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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04. 2021

갈등

D+4

예전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전설의) 커플을 참 많이 부러워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구랑 있는 게 엄청 편하다’라는 이야기는 그 누구가 엄청나게 배려하거나 희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기심이든 배려심이든 살아온 환경과 시간에 의해 우린 적당히 모난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완벽한 타인이 두 사람이 만나서 직소퍼즐처럼 둘이 맞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갈등은 그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을 서로 강하게 격돌하며 깎아내는 과정이다. 모든 물체 간의 격돌이 그러하겠지만 강한 성질이 약한 성질을 이긴다. 인간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약자는 더 사랑하거나 더 좋아하는 이가 약자가 된다. 이러한 관계의 기울기는 약자에게 불합리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관계에서의 불합리함은 그 관계가 장기화될수록 균열의 핵심이 된다. 안타까운 것은 강자는 약자의 입장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불합리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발생할 때는 요즘은 주로 갈등을 회피했던 것 같다. 과거엔 갈등을 즐겼다. 그 갈등은 마치 내게 하나의 승부처럼 보였고 그 승부는 언제나 내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승리가 반복되면 상대는 새로운 갈등이 피어나기도 전에 굴복한다. 그런 내가 지금과 같이 갈등을 피하는 이유는 그 승리가 얼마나 옹졸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곽가(그의 성이 ‘곽’씨이며 내가 지략가를 좋아하는 탓에 삼국지의 곽가와 발음이 같아 난 그를 이리 부른다)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도 다 받아준다. 그의 지지도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허무맹랑한 소설의 이야기를 만들고 우겼지만 그는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받아주었다. 과거 내 성향을 아는 탓에 갈등이 곧 피로로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곽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문득 하루 종일 치인 하루에 곽가를 불러냈고 너무 지친 탓에 술집에서 한마디도 안 하는 나를 그저 묵묵히 챙겨주는 그를 보면서 참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 이후로 관계에 무심한 나는 아직도 곽가를 애착 인형처럼 간혹 찾는다. 그는 정말 큰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난 참 작았고.


연애, 이직 등 우린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이할 때마다 갈등은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아귀 맞지 않는 돌을 얼마나 이들과 부딪쳐야 할지를 가늠해본다. 역시나 어려운 것은 권력의 상하 관계로 아귀가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났을 경우다. 최근 이직한 직장의 시작이 그러했다. 생애 최초로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고려했다. 뜻이 잘 맞는 동료는 큰 힘이 되었고 그로 인해 그 상사가 전근을 갈 때까지 잘 버틸 수 있었다. 버틴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 난 그 상사와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것이 가장 싫었다. 그는 타인을 웃기는 것을 자신의 특기쯤으로 여겼고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는 자신은 유머러스하고 인기 있는 상사의 이미지를 재현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 그에게 화장실은 어떻게든 상대를 한 번은 웃기고 싶어 했다. 그렇다. 그 상황을 빨리 종료하려면 억지로라도 웃어야 했다. 안 좋은 인간관계는 자아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이직을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사람이 서로 접하게 되는 면은 지극히 일부이다. 그 일부가 마치 그 사람의 전체 이미지처럼 투영되어 그를 판단한다. 우린 이 편견을 부수기 위해 타인과의 갈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너는 이러한 사람인데, 지금 왜 그러냐고 따지는 거다. 그럼 상대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언쟁을 할 수밖에 없다. 갈등은 상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다. 그것이 우리를 더 긴밀하게 연결해줄 것이다. 심리적 마찰이 모난 돌의 불꽃처럼 서로의 아귀를 더 맞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이해를 바탕으로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죽도록 밉다면 결국 이해가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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