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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진 Mar 20. 2024

수레바퀴 아래서 - 당신이 수험생이라면 읽지말라

수험생의 감정의 무게

고등학교 시절 수레바퀴 아래서를 좋아하던 내 절친의 권유에도 읽지 못하고 그만 둬버린 이야기를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읽으니 그나마 조금 나았다. 그 아련한 감정이 사실 그 당시 대입을 앞둔 고입이 감당할 감정의 무게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당신이 수험생이라면 수레바퀴 아래서는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스가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를 쓰고 경쟁을 하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하게 컸으면 좋았을텐데 비극적인 시스템과 그런 분위기는 한스를 끝으로 내몰았다. 

한스뿐만이 아니지. 


p.172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갑질이라는 건 그런것 같다. 

야비스러운 명예심같은걸로 권위를 행사하는 것. 

연약한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강제해도 된다는 그런 이기심.

p.177 아버지는 걱정과 물안을 몰래 감추며
한스를 자상하게 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따금 아버지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리만치
호기심 어린 염탐꾼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부러 누그러뜨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면서 한스 몰래 동정을 살폈다.
한스는 더 움추려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스와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사람 모두 끔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폭풍 전야같은 그런 고기압 상태가 형성되어 평온한 날씨처럼 보이는 비교적 맑은 날씨.


 

p.207-245 (엠마와 한스의 만남과 헤어짐이후)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추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스처럼 총명한 아이가 기숙형 학교에 들어가서 달라지는 이야기다. 

이게 달라지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냥 사회적인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인지 그건 읽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랬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한 소년이 자유의 억압으로 빛을 잃어서 결국은 생을 끝내는 이야기였다.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

207페이지에서 나온 한줄로 이 작품의 주인공 심정이 녹아난 것일까. 


p.263 구둣방 아저씨는 묘지문을 나서는
프록코트의 신사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걸어가는 신사양반들 말입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도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이지요."
"뭐라구요?" 기벤라트 씨는 흥분한 나머지 펄쩍 뛰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원, 세상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진정하세요. 기벤라트,씨,
전 그저 학교 선생들을 말한 것 뿐이예요."
"어째서요? 도대체 왜 그렇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 저 아이에게 소홀했던 점이 적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진 않으세요?"


구둣방 플라이크 아저씨는 한스의 영혼의 불쌍함을 동정하여 공감했을 텐데... 왜 한스에게 닿지 않았을까.

플라이크 아저씨가 한 말을 한스의 아버지 기벤라트가 죽기전까지 이해했을 때가 왔을까?


자신을 짓누르는 가정과 학교의 종교적 전통,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1906년 소설에서 우리는 100년이 지나도록 달라진바가 없어서 그래서 명작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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