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흐름(장마 태풍 북상 중)
오늘은 너의 요청으로 백화점에 갔단다. 날 닮아 집돌이인 네가, 차멀미에 약간 네가 그렇게까지 제안했다는 건 확실히 가고 싶다는 말이다. 네 엄마는 집에만 있는 걸 별로 안좋아하는지라 외출 소식은 좋은 소식이다. 엄마와 난 네가 그 곳에 있는 키즈카페에 가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그 곳이 최종 목적지이기는 했지만 넌 그냥 엄마 아빠가 이것저것 물건을 구경하면서 고르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가려던 키즈카페는 2시간마다 입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 덕에 쇼핑을 한 시간 하고 네가 입장 가능한 시간까지 또 한시간을 기다렸다.
10살 아이의 눈에 백화점은 어떤 곳일까? 아니면 최근 꽤 정적이었던 주말 일정이 네게 이런 충동을 부른걸까? 난 그냥 네가 즐거워하는 것만 봐도 좋단다. 최근에 책에서 읽은 분의 일상 루틴이 기억난다. 그 분은 일이 마치면 부랴부랴 집으로 가서 아이와 논단다. 그건 그 시기에 다시는 없을 기회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다음에 자신의 시간에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해서 매년 책도 낸다고 했다. 처음엔 육아빠는 저정도는 해야 책을 내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곱씹다보니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다시는 없을 기회라고 부른 것은 그 분이 육아에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울림이 좀 남았단다.
40대 후반인 요즘 몸도 슬슬 고장나는 듯하고 건강검진의 결과도 자주 재검이 뜬다. 나이를 먹으면 큰 병을 앓거나 큰 일을 겪고서야 자기 몸을 챙기기 시작하는 듯하다. 과신하는거지. 인간의 우매함이랄까. 어쨌든 아빠도 지난 주부터 테니스를 시작했단다. 주 2회 가는데 자세만 배워도 그리 재미가 있더라. 물론 넌 꽤 불만이다. 갑자기 칼퇴하던 아빠가 주 2회나 늦게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주엔 땀에 절어 도착하자마자 날 보더니 숙제 같이 하자고 했다. 넌 아빠랑 너무 많은 것을 같이 하려한다. 아마 네 엄마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테고, 난 퇴근 후 비는 시간이 거의 없다.
넌 다른 사람과 뭔가 같이 하고 같이 경험을 공유하는 걸 즐긴다. 이는 완전히 나의 취향과 동일하다. 다만 이런 사람들은 타인에게 기쁨을 얻으나, 슬픔도 타인에게 얻는 것이 좀 슬프다. 대개의 타인은 항상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기 마련이니 말이다. 넌 네가 재미있는 유튜브 숏츠를 몇 번이나 내게 보여주기도 하고, 괴담 이야기를 내게 몰래 말해주기도 한다. 엄마와 나는 둘 다 수다스러운 편은 아닌데 넌 어디서 그런 기질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 자그마한 입을 오랫동안 조잘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사랑스러워 네 이마에 입 맞추면 넌 요즘 박치기를 한다.
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이 나서 스스로 만든 노래를 크게 부르고 떠들었다. 오전부터 태풍이 올까 두려웠는데 다행히 태풍은 밤에 온다. 어쩌면 오늘 밤에도 천둥 소리에 넌 놀라서 날 찾을지 모르겠다. 걱정말아라. 꼭 안아줄테니. 잘자렴,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