제문은 그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웃음) <한국근대소년운동사>라는 책을 받아서 (발제해야 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을 때도 있었어요. 


도현: 대표단을 맡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대표단을 처음 맡을 때 결심이나 마음이 어땠어요?

지원: 사실 저는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었고, 그런 거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에요. 근데 제게 대표단 제안을 하신 활동가 분이 ‘대표단이라고 해서 다른 활동가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업무를 하기를 바란다기보다는 위티의 방향성을 고민하기를 바라는 거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전까지는 못할 것 같았는데,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지금까지 ‘참여자’에서 ‘집행위원회’가 된 것처럼 앞으로 위티와 좀 더 밀접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도현: 실제로 해 봤을 때는 생각과 달랐나요? 

지원: 네 (웃음). 우선 대표단이 하는 가장 큰 일은 ‘결정’하는 것 같아요. 외부에서 문의라든지 요청이 들어오면 고민해서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그런 결정을 내릴 때 운영위원회가 돌아가는 사정도 알고 대외협력 상황도 다 알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저는 (당시에) 상근을 하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내가 위티 전반을 파악하고 있지 않은데, 이 활동의 맥락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짧게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내야 하는 일들도 있었죠.  



3. 소용돌이에서 한 발 물러나


도현: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올해부터 활동을 쉬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지원: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제 활동 방식에 대한 고민이 들어서에요.

도현: 그럼 위티를 나오고 나서, 스스로나 위티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게 있나요?  

지원: 제가 원래 되게 여러 가지 활동을 했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다 그만뒀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졌고, 쉬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나 조금 더 활동을 여유롭게 가져갔어야 했다. 그리고 더 많이 배웠어야 했다.’ 사실 활동을 하면서 제 역량 밖의 일을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말했던 순간들도 있고요.


도현: 되게 공감돼요. 저도 여러 활동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굉장히 지쳤던 적이 있었는데, 지원 님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지원: 네, 저는 당시에 학교 밖 청소년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일정을 만들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빈 시간이 생겨버리기가 쉬운 상황이었죠. ‘그 때의 나는 그게 되게 싫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더 많이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 확실히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도현: 사실 단체가 바쁘면 거기에 휩쓸려서, 고민을 깊이 할 여유가 별로 없을 수 있죠. 

지원: 맞아요. 저는 일이 휘몰아치면 그대로 휩쓸려 가는 타입이거든요. 근데 좀 내가 무게 잡고 고민했어야 되는 일들이 많았구나, 회피하지 말고 잠깐 멈춰서 고민해야 했던 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있었는데…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행동할 수도 있겠죠.

도현: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던 거죠. (웃음) 항상 그렇잖아요. 시간이 지나야 깨닫는 거죠.

지원: 맞아요. 지금은 시간 좀 지났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웃음).




  지원은 활동을 쉬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활동 방식을, 위티의 조직 문화를, 위티에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늘 빠르게 달리며 많은 일을 해내는 데 익숙했던 나는, 지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멈춰서 고민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지원에게서 묻어나는 여유가 부럽기도 했다.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난 지원은 어디에 도달해 있을지, 어떤 일을 시작할지 기대를 품으며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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