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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은, "진짜로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①

  가은은 운영위원으로 대면한 2021년 전부터 위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위티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회원으로 기억된다. 그런 가은과는 2021년 운영위원회에서 함께 준비하던 ‘캐리비안의 페미들’ 행사를 통해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가은은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함께한 약속들을 저버리지 않는 에너지 가득한 동료였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회의와 행사에도 가은이 존재한다는 건 종종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가은에게 위티가 어떤 의미였을지, 학교에 재학하면서 위티 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떠했을지,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살면서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던 것의 의미는 무엇일지가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가은이 생각하는 위티와 활동의 모습을 듣고 싶었다. 


*운영위원회: 운영위원회는 위티에서 운영을 점검하고, 네트워킹 워크샵을 진행하는 단위다. 2021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청소년 페미니스트 캠프 ‘캐리비안의 페미들’(브리핑 보기)을 기획했다.   



1. 운영위원회로 함께하기  


[사진] 2020 npo 파트너 페어 NPO 국제 컨퍼런스. 다시 쓰는 시민사회: 배제되지 않을 권리 . 왼쪽 위부터 인물 상반신 사진 박래군, 양지혜, 박은미(쿵짝), 변재원. [사진 끝]



하영: 위티를 알게 된 계기가 궁금했어요.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가은: 저는 위티를 진짜 우연히 알게 됐어요. 2020년 npo 박람회에 위티가 참여했었는데, 박람회를 둘러보다가 알게 됐어요. 페미니즘에 관심도 있었지만, 청소년 페미니즘 관련해서 네트워킹을 하는 단체가 있는지는 몰랐어요. 알 길이 없으니까. 그때 ‘이거다!’했어요. 당시에는 위티 사이트에 회원가입하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가입을 하고. 위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회를 듣고 그랬어요. 그렇게 작년까지는 회원으로만 활동했지, 운영위원회 같은 활동은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2021년에 운영위원회로 더 열심히 뭔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짜 우연하게 알게 되었어요.

하영: 가은님은 페미니즘에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가은: 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옛날부터 들어오긴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뭘 하는 건지도 하나도 몰랐었거든요. 근데 이제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좀 관심을 갖고 정확히 알아 나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하영: 혹시 뭔가 어떤 구체적인 계기였다던가, 뭔가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요?

가은: 음... 중학교 2학년쯤에 엄마께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더 공부를 하시고 싶어서 교육학과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리베카 솔닛)라는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읽고 좋다고, 되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해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어려운 책이어서. 근데 이제 그걸 계기로 너무 유명한 <82년생 김지영>도 읽고, 그러다 보니까 학교에서 불합리한 학칙이라든지, 이런 차별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렇게 알아가면서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하영: 어떤 것들이 보이게 되셨나요?

가은: 당연히 말 잘 듣는 학생은 학교 규칙 잘 따르고, 선생님 말 잘 따르고, 순종하는 그런 학생이잖아요. 그래서 아무 생각 안 갖고 따르고 있었는데. 언젠가 제 친구가 숏컷을 했는데, 그게 벌점을 받는 이유가 되니까. 머리를 잘랐다고 벌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잘라서 받은 거니까. 남자가 짧게 잘랐다고 벌점을 받진 않잖아요. 그런 당연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영: 그렇군요. 그러면 가은님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아신 지는 한 3년 정도 이렇게 되셔서 위티를 만나게 되셨던 것이잖아요. 그중에서도 위티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계기라든가 이런 게 있으셨나요?

가은: 좋은 단체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뭔가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이 만드는, 청소년으로부터 기인한  단체는 많이 없었어요. 비중이. 청소년을 위한 건 진짜 적더라고요. 근데 페미니즘도, 여러 단체들이 있겠지만, 청소년이 연대하는 단체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적잖아요. 근데 청소년이 네트워킹을 하는 페미니즘 단체다? 이거는 진짜 꼭 참여해야겠다, 해서 바로 참여하게 된 것 같아요.

 


2. 나다울 수 있는 시간   


가은: 가장 특별한 점은 위티는 진짜 배려심이 많은 단체인 것 같아요.

하영: 어떤 점에서요?

가은: 이번에 캠프할 때도 느꼈는데, 모든 사람들을 정말 평등하게 바라보고. 예를 들면,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해서) 이미지가 안 보이시는 분들 위해서 설명글을 적기도 하고, 이런 것까지 생각을 했다는 게. 저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놀랍고 너무 좋았어요. 배려심이 많은 캠프다. 사실 캠프 진행, 준비도 열심히 하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하고 안 오셔서 참 슬펐어요. (웃음) 아, 너무 슬펐는데, 한편으로는 정말 ‘모든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캠프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다음에 진행했을 때는 함께 하셨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이렇게 배려심이 많은 캠프고, 배려심이 많은 단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또, 운영위원회에서 여러 활동도 하고 소통도 하다 보니까. 평등문화, 진짜 평등한 곳이라는 걸 느꼈어요. 이제 운영위원회 회의가 몇 달에 한 번씩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분들이 계시잖아요. 나이가 다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러니까 편안한 거예요. (온라인으로 진행해서) 직접 뵌 분들은 없어도 이야기를 나눌 때 오랜만이지만, 너무 편안하고? 전혀 나이나 성별이나, 이런 게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회의할 때마다 정말 편안한 것 같아요.


[사진] 가은님이 진행한 세션 ‘학교에서 춤추는 페미들’ 줌 회의실 스크린샷. 2. 먼지 같은 학내 여성혐오. 학교에서 경험했던 모든 크고 작은 혐오들을 함께 마주해요. 자연스럽게 지나쳤던 일들, 혹시 혐오는 아니었나요? [사진 끝]



하영: 그럼 위티에서 하는 여러 활동 중에서, 운영위원회를 선택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가은: 저는 이런 단체에서 같이 캠페인도 크게 하고, 창의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으쌰으쌰! 하는 걸 좋아하는데. 서울에 살지 않다 보니까, 오프라인으로 모인다면 정말 좋겠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살면 조금 어렵잖아요. 매번 서울에 가기가. 그래서 운영위원회를 온라인으로 많이 진행한다는 점이 저에게는 편했어요. 부담되지 않게 위티에 기여를 하면서도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운영위원회를 하게 한 것 같아요.

하영: 가은님이 운영위원회 활동을 하시면서 뭔가 인상 깊었던 시간들이라든가, 어떤 순간들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은: 저는 위티 운영위원회 미팅을 할 때마다 가식적으로 말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이랑 말하다 보면, 가식도 떨고 거짓말도 하기 마련인데. 나를 좀 더 부풀리기 마련이고 한데. 그런 거 하나 없이 편한 분위기에서, 그냥 정말 가감 없이 제 고민을 털어놨던 것 같고. 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진짜로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정말 내가 나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캠프가 운영위원회에서 가장 큰 활동이었던 것 같은데. 캠프할 때, 준비도 많이 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잖아요. 제가 학내 세션을 준비하면서 내부에 ‘춤추는 페미들’이라는 세션을 운영했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춤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쑥스러울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저는 가족 앞 아니면 이렇게 하기 힘든데, 그날 춤을 다 추고 땀이 났거든요. (웃음) 그게 컴퓨터 앞에서 추는 거잖아요. 직접 만나지 못하니까. 여름이었는데 정말 땀이 날 정도로 춤을 췄거든요. 이렇게 미친 듯이 춤을 춘 게 처음인 것 같아요. 그것도 놀라운데, 실제로 뵈지 못한 분들 앞에서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으면서. 춤을 춘 것 같아요. 녹화본을 보면, 정말 미친 사람 같이 춤을 춰 가지고. (웃음) 진짜로 그걸 보면서 편하구나, 내가. 약간 서로 진짜를 보여주고 있구나, 솔직하구나. 이런 게 느껴져서, 저는 춤출 때 가장 서로를 정말 믿고 있고.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는지, 그런 게 느껴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운영위원회 하면서 솔직한 걸 배우고, 약간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거짓 없이. 그래서 그게 좋았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3. 외로움: 드러내기 어려운 활동  


가은: 위티 활동을 하면서 기사에 학생으로서 인터뷰해 달라는 그런 요청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기자님과 연이 닿아서 한겨레 젠더 팀 영상에서 출연을 했었거든요.

하영: 기억나요!

가은: 저는 굉장히 뜻깊은 기회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는데, 친구들한테 이제 영상이 나왔다, 이러한 얘기를 나누고 왔다, 친한 몇 친구들한테는 말을 했어요. 근데 “이렇게까지 극성으로 페미를 했냐, 네가” 이런 거예요.

하영: 그렇군요. 그럼 가은님이 학교 내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외로움이 하나의 주된 감정 같은 거였겠어요.

가은: 네, 그렇죠.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잘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거나, 이거와 관련된 고민을 나눌 사람은 학교에는 없는 것 같아요. 

하영: 그런 점에서 위티가 학교마다, 지역에서, 고립되기 쉬운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큰 목적이기도 했잖아요. 그런 학교생활 속에서 혹시 가은님이 뭔가 운영위원회를 하신 경험 혹은 위티의 내부에 있었던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가은: 저는 일단 정기적으로 온라인으로라도 만나서, 서로 있었던 일도 털어놓고. 페미니즘과 관련된 고민도 들어주고. 이러한 소속감이 느껴져서 가장 좋았고, 몇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이런 고민거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재밌고, 설렜어요. 

  학교에서 인스타그램 부계정 같은 걸 만든 사람이 많은데. 남자애들 같은 경우는 부계정 같은 걸 만들어서. 스토리에 ‘여자 새끼들 뭐야, 왜 그러냐’ 막 이런 식으로 쓰거나, 아예 대놓고 ‘나 여성 혐오자임ㅋ’ 막 이런 거 올려놓고. 근데 그게 한 명이 아니라, 정말 여러 명이 그러고 있는 거예요. 약간 유행같이 너 만들었어? 나도 만들었어. 그거 해야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마음이 들어요. 이것도 자기 검열의 하나겠죠. 그래서 ‘위티’에서 오늘 미팅을 했는데. 이런 같이 찍은 사진을 리그램 하고 싶어도. 잠깐만. 내가 이거 리그램 하면 또 공격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 가지고. 굉장히 내 활동에 내가 못 떳떳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4. 당연하지 않은 차별들을 알아가고.   


하영: 그러면 가은님이 위티를 함께 하면서 개인에게 변화라든가, 바뀐 것들이 혹시 있으신가요?

가은: 당연한 거지만, 페미니즘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도 있고, 내가 이 운동을 왜 하는지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정확히 알아가려고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관련된 이슈가 생기면, 기사에도 먼저 더 눈길이 가고. 많이 챙겨봤던 것 같고. 변화라면 학교에서 관련한 수업을 한다거나 할 때, ‘수업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위티 활동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 차별을 점점 깨닫게 되는 때가 많은 것 같아서. 그 당연하지 않은 차별들을 점점 더 알아가고, 이걸 바꾸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영: 그렇군요. 그렇다면, 가은님이 ‘지금 활동하고 있다’라거나 ‘위티에 소속되어 있다-위티에서 활동가’다 라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을까요?

가은: (고민하며) 위티 활동가로서 영상에 나왔을 때 위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고, 운영위원으로 있다는 걸 말할 때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자랑스러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위티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할 기회도 없고 한데. 위티 활동하면서 생긴 일들이니까. 그럴 때 감사하고 뿌듯하고 그렇죠.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07597.html (가은이 등장했던 기사와 유튜브)

[사진]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의 저자 김영옥(왼쪽)과 가은(오른쪽)이 마주보며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끝]  



하영: 그럼 가은님에게는 좀 이렇게 외부와 연결되는 것이 되게 좀 중요한 감각이셨겠네요.

가은: 네,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내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리라든가, 말해야 하는 공식적인 자리인데. 친구들이랑 얘기를 한다거나 할 때는, 발표를 했을 때, ‘내가 이런 데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게 아닌 이상. ‘내가 여기 활동하고 있는데, 너도 같이 멤버로서 이 활동을 해볼래?’ 이런 거 말할 수가 없으니까. 진짜 해도 안 들으니까.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실 페미니즘 이외에도 환경과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으면 알아서 참여하는 청소년들도 많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이러한 기회가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대부분 하고 싶지만 공부해야 되니까 시간이 없고, 친권자가 반대하고, 아니면 이미 사회가  ‘공부를 잘해야 대학에 가지’라는 걸 강조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 (교육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 자체가.   



5.  다른 삶을 생각하다.   


가은: 저도 1학년 때까지 중학교 때까지는, 뭐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냥 외고를 가자. 외국어고를 가야겠다. 그냥 그게 목표였어요. 이제 사람이 목표가 있으면 뭐라도 하잖아요. 열심히. 그래서 진짜 얘만 보고 공부를 하고 입학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외고. 들어와서 너무 좋아. 이제 중학교 때까지는 저기 안 가면 죽을 것 같고, 저기 다니는 사람 진짜 너무 멋져 보이고,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고. 들어오니까 아니라는 걸 느꼈고. 

  이제 1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이제 시작인가? 이런 설렘이 있잖아요. 내가 열심히 좀 해봐야겠다. 이래서 학원도 엄청 빡세게 다니고 1학년 때까지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너무 힘들었어요. 외고를 딱 들어오고 나니까, 목표가 없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목표가 없어지면, 내가 공부를 하긴 하는데. 힘이 없고 뭐 때문에 살아야 되는지 모르는 거예요. 맨날 학교 10시에 끝나고 새벽까지 공부하고, 근데 코로나가 딱 터졌잖아요. 그래서 학교에 안 가기 시작하면서 코로나를 기점으로 학원도 다 그만두고 완전 파격적인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약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저랑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비영리 단체를 세워보고 싶고, 내가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고. 이런 게 생겨서 npo를 보다가 위티도 만나고. 

  그러니까 이게 다 우연적인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코로나가 뭔가 진짜 인생을 약간 좀 바꾼 거예요. 그래서 위티에서 이렇게 좋은 분들도 만나고, 편안한 곳에 있다는 게 감사하고. 생각나면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보다는 성적이 2~3학년 때 이제 낮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성적에 이렇게 크게 연연하게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대학교를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제 1학년 때까지 대학교를 안 가면 죽는 줄 알았어요. 학교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죽는 줄 알았는데 이게 죽는 게 아니구나. 사실 대학교는 이제 학교지, 내가 또 밖에서 배우고 있는 게 더 많구나, 지금도 학교 말고 다른 곳에서 배우는 게 더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 보니까 단체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랑 마음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걸 배우고 하지 않았나 싶고. 만약 1학년 때처럼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었으면 저도 그냥 꿈 없이 살고 있었을 것 같고 열심히 수능 공부하고 있겠죠. 이유 없이?

하영: 진짜 코로나가 큰 기점이 또 되었네요.

가은: 엄청 완전 다 우연처럼. 작년부터 그렇게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서 제 생각도 바뀌었고 시각도 바뀌었고 다 바뀌었어요. 조급해하지 않아진 거.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은 제가 보기에 제가 넋 빠진 애죠.

하영: 되게 나이브하다고 느끼는군요. 지금

가은: 맞아요. 넋 빠진 애처럼 보이겠죠. 안 좋게 보는 거죠. 약간 비꼬는 사람도 있어요. 진짜 비꼬는 사람도 있어요. ‘가은아, 너 너무 부자야?’ 막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이제 집에서 다 해결을 해 준다, 이거지. 아닌데, 그러니까. 이렇게 비꼬는 거죠. 그런 그렇지만 너무 만족해요.

하영: 맞아요. 왜냐하면 그 약간 이런 걸 질문하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는 가은 님이 어떤 학교라는 곳에 어떤 소속된 상태긴 했잖아요. 물론 이제 코로나로 인해서 그런 소속감이 많이 풀렸을 것 같긴 하지만, 곧 공식적인 어떤 학교 일정은 거의 마무리가 되는 시점이니까. 특히 졸업을 하는 이런 전환기에서 위티의 활동이 가은님한테 어떤 의미가 되면 좋겠는지가 궁금하네요.

가은: 너무 거창한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위티는 사람들 모두에게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정체성과 나를 놓지 않게 해주는 거? 그러니까 가장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은 위티인 것 같거든요. 나와 관련된 얘기고, 위티의 사람들에 관련된 얘기고. 여러 사람들에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저는 솔직하고 나다움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의미가 될 것 같고. 가장 큰 목표는, 페미니즘 모르고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좀 바꾸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아니라는 거. 이미 잘못된 근거 없는 생각을 믿어버린 거니까. 그래서 ‘위티’가 더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우연처럼 변했고, 그렇게 위티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이야기한 가은은 위티를 만나고 생긴 긍정적인 변화들을 이야기했다. 학교와 달리 나를 숨기지 않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에서 가은이 만들어낸 가능성과 변화들은 다양했다. 가은은 모든 것이 ‘우연’이었음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그간 가은이 해온 고민들과 결정들의 단단함과 깊이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들이었으리라 생각했다. 가은이 앞으로 꾸려나갈 삶의 형태와 모습이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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