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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Sep 07. 2023

학부모 상담

느린 우리

오늘은 생애 최초의 학부모 상담을 갔다. 그간 일 핑계로 네 상담을 한 번도 못갔다. 으례히 어머니가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 역시 부모이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네 학교 문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몸이 왜소한 너는 1학년때부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남자들이란 그렇다. 짐승과 같아서 우월함을 가지면 계속 권한을 지속하고자 한다. 재우란 친구가 괴롭힌다고 해서 엄마가 몇차례 이야기를 해서야 겨우 해결되었다. 처음엔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한 엄마의 태도가 아빠는 못마땅했다. 그리고 당시엔 너를 괴롭히던 애가 재우 외에도 도현이가 있었는데 그 애에 대해선 이야기를 전혀 안했다는 사실을 난 몰랐다. 어이가 없었다. 네가 학교가기 싫다고 울던 이유가 괴롭힘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부모로써 직무유기를 한 느낌이었다. 부채의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전 사실 실제로 아드님을 본 건 얼마 안됩니다. 최근 아프기도 해서 안나온 날도 있구요."


심리적 방어선이었다. 내가 어떠한 공격을 하더라도 자기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말이다. 일에 대한 태도에 사명감은 이리도 체감이 크다. 구구절절 공감을 바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화'는 하고 싶었다. 말을 하는 내내 이 공허한 연결감은 무엇일까. 결국 부모는 약자일 수 밖에 없었다. 


담임은 네가 느리다고 했다. 다른 애들이 모두 수학문제를 다 풀때도 넌 겨우 한 문제를 풀거나 그걸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고 했다. 느린 것이 죄는 아니지만, 공동체 생활에서 개인의 시간은 강요당하기 쉽다. 속상한 것이 나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일부러 늦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란 것도 난 안다. 하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것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너 하나를 위해 전체를 그냥 둘 수도 없었을테니. 



네 자리가 어딘지 물었다. 모든 책상이 깔끔한데 유독 어질러진 책상이 하나 보였다. 필통도 그냥 두고 가다니... 선생님이 안챙겨가냐고 물으니 넌 집에도 연필이 많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네가 만든 판다 찰흙 모형도 봤다. 독서에 따라 카드를 늘여놓는 것도 있었는데 네 것만 단 하나가 달랑 걸려있었다. 잠들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책 이야기만 해도 쓸 게 많을텐데...


"더 궁금하신 사항은 없으신가요?"


이제 끝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었다. 이제 담임 선생님의 '이 상담은 언제 끝날까?'란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된다. 난 잘한걸까? 그저 까탈스럽기 그지 없는 학부모는 아니였을까? 결국 부모는 약자일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엄마로부터 강력하게 전해받은 게으름에, 아빠의 느린 습득이라는 최악의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머리가 아팠다. 밤마다 널 붙잡고 가르쳐야 하나? 일상에서 좀 더 빨리빨리 하도록 어떻게 훈련해야 하나? 1학년때 넌 다른 애들이 점심을 다 먹고 나서도 혼자 식당에서 20-30분 동안 더 식사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덜 먹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일어나라고 했다. 그 광경을 보고 다른 아이들은 널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그 넓은 공간에 혼자 고립된 식사를 하는 네가 느낄 감정이 어떨까? 모든게 내겐 끔찍하게 보였다.


그러다 문득 네가 스무살이 되었다면 지금의 이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우스개 소리에 불과하겠지. 지금 당장 이걸 해결하려니 이리도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쿵쾅대는 것이겠지. 하루종일 마음이 뒤숭숭한 이 기분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너를 꼬옥 안는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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