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늦추기
한국에서의 나는 늘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 숨을 쉬었다.
회사에서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음 일정,
상사는 빠른 피드백을 원했고,
팀원은 내 표정을 살폈다.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 아내, 며느리의 호흡이 또 따로 있었다.
부모님께는 자주 연락을 드려야 ‘괜찮은 딸’이었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반응과 리액션이 예의였다.
그 사이에서 내 호흡은 늘 짧았다.
숨을 들이쉬면 곧 누군가의 말이 덮쳤고,
내가 내쉰 숨은 다른 의무의 리듬에 섞여 사라졌다.
가끔은 그게 공황처럼 밀려왔다.
아무 일도 없는데 심장이 빨라지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당장이라도 나가야 할 것 같은 불안이 올라왔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게 단순히 일의 피로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에 눌린 피로감이었다는 걸.
독일에 와서야 처음으로
관계가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그 거리가 내게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를 매일 만나지 않아도,
안부를 매번 묻지 않아도,
관계가 끊기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느슨함이 처음엔 낯설었고,
곧 해방이 되었다.
“너는 너의 리듬대로 살아도 돼.”
그 말이 들리지 않아도
이곳의 공기엔 늘 깔려 있다.
근데 내 템포는 뭐였더라..
여기선 약속이 멀다.
커피 한 잔을 하려면 일주일 전
물건을 고치려해도 최소 2주
각종 공문서나 내가 내야하는 병원비도 한달,
때론 2달
그 물리적인 시간의 간격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거리도 자연스레 생긴다.
한국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도 아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의 소식이 내 일처럼 들려왔지만
이곳에서는 멀리서 듣는 소식이 편하다.
기대와 의무가 줄어드니,
숨이 길어진다.
가끔은 너무 고요해서 불안하다.
연락이 없으면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 느림이 무책임으로 보이진 않을까.
그럴 때면 다시 한국의 나를 떠올린다.
그곳에서는 관계의 체력으로 살았고,
모두를 챙기려다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느리고, 조용하고, 가끔은 외롭지만
이제는 숨을 쉴 수 있다.
누군가는 이 분위기를 편안하게 또는 불편하게 느낀다.
독일의 관계는 단순하다.
“오늘 어땠어?”라는 질문엔
정말 오늘 이야기를 하고,
“언제 보자”라는 인사는
정말 시간이 될 때 본다.
의례가 없고, 말의 공기가 가볍다.
그 덕에 나는 대화 사이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됐다.
삶은 빠르다고 힘든 게 아니라,
얽혀서 벅찬 것이었다는 걸.
나는 처음으로
나만의 숨의 속도를 갖게 되었다.
관계는 얽혀 있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고,
가까움이 꼭 사랑의 증거는 아니다.
이제는 ‘조금 덜 얽혀 있는 관계’가
오히려 오래 간다.
적당한 거리와 여백이
오래가는 관계의 온도가 된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도
대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초대를 바로 수락하지 않고,
하루를 비워두는 날을 일부러 만든다.
그게 무례가 아니라,
내가 나로 숨 쉬는 연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각종 메일들을 이곳저곳에 보내두고
한시간 후부터 습관처럼 답장을 기다리며 메일함을
들여다보는 나를 보며
문득, 환경이 바뀌었다고, 혼자 있는다고 해서
내 호흡을 무조건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다시 깨닫는다.
내가 해야할일은 해두고 잠시 생각을 접어둬야 한다.
생각보다 시각을 다투어 처리할일은 많지 않다.
인생의 시기마다 숨의 속도는 조금씩 달라지고,
그 미세한 조절을 느끼려면
내가 나를 다정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지금의 나에게 맞는 숨의 리듬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