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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순수함을 잃어버렸을 때

by 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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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은 이유는 단순했다. 주변인의 추천으로 인해.


사실 내용은 어떻게 보면 평면적이자 현실과 비현실을 오간다 볼 수 있었다. 영국의 19세기 산업시대 속 처절함을 담았지만 그 속에서 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대표적인 권선징악 이야기,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사실 주인공은 귀족의 핏줄이었고 그 유산을 물려받게 돼 독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해피엔딩 스토리.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까닭은 올리버의 명언 "Please Sir. I want some more."의 배경이 궁금하였으며 또한 최근 들어 삶의 권태기에 빠져버린 내게 순수한 영혼이 주는 삶의 의미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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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는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계층에서 시작된다. 부모도 집도 돈도 아무것도 없는 채 고아원에서부터 나고 자란 올리버 트위스트.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성품을 가졌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없다면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 않는다. 고의적으로는. 고아원을 다루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그를 사고팔 때도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


그 후 올리버는 장의사 밑 수련생으로 팔려가 수많은 시체들을 보고 그의 순수한 마음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올리버의 선함은 죽은 이와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며 이름을 날린다. 하지만 그것을 질투한 노아는 올리버의 어머니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언을 하고 그것을 듣다 못한 올리버는 무력을 행사한다.

결과적으로는 무력을 행사한 것이 올리버였기에 그는 처벌을 받고, 그 잔인하고도 의미 없는 처벌에 대항하여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런던은 더 처절한 세상이었으며 런던에서 조건 없이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주는 신사가 있단 소리에 며칠을 굶은 배고픈 올리버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신사는 사실 범죄자였으며 아이들에게 소매치기와 도둑질을 시키는 하나의 범죄 조직이었음을 알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범죄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는 선한 사람에겐 선한 사람만 이끌린다고 브라운로라는 친절한 중년 신사를 만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되면서부터 소설의 방향성은 점차 긍정적으로 나아가고, 한 번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올리버의 태생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며 막대한 유산과 함께 소설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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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의 권태기가 올 때면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려 노력했다. 의미를 찾다 보면 삶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의미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삶에 과한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의미를 찾고자 하지 않는다. 더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글을 줄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내게 있어 삶의 목적은 너무나도 단순해야 했다. 죽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니지만 큰 뜻을 이뤄야 해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삶은 살기 위해 사는 것이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졌다면 그때부터는 더 잘살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고.

그리고 더 잘살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졌다면 그때부터는 더 나은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연인 좋은 자산 그 너머의 무언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결핍의 목적을 찾고자.

하지만 올리버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채로 시작한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삶 그 자체로 말이다.


아무리 올리버가 소설 속 인물이라지만 책의 저자는 영국의 공업화 시대를 두 눈으로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그 시대가 평민 또는 하층민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소설이란 이름 안에 숨겨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역사가 궁금하면 그 시대의 역사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그 시대의 존재했던 작가들의 책 또한 역사책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뼈로 새긴 역사를 알고 있으며 진실을 알리기 위해 어느 정도 허구와 위트로 잘 포장하여 역사를 소설 속에 숨겼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잡설이었지만 결론은. 가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삶의 권태기가 찾아올 때쯤 과거 책들을 보면 숙연해진다. 삶의 이유가 생존 그 자체였던 옛날..

나 또한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 따위 할 수 없지 않았을까란 가벼운 자기 비하와 조금은 평면적이지만 순수한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를 보며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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