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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05. 2021

감동

D+5

 30미터 남짓한 곳에 보이는 사람은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서서히 일어섰다. 그럴리는 없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으니까. 파마를 하신 헤어스타일이나 옷의 패턴도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스타일. 그리고 햇살에 속이 훤히 보이는 머리숱까지 그 찰나의 순간엔 내게 할머니처럼 보였다. 아들과 함께 온 주말의 박물관은 평화롭다. 가을임에도 따가운 햇살은 커다란 박물관이 그늘을 드리워줬고 그 아래 사람들은 10월에도 더운 이상 기온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런 평화로움이 문득 내게 할머니를 연상하게 한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한테 미안해. 서울 가서 제사 지내는데 몇십만 원주면 차례상 차려주는 게 많았는데 왜 그 돈을 아까워했을까. 할머니는 다 늙어서 제사상 차린다고 참 싫어하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이런 사소한 것들이 참 미안해지네."


아내는 입이 찢어질세라 지겹다는 듯 하품을 한다. 감동이다. 내가 가진 그 감정은 결국 망자에 대한 부질없는 감정이며 현세에게 하등의 쓸모없는 감정 소모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후회할 짓을 미련하게 그대로 답습한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지금의 죄송스러움은 결국 공허한 것이 아니냐고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동이다. 아내의 그 지겹다는 하품 덕에 몇 초안에 굉장히 복잡다단한 감정의 변화를 겪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으며, 그러다 화가 났다. 아내는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었다. 남편도 아니고 남편의 할머니이니, 그것도 돌아가신 분이니 관심이 있을 리가 있을까. 


감동이다. 난 얼마나 외로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럼에도 한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1인분은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대견스러워졌다. 아직도 아내에겐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며 그것은 평생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망선고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화를 내지 않았다. 난 내게 계속 감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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