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가능한 엄마되기

하교길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by 똥강아지

도시락통을 여는 순간, 나도 같이 숨이 고른다. 김이 살짝 올라오면 괜히 마음이 진정된다. 오늘은 달걀지단을 조금 두껍게 썰었다. 아이가 이 두께를 좋아하니까. 과일은 어제보다 한 조각 더. 뚜껑을 닫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오늘은 도시락을 열면 더 행복하기를.” 예전엔 회의, 이슈, 보고서가 내 오전을 먹어치웠는데, 지금은 이 작은 상자가 하루의 방향을 정해준다. 별거 아닌데, 나한텐 커다란 선언이다.


하교길엔 일부러 반 박자 빨리 선다. 아이가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예전엔 통화 버튼을 연타하며 다음 약속으로 뛰었는데, 지금은 걸음을 늦춘다. 먼저 표정을 본다. 오늘의 한숨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방 끈을 어느 쪽으로 매고 있는지. 아무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신호들이 있다. “오늘 어땠어?”를 서두르지 않고, 웃는 얼굴로 먼저 손을 흔든다. 가끔 내가 보이지 않으면 다급하게 둘러보는 아이의 시선을 보며 내가 많은 시간을 놓치고 살았구나 싶다


여기서는 영어로 수업을 듣는다. 억양이 다르고, 웃는 포인트도 다르고, 쉬는 시간 웃음소리도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묘하게 안심이 된다. 아이가 어색한 영어로도 농담을 하나 배워와서 내게 말해줄 때, 단어는 덜 정확해도 눈빛은 정확하다. “괜찮아, 나 오늘 재밌었어.” 코로나 이후에 교실에 생긴 얇은 선들, 그 선을 건너다 배가 아팠던 시간들이 길었는데, 이곳에선 선이 겹치는 지점이 많다. 다름이 많아서 오히려 기대는 곳도 많다. 그런 풍경이 내 어깨를 내려앉힌다.


발령까지 오래 걸렸다. 승인과 보류, 다시 보류. 그 사이 나는 감사 대응과 인력관리 사이에서 점점 마모됐다. 먼저 닳아 없어지는 건 표정이었다. 그런데 출국하고 나서 알았다. 시간을 더 벌려고 안간힘 쓸 필요는 없었다. 같이 있는 느낌을 늘리면 됐다. 도시락을 쌀 때, 하교길에 마주칠 때, 저녁에 한 가지 이야기만 나눠도 충분했다. 시간이 늘어난 게 아니라, 숨을 같이 쉬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게 우리 집에 제일 큰 변화였다.


가끔은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게 경력에 어떤 모양으로 남을까?’ 같은 질문들. 그럴 때 도시락통을 다시 연다. 별건 없고, 그냥 달걀 한 줄, 김 한 장, 과일 몇 조각. 그런데 이걸 쌓는 내가 낯설지 않다. 예전의 나는 숫자로 하루를 조립했고, 지금의 나는 작은 안정으로 하루를 조립한다. 둘 다 나다. 멈춘 게 아니라, 형태가 바뀐 거다. 이렇게 중얼거리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이와 나 사이에 새로 생긴 말들이 있다. “오늘의 맛” 같은 것. 아이가 말한다. “오늘의 맛은 달콤+짭짤이야.” 나는 대답한다. “엄마의 맛은 고소.” 웃긴 말장난인데, 이런 농담이 하루를 지켜준다. 표준어보다 우리만의 언어가 먼저 도착한다. 그게 집 같다.


주재원을 처음 준비하는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완벽한 계획보다, 하교길의 미소 한 번을 먼저 준비하시라고. 도시락에 담을 아이의 최애 반찬 하나만 기억하시라고. 국제학교에서 아이가 말할 완벽하지 않은 문장들을 끝까지 들어주는 귀를 챙기시라고. 그러면 처음 몇 달은 버틸 만하다. 아니, 버틴다는 말도 좀 아깝다. 가끔은 꽤 좋다. 생각보다 자주, 좋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그래도 예측 가능한 엄마가 되어보려고 한다. 제시간에 서서, 먼저 웃고, 도시락 뚜껑을 바르게 닫고, 아이가 오늘 배운 단어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속으로 되뇌며 현관문을 나선다. “같이 숨 쉬자.” 해가 기울기 전에, 교문 앞에서 다시 만날 우리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