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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현 Jul 02. 2021

열심히 해서 매력이 없대

몇 년 전, 나는 그 당시 인기가 있던 예능 프로그램 오디션을 봤다.

그 프로그램은 개인기를 해서 웃기는 것보다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주 인 프로그램이었고,

개인기가 없는 난 차라리 몸 쓰면서 자연스럽게 웃길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는 이 프로그램이

내가 잘할 수 있고, 적합하다고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꼭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잘 되고 싶었다.

미팅을 하기 전부터 긴장을 많이 했고 나오기 전까지 꼭 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하게 된다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과는 탈락. 탈락의 이유는

"너무 열심히 할거 같아서 매력이 없대."


응?? 무슨 말이지?? 열심히 하는 게 왜? 

처음부터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건데 그게 매력이랑 무슨 상관이지?

그냥 별로라고 얘기하지. 그냥 매력 없다고 하지.

우리 프로그램이랑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고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피드백이었다.

열심히 밖에 할 줄 모르는데..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가르쳐 놓고 이게 뭐야!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매력이 넘친다는 건가? 그럼 대충 하라는 거야?


어쩌라는 거야..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인생은 아니구나.. 




오디션을 보는 어느 날이었다.

오디션의 방식은 다양해서 혼자 들어갈 때도 있고, 두 명이서 들어갈 때도 있고,

네 명이서 들어갈 때도 있다.

그날 오디션은 나와 다른 친구, 두 명이서 들어갔다.

서로가 서로의 상대 배역을 읽어주며 오디션이 진행되었다.

나와 같이 들어간 이 친구는 오디션 자체가 처음이었는지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을 굉장히 많이 한 게 느껴졌다.

오디션 대본을 외워왔지만 긴장을 많이 한 나머지 실수가 잦았다.

대사를 버벅거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상대 역할을 해주던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기다려주고

열심히 받아주며 상대 역할을 해줬다.


나는 오디션을 꽤 본 덕분이었는지 솔직히 이 역할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준비한 것 만 하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임해서 그런지 긴장을 많이 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그 친구가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게 느껴지니 자연스레 긴장이 풀렸다.


오디션이 끝나갈 무렵 안절부절못하는 그 친구가 마음에 걸렸는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는 감독님의 말에 그 친구는 말했다.


"제가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나에게도 질문을 했고 나는 간결하게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오디션장에서 나왔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 나에게 맺혔다.

그날, 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나왔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가 먼저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친구의 모습에 몇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무 열심히 할거 같아서 매력 없대..

그때의 피드백의 뜻을 애석하게도 이 친구를 통해서 알 것 같았다.


몇 주 뒤 전화 한 통이 왔고, 그 역할은 내가 하기로 했다.

(결국 여러 가지 문제로 이 작품은 제작이 되지 않았다.)

그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쯤 누구보다 속상해하고, 그때의 본인을 후회하고 있을 그 친구가.

오디션을 봤던 그 순간에 그 친구와 나를 다 알기란 어렵다.

나의 이미지가 조금 더 어울렸을 수 도 있지만, 

분명한 건 내가 그 친구보다 잘해서, 혹은 뭐가 더 뛰어나서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이 됐던 이유는 그 친구에게 그때 없었던 한 가지 때문일 것이다.


여유.


모두가 안다. 그 친구가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것을.

평소의 그 친구의 모습은 오디션장에서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매력 넘치고 여유 있고 본인의 색깔이 있는 친구일 텐데..

열심히 하겠다 라는 떨리는 말 뒤에 가려진 그 친구의 본연의 모습이 

심사위원들에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

열정 있는 친구는 너무나 많고, 잘하는 친구도 더더욱 많다.

그럼에도 선택받는 친구는 항상 존재한다.

그 친구들은 만들고 꾸며진 모습, 긴장한 모습에 가려진 내 모습이 아닌

진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다.


그러기 위해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

본인이 여유가 없으면 그 누구도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너무 열심히 할 것 같아서 매력이 없대"


열심히 하는 게 매력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는 모습에 내 매력이 가려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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