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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r 30. 2021

굿밤

찬란했던 낮시간을 뒤로하고 저녁의 요란함도 잠잠해질 즈음 난 조용히 차를 끓인다. 일분 내 끓는 물을 대령하는 전기포트가 아니라 따르기 좋은 작은 냄비에 정수된 물을 담고 중불로 천천히 끓인다. 허리에 양 손을 얹고 짧게 한숨을 내쉰다. 묵직한 스테인레스 냄비 바닥에서 부터 작은 기포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처음 하나가 힘들지, 둘셋은 금방이다. 이내 냄비 전체가 작게 진동하며 그르렁거린다. 조금 큰 머그컵을 집었다. 지난달 담아둔 레몬청이 벌써 바닥을 치지만 지금과 같은 시간에 레몬티의 즐거움을 굳이 아낄 필요는 없다. 잘게 썬 레몬 하나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항상 난 물을 조금 많이 붓는다. 붓기 전 오늘은 알맞게 부어야지하고 마음 먹어도 소용없다.


음악 스트리밍이나 유튜브를 틀 생각은 없다. 가급적 조용하고 어둡게 있을 예정이다. 뜨거운 첫모금. 간혹 호로록 소리를 내면서 먹어보기도 한다. 분명 어머니한테 혼날만한 짓이지만 지금은 혼자이니 상관없다. 그래, 소리내어 마시자. 호로로로록. 장난스럽게 길게 소리를 내어본다. 덜 뜨겁다. 아이러니한 행동이다. 뜨거운 차를 뜨겁지 않게 마시려고 노력하다니. 레몬의 상큼한 향이 뜨거운 증기에 스며든다. 후각 가득 신맛을 내면서 몸은 조금 나른해지는 듯하다. 밤이 주는 평안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응, 너도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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